팬질의 어려움.


뜬금없는 카우프만 리사이틀 후기. 일이 있어서 파리에 오게 됐다. 

원래 머리속으로 그렸던 시나리오라면 공연을 보고나서 신이나서 염장을 지르고 있었을 테다. 하지만 그게 생각대로 안된다. 나의 기분은 왜 이렇게 싱숭생술할까. 차근차근 적어보며 정리해본다.



카우프만 리사이틀이 일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이건 무.조.건. 가야한다'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카우프만의 가곡 리사이틀이라니. 카우프만 팬을 자처하면서도 그게 생각만큼 완벽하게 끌리진 않았다.

그 안일함은 티켓 오픈을 철저하게 찾지 못한 과실로 연결된다. 갈까 말까 싶기도 했고, 아무리 카우프만이라고 해도 가곡 리사이틀이 뭐 금방 매진되겠냐 싶었다.

금방 매진되더라.

티켓 열렸나 확인했더니 이미 다 매진이었다. 전등급 전좌석 매진. 아니 왜 가곡 리사이틀을 매진시키고 그러세요ㅡㅡ 허탈한 마음으로 대기 알림이나 걸어뒀는데, 출국 1주일 전쯤에 메일이 온걸 보고 부리나케 예매했다. 


가곡 리사이틀 예습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차라리 깔끔하게 겨울나그네나 시인의 사랑 같은 큼직한 연가곡 하나를 한다고 하면 준비가 단순해진다. 음반을 찾기도 쉽고 가사 번역을 찾기도 쉽다. 하지만 저번 킨리사이드나 이번 카우프만 처럼 이곡 저곡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1부는 리스트 가곡 6곡, 말러 뤼케르트 가곡, 2부는 볼프 리더슈트라우스 7곡, 그리고 슈트라우스의 네개의 마지막 노래(!)가 피날레를 장식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연구만 하더라도 바쁜 터라 다른 오페라를 예습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카우프만 리사이틀인데 철저하게 예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출발하는 주에는 계속 가곡 예습에 집중했다. 가사와 악보를 보며 몇번씩 다시 듣고 가사 단어도 하나하나 찾아가며 익혔다. 리스트 가곡을 하나하나 찾아 모으는 것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예습 상태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킨리사이드 때 그저 플레이리스트만 만들어놓고 가사나 악보를 찾아보지 않았던 것과는 분명 달랐다. 비행기도 일정에 맞춰 도착했고, 숙소 체크인에서부터 공연장에 가는 것 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다.


무엇부터 잘못됐을까.

일단 자리가 아쉬웠다. 분명히 가장 비싼 등급 좌석인데 무대에서 상당히 떨어져있다. 1층 1열에서 카우프만을 코앞에서 보고 있을 사람도 나랑 같은 돈을 줬다고 생각하니 괜히 배가 아프다. 오케나 오페라나 피아노 공연과 달리 가곡은 얼빠석이 얼굴도 잘보이고 노래 듣기도 좋다. 솔직히 좌석 등급 정할때 카우프만 얼굴 면적이 얼마 크기로 보이냐에 비례해서 등급을 책정했어야 한다. 1층 1~5열이 한 500유로 쯤 했으면 내가 거기 못앉아도 배가 아프진 않았을텐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여러분.


예전 카우프만 내한 공연을 3층 가난석에서 봤던 것과는 또 다르다. 얼굴이 진짜 애매하게 보인다. 얼굴이 보이긴 보이는데 표정이 안보인다. 살면서 내 시력 나쁨을 이렇게 한탄해본 적이 있었나. 아니 카우프만이 눈 앞에 있는데 왜 제대로 보지를 못하니! 

얼빠질은 얼빠석에서 해야한다. 얼빠 본능 때문에 멀리서 노래하는걸 보고 있자니 자꾸 얼굴 안보이는 것만 신경 쓰인다. 내 신경의 많은 부분이 내 눈에 들어온 저해상도의 카우프만 얼굴에서 표정을 인식하는데 쓰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카우프만 얼굴 좀 봐보겠다고 시신경이 바쁘게 움직이느라 차라리 눈을 감고 듣는게 훨씬 더 좋게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만 이유가 아니었다. 솔직히 저게 이유였으면 그냥 내 시력을 한탄하며 끝낼 일이었을 거다.

카우프만이 노래를 잘 못했다.


내 스스로 카우프만 얼빠라고 말하고 다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리스너였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난 노래를 잘하고 잘생긴 카우프만을 좋아하는 거였지 노래를 못하는데 얼굴만 잘생긴 카우프만을 좋아하는게 아니었다. 카우프만의 비주얼은 어디까지나 목소리에 대한 양념일 뿐이다. 내가 음원을 스트리밍으로만 들어서 음반을 안 모은것 뿐이지 사실 얼굴 안나오는 카우프만 앨범을 참 많이도 들었다.

카우프만의 가곡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가곡 앨범은 카우프만 목소리와 카우프만 스타일을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건 팬심으로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고 잘 불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은 분명 카우프만답지 않았다. 리스트의 가곡은 대부분 후루룩 지나가버리는 느낌이었다. 첫곡 Vergiftet sind meine Lieder에서부터 반주자 도이치의 실수가 있었고, 카우프만의 노래는 당황스러울 만큼 빠른 템포로 가볍게 지나갔다. Vergiftet의 그 독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스럽지 않은 카우프만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그 뒤로도 비슷했다. 카우프만이 가곡을 완벽히 준비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곡 전반에 걸쳐서 확고한 해석이 나오는게 아니라 한줄 한줄마다 뭔가 2%부족한 표현과 연기가 곁들여졌다. 뤼케르트 가곡 중에서도 Liebst du um Schönheit 같이 가사의 내용이 단순하고 통상적인 사랑 노래일 때는 표현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서사적인 리스트의 두 가곡, 툴레의 왕과 세명의 집시에서는 무언가 제대로 된 연극적 표현이나 서사적인 표현이 없었다. 악보를 그냥 읽어가는 느낌이었다.

말러 가곡도 아쉬웠다.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네의 경우 무언가 강조되는 포인트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침체된 느낌이었다. 내 곡을 들여다보지 마오 역시 익살맞지도 않고 흥겹지도 않고 강렬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곡인 '자정에서'의 경우 신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절에서 아껴놓았던 성대 에너지를 대방출하며 1부를 어찌어찌 끝마쳤다. 

카우프만의 준비가 부족했을 것 같다는 것에 몇가지 정황 증거들이 있다. 올해 여름 잘츠부르크에서 헬무트 도이치와 가곡 리사이틀을 하기로 했지만 프로그램을 변경해 디아나 담라우와 볼프 이탈리안 노래집을 불렀다. 이 곡은 이전 시즌에 아마 불렀던 걸로 알고 있다. 담라우가 무슨 잘츠에 카우프만 소개 아니면 못나오는 가수도 아니고 준비가 덜 되서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의심해본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유독 보면대 (멀리서 봐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패드나 가사만 있는 작은 책 정도가 있는 작은 크기의 스탠드였다)를 상당히 자주 봤다.

여기에 목소리 컨디션 역시 좋지 않았던게, 고음을 팔세토로 처리하면서 음정이 흔들리거나 소리가 갈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카우프만이 목 갈아넣다가 적당히 삑사리 같은 음이 나는 건 문제가 없지만 가녀린 음이 깔끔하게 내지 못한 실수를 한 건 꽤 큰 문제였다. 킨리사이들 리사이틀 보면서도 고음에서 비슷한 불안함이 있었는데 카우프만도 마찬가지였다.


2부에서는 내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카우프만의 상태도 나아진것 같았다. 볼프의 리더슈트라우스 (가곡 꽃다발?)는 초기 작품으로 슈베르트의 가곡과 흡사하다. 대체로 내용이 흔한 사랑 내용이고 호흡도 짧은 편이라 곡마다 하나하나를 꿰뚫는 분명한 스타일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1부를 보는 도중에는 로게 석 앞줄인데 오페라글라스 쓰는 게 너무 얼빠 같아 보일것 같아 말았는데, 2부는 아예 대부분을 오페라 글라스를 통해 보았다. 머리속에서 열심히 재구성하려고 노력하던 카우프만 표정이 확실히 보이니 얼빠심도 복구돼 노래가 더 괜찮게 들렸을 수도 있다.

네막노를 들을 때에 내 마음가짐은 일종의 해탈을 한건지, 그래 그동안 목 갈아넣어서 노래하는 카우프만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긋나긋하게 읊어주는 카우프만도 좋구나 라는 마인드가 됐다. 네막노에서 상당히 기교적인 긴호흡의 멜리스마가 나오는데 카우프만은 이걸 오페라 아리아 처럼 너무 과장하지 않고 살짝 빠른 템포로 부드럽게 넘겼다. 그래요 카형, 솔직히 형 목 갈아넣을 때마다 사실 듣는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가수가 무리하지 않아야 팬도 행복합니다. 성대 갈아넣는 노래만 들을 필요는 없죠..

피아노 반주로 부르는게 흔하지 않은 네막노를, 그것도 테너가 부르기로 결정했으니 카우프만도 꽤나 도전적인 선택을 한 셈일테다. 그래서인지 네막노는 분명히 오늘 프로그램 중에 가장 뛰어났다. 가사의 색깔도 잘 살아났고, 피아니시모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능력 역시 카우프만 다웠다. 3곡 3절에서 바이올린 솔로 멜로디를 부르는 Flügel 같은 음절의 멜리스마는 마음을 움직였다. 2절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대목 역시 가사를 잘 표현한 노래였다. 

4곡의 첫 가사는 Wir sind durch Not und Freude이다. 이 가사를 듣는 순간, 일반적인 네막노 공연 상황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 여기서 우리가 오늘 리사이틀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해온 연주자와 관객을 아우르는 말로 들렸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샹젤리제 극장의 음향이 상당히 괜찮아서 가수의 목소리와 발음이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무대에서 한참 떨어져있는데도 자음 하나하나 까지 빠지지 않고 들릴 정도였다. 이 정도 크기의 극장에서 가곡을 부르며 가사와 음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은 분명 탁월한 클래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앵콜은 총 네 곡을 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마지막 곡에서 역시 카우프만 답게 한번 폭발시켜주고 관객들의 전원 기립하게 만들었다.



뭔가 씁쓸했다. 분명 좋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내가 카우프만에 기대하던 수준은 아니었다. 카우프만의 내한 공연을 생각해보자. 곡 하나하나가 살아있었고 표현은 날이 서있었다. 프레이즈 하나하나 허투루 지나가는 게 없었다. 그런데 오늘 곡은 그러지 않았다. 부르는 사람의 확신이 느껴지지 않는 곡이 여러곡 있었다. 내가 기대한 모습은 이것보다 더 좋은 모습이었는데. 내가 카우프만을 좋아하는 건 그가 카우프만이기 때문이 아니라 감동적인 노래를 들려주는 예술가이기 때문이었는데.




말은 이렇게 해도 사인은 또 받아야하지 않겠나. 출연자 대기실로 가는 입구로 가니 미리 이름이 올라와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역시 카우프만 답게 기다리는 할머니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한 30분쯤 기다렸으려나, 카


우프만이 나와서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프랑스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카우프만은 크게 웃으며 이야기를 다 받아주며 사인을 했다. 사람이 많고 줄어들 기미가 안보여 어떻게 하려나 싶었는데, 한참을 하더니 카우프만이 이만 가보겠다고 인사를 했다. 다들 이미 사인을 받은건지 곱게 보내주더라. 나는 헉하는 마음에 급하게 쫓아가 죄송하다고 사인을 부탁했다.





받고 나니 참 마음이 이상했다. 이게 바로 빠순학에서 읽었던, 팬이 팬미팅 현장 등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났을 때 온다는 현타이구나 했다. 난 카우프만의 수많은 팬들 중 한명일 뿐이고, 그렇게 능청스럽게 카우프만과 긴 이야기를 나눌 자신감도 없었다. 남들 처럼 선물을 준비해간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이 싱숭생숭 했던 이유는 너무나 짧은 순간이라 내가 하고싶은 말을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이다.  공연 보러다니며 사인 받거나 하는 일은 많이 있었지만 내가 카우프만을 좋아하는 건 다른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특별한 수준이었다. 그걸 표현하지 못 했다는 게 지금 이 감정상태의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예전에 와이프와 함께 유명한 소설가의 작가와의 만남을 간적이 있었다. 와이프가 참 좋아하는 작가님이어서 어렵게 간것이었는데, 막상 사인을 받을 때 와이프는 말도 잘 못 꺼내서 내가 옆에서 대신 말해줄 정도였다. 그때는 그냥 내가 백스테이지 가서 사인받고 하던 경험이 많아서 더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에겐 그 작가님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지 않았기에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로 좋아하면 그 사람의 작품이, 노래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막막하기에 말이 안 나오는 거였다. 

사실 편지를 써갈까도 생각을 했는데 안 했다. 그게 후회된다. 팬레터 같은 걸 쓰는게 괜히 남사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막상 쓰고보니까 카우프만 깠다가 카우프만 팬질 엉엉하고 있는 꼴이 됐다. 솔직히 카우프만이 나랑 1분 정도 이야기하고 셀카도 같이 찍어줬으면 공연에 대한 모든 안 좋은 기억이 덮어 씌워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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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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