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의미없다



마침 주말에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가 지크프리트와 황혼을 올린다는 걸 알게됐다. 필하모니에서 나름 큰 공연으로 기획했고 반지 관련 어린이 공연등까지 함께 엮었다.

겔겝 바그너가 기대되는 것도 아니고 파리 필하모니 음향이 좋은 것도 아니니 끌릴 이유가 없는 공연이었다. 관심이 생긴 건 오로지 지크와 황혼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날 겹치는 공연으로는 키신 협연, 크리빈 지휘의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었다. 바그너냐 키신이냐 고민을 하던 와중에, 그 다음날 황혼이 매진인 걸 보고 마음이 급해져서 일단 지크를 예매했다. 나중에 보니 황혼 표도 계속 새로 풀려 어렵지 않게 예매했다. 이렇게 낚여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 중에 같은 과정으로 거쳤는데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말이 있던 것 같다. 그게 바로 내가 겔겝 바그너를 들으러가는 기분이었다. 라인골트도 구리고 발퀴레도 구리고 파르지팔도 구리고, 심지어 러시아 오페라인 전쟁과평화도 구리고 보리스 고두노프도 별로인데 난 뭘 들을려고 겔겝 공연을 간단 말인가.


공연을 보면서 계속 든 생각은 이게걸 듣고 있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였다. 최근 ‘추석이란 무엇인가’가 이슈였는데, 겔겝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겔겝이란 무엇인가’ ‘연주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쿠렌치스의 공연을 본 다음날, Post-Currentzis Day에 겔겝의 공연을 본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러시아 본거지, 맨손 지휘, 일랴 무신의 제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양극단에 선 지휘자다. 겔겝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리허설을 적게 하고 공연을 많이하는 사람일 테고 쿠렌치스는 반대로 레퍼토리를 좁히고 한 작품을 올릴때마다 엄청난 강도의 리허설을 한다.

겔겝의 반주는 생각이 없었다. 프레이즈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작품의 80% 가량의 부분은 아무 지시도 아무 의미도 없이 지나갔다. 프레이징도 없다. 파프너 용의 모티프는 선율이 제대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긴장감 따위 있을리 만무했다. 라이트모티프들이 복잡하게 엮여 돌아가는 1막 전주곡과 1막 2장의 수수께끼 장면은 지루하기 작이 없었다. 3막 전주곡은 방향성이 없어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휘자의 해석이 내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해석이 없음”은 다른 문제다. 예술에는 사람의 의도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붓질을 이렇게 한 이유, 여기에 이런 색깔을 쓴 이유, 여기에 붓터치를 더한 이유, 사진의 구도를 이렇게 설정한 이유, 조명을 이렇게 설치한 이유 등, 모든 것은 예술가의 통제와 선택에서 나오게 된다. 그런 것이 없는 연주를 과연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신의 관습대로, 손 가는대로만 연주한 것이 어떠한 예술적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의미없이 버려지는 프레이즈가 많을 수 있지? 쿠렌치스의 연주에서는 모든 프레이즈가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다. 겔겝은 어떻게 저 많은 걸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칠 수 있지? 그건 단순히 지루하다를 넘어 짜증이 날 정도였다. 저번 국립오페라단의 지휘자나, 내가 구렸다고 생각했던 조르당의 드뷔시도 이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최소한 그들의 음악은 자신들의 선택이고 의도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겔겝의 음악은 그냥 버려진 음악일 뿐이었다. 이런 음악을 듣고 있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는 것은 오로지 바그너의 음표들인데, 모두 다 죽은 음표였다. 노잼 연주가 작품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시였다. 초점없이 떠다니는 반주 소리, 들려야할 것이 안들리는 연주. 방향성이 없었다.

여기에 기본적인 앙상블이 어긋나는 경우도 자주 나왔다.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야할 1막 피날레와 2막 피날레의 앙상블이 무너지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3막에서 지크프리트가 브륀힐데를 처음 보는 장면에서 1바이올린의 선율이 음정은 물론 타이밍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은 절망적인 장면이었다. 노잼 바그너를 알고 싶다면 고개를 들어 마린스키를 보게 하라.

서울시향의 아쉬웠던 라인골트도 이것에 비하면 훨씬 음악다웠다. 트링크스의 발퀴레와 비교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난 왜 이걸 보러오겠다고 했을까. 차라리 게르기예프가 말러를 햇으면 일찍이라도 끝날텐데 4시간 동안 이걸 듣고 있어야 한다니.

메트 오네긴에서 들었던 번쩍거리는 무언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지크프리트 전체 중에서 한 세번 정도? 각잡고 만들려고하면 뭘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건 확실하다. 단지 작품의 거의 대부분을 그냥 후루룩 지나가는 게 문제지. 3막 피날레 마지막 투티를 각잡고 해내는 걸 보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가수들의 수준은 들쑥날쑥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구린 가수는 딱 한명, 미메였다. 세상에 이렇게 미메를 못부르는 사람은 처음봤다. 목소리도 가볍다기보다는 리리컬 한 수준인데다가 노래를 쓸데없이 구구절절 비운의 주인공처럼 과장해서 부른다. 여기에 독어 발음도 어색해서 t소리가 러시아식 된소리로 들려서 보탄이 보딴이 돼버렸다. 연기욕심은 많아서 쓸데없이 이상한 부분을 강조해서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미메였다. 이것이 마린스키식 바그너인가 절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도 괜찮았고 반더러도 괜찮았다. 지크프리트를 맡은 가수는 미하일 베쿠아 라는 가수였는데 목소리가 헬덴테너느낌이 제법 잘 났고 마지막 노퉁을 기깔나게 잘 불렀다. 특히 한번씩 멋을 주는 포인트에서 템포를 늘려서 내지르는 걸 잘 성공시켰다. 반더러는 상당히 인정받는 바그너 바리톤인 니키친이 맡았는데 이 사람의 보탄을 더 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노래였다.

2막에서 알베리히도 평균은 했고 파프너를 맡은 미하일 페트렌코도 훌륭했다. 예전에 한국와서 로엔그린 불렀을 때는 컨디션 안좋은게 티가 났는데 잘할때는 상당해 괜찮은 베이스였다.

가수빨보다 반주빨을 많이 타게되는 3막 1,2장은 역시 노잼이었고, 2막 끝나고 나가야 했었나 후회하고 있던 와중에 브륀힐데가 입장했다. 그리고 첫 소절 Heil dir, Sonne를 부르는데, 어우야. 바그너 소프라노 특유의 과한 비브라토 따위 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홀을 가득 채웠다. 중요한 고음들을 아주 깔끔하고 또렷하게 처리했고 음역대 전반에 걸쳐서 고른 음색과 안정적인 발성을 보여줬다. 콘체르탄테라고 연기를 거의 하지 않는 다른 가수들과 달리 깨어나는 장면에서부터 상당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무대에서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공연이 끝나고 제일 먼저한 것은 이 브륀힐데를 맡은 소프라노의 이름을 확인한 것이었다. 엘레나 스티키나Elena Stikhina였다. 이것이 러시아산 비밀 병기입니까!


게르기예프의 존재 가치는 이제 가수들을 발굴하거나 자기 권력빨로 좋은 가수들을 캐스팅하는 것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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