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작 반지로서의 의의.


처음 예매할 때부터 A팀 공연과 B팀 공연을 예매했다. 사실 A팀과 B팀의 차이는 꽤 큰 편이라 두 팀이 과연 같은 티켓값을 받아도 되는가 싶을 정도였다. 한쪽에는 바이로이트 급 가수들이 많았고 한쪽에는 알베리히를 제외한 모든 출연진이 한국인이었다.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여기에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캐스팅 된 것도 좀 황당했다. 뮤지컬 쪽으로 상당히 잘 나가는 분이라 개런티도 셀 것 같은데, 왜 굳이? 이슈는 될테니 공연 홍보용 캐스팅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두 캐스팅 모두 가기로 한 이유는 그저 딱 하나, 안토니오양 양준모의 보탄이 너무 듣고 싶어서였다. 이것 때문에 내가 보스트리지 서울시향 예매해논 티켓도 날려가며 예당으로 갔다. 준모형 내가 이렇게나 형님을 좋아합니다.... 


공연을 보러가기 전 가장 걱정되는 건 지휘였다. 세상에 지휘자까지 더블 캐스팅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뇌피셜로 분석해보자면, 몸값이 쎈 메인 지휘자를 모든 가수 연습, 오케 연습을 하도록 일정을 만들 수 없으니 부지휘자 같은 성격의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에서 바그너 연습을 위한 코레페티토어를 구하는건 상당히 까다로운 일일 것 같다. 희한한 건 예술제작감독이라는 타이틀이다. 예술감독도 아니고 예술제작감독이라니. 아마 캐스팅이나 오디션을 비롯해 여러가지 음악적 잡무들 역시 도맡았을 거다. 재밌는 건 그거 단순히 부지휘자나 코레페티토어 임무 뿐만 아니라 실제 B팀의 지휘를 맡게 됐다는 점이다. 일종의 "당근"이 아니었을까 싶다. 메인 지휘자 바이커트의 회당 개런티를 아끼는 동시에 플레츠베르거에게 지휘를 맡기며 이 프로젝트를 지휘자 본인의 사업처럼 열정과 책임을 가지고 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을 테다.

문제는 플레츠베르거가 그렇게 훌륭한 오페라 지휘자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바이커트가 한국에서 두번의 공연으로 꽤나 많은 사람에게 까이긴 했지만 그의 커리어나 극장 짬밥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다. 아무리 내가 허구한날 "취리히 빅클럽 아냐"라고 깐다지만 오펀하우스 취리히 감독이 대단한 자리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에 비해 플레츠베르거는 극장에서 상임직 지휘자로 있었던 것이 스위스의 세인트 갈렌에서 카펠마이스터 뿐인데, 찾아보니 그렇게 큰 극장은 아니고 현재 게엠데 제외 한명 뿐인 카펠마이스터는 코레퍼티토어를 겸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페라 지휘자로서는 커리어를 좀 의심해볼 법도 한 상황인거다. 오페라베이스 기록도 거의 없고, 유튜브에도 관현악 지휘 영상 뿐이다. 오케 수준도 떨어지고 공연도 진지한 콘서트인 것이 별로 없어보인다. 여기에 박쥐는 지휘자의 비팅이 깔끔하지 못해 휴지부 이후 바이올린이 착각하고 실수로 먼저 들어오는 사고까지 있다. 그가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이고, 코레페티토어로서 가수들을 이끄는 능력이 어떤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반지를 맡을 만큼의 지휘자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걱정되는 건 5일 연속 라인골트를 연주한 프라임필 단원들의 체력이었다. 여기에 토요일은 11시 콘서트 까지 했다. 보통 막공으로 갈 수록 오케나 합창단의 앙상블이 안정적으로 바뀐다는 걸 생각할 때, 체력 고갈이 먼저냐 곡에 익숙해지는게 크냐의 문제였다.

오케스트라 이야기부터 하자면, 생각보다 체력적인 부침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악기들의 복잡한 패시지가 좀 더 깔끔하고 자신있게 들렸다. 프라임필이 이 공연으로 레벨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나뿐만 아니라 노승림 씨도 언급했는데, 실제로 그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첫날 후기에서 언급하는 걸 잊었지만,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하는 것은 반지에 도전한 오케스트라만이 가질 수 있는 영예다. 


문제는 역시나 지휘자였다. 박자대로 흘러가는 전주곡에선 괜찮았지만 첫 Weia Waga부터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휘자가 가수를 따라가지 못 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 역시 당황했는지 소극적으로 연주하는 듯 했다. 다행이라면 이 부분이 가장 큰 난관이었고 이후에는 이 정도 심각한 균열은 생기지 않았다. 다만 시종일관 가수와 지휘자의 템포가 불안불안하고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곧잘 붙지 못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바이커트의 지휘가 기본만 겨우 갖춘 노잼 지휘였다는 식으로 비판했는데 만약 플레츠베르거 맛을 한번 보셨다면 그런 소린 못했을 거다. 세로줄만 맞추는 지휘에 만족을 못하다니, 그렇담 세로줄도 못 맞추는 지휘는 어떨까!

바이커트가 속도를 늦추며 또박또박 발음하며 나름 맛을 살렸던 2장 초입 부분이나 발할라 입성 역시 플레츠베르거의 지휘 아래에서는 금관 악기들이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바이커트는 좋은 지휘자였습니다...


플레츠베르거가 예술제작감독으로서 이 프로젝트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발 다음 공연에서부턴 그에게 지휘를 맡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수들이야 두팀이 따로 연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누가 연습 시켰을지 모르겠다. 만약 바이커트가 대부분을 만들었다면, 여기에 플레츠베르거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오케스트라가 제대로 지휘자를 따라갈 수 있을 리 만무하고, 반대로 메인이 아닌 플레츠베르거가 주로 연습을 진행했다면 A팀 공연을 맡을 메인 지휘자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될 리가 없다. 독일의 극장에서야 한 프로덕션을 두 지휘자가 돌리는 일이 흔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여러번 호흡을 맞춰본 사이라던가, 아니면 지휘자가 어떤 공연에서든 즉석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나갈 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다. 플레츠베르거가 그런 정도의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 이 날 공연만 보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바이커트가 그리워지는 지휘였지만 가수들은 예상 외로 선방했다. 솔직히 기대치가 낮았던 것도 있었지만 A팀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해소되는 순간들도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첫날 공연에서 이름에 비해 아쉬웠던 아이헤의 돈너나 브리트의 프리카가 그렇다. 일단 두번 다 4층에서 듣느라 기본적인 성량이 나와줘야 좋게 들릴 수밖에 없는데 B팀의 성량은 대부분 A팀보다 더 좋은 편이었다. B팀의 돈너 나건용 씨는 성량도 풍부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헤다 헤도를 멋드러지게 불렀다. 특히 긴 음을 뽑을 때 소리가 줄어들거나 힘이 빠진다는 느낌이 없이 쭉 에너지를 가져가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프리카를 맡은 김지선 씨는 2장 초반에 보탄에게 화를 내며 프라이아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상당한 감정을 실어서 노래했다. 발음이나 표현등이 세련되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핵심적인 감정을 강하게 잘 표현해줬다.

주위에서 알베리히 역이 A팀보다 B팀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실제로도 B팀의 오스카 힐레브란트가 더 뛰어났다. 바그너 짬밥이 어디 안 가고 명확한 딕션, 자연스러운 연기와 강렬한 표현까지 부족한 점이 없었다. 목소리 연기나 우는 소리 등의 적절한 연기도 훌륭했다. 보탄한테 팔이 뜯기며 반지를 강탈당할 때 엉엉엉 우는 게 포인트였다. 저주 장면 역시 맛깔나게 잘 처리해줬다.

뮤지컬 배우 조셉양의 로게는 참 특이했다. 4층에서 들리긴 할까 걱정했찌만 생각보다 노래를 아주 못 하는 건 아니었는데다가 뮤지컬 배우답게 로게 연기를 참 잘해줬다. 처음 반지를 본 순간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가 로게였는데 (로게가 라인골트에만 나온다는 걸 뒤늦게 알고 슬퍼했다) 닥터후의 닥터나 셜록을 연상시키는 영국식 말빨 캐릭터라고 해야하나, 그런 모습이 좋았다. 마침 그때 본 로게가 모든 영상물 로게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그레이엄 클라크였고 영국인이었다. 조셉양의 로게가 이런 느낌을 잘 살려줬다. 첫날 내가 무대에 별로 신경을 안 써서였는지 몰라도, 이 연출에 로게가 저런 동작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불꽃이랑 춤도 추고 이리저리 넘어지기도 하는데 몸을 참 잘 쓰는 배우였다. 분장을 했는데도 눈빛이나 표정이 생각보다 잘 보였고 자세에서부터 오만한 꾀돌이 느낌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성량이 작고 발성의 기본기도 오페라를 맡기엔 부족해보였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소리를 크게 내려고 딕션을 희생하는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가사에 맞게 말을 재빠르게 내뱉는다거나 중요한 단어들을 강조하는 모습 역시 로게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이 역할을 헛투루 준비한건 아니구나 싶었다. 노래에 대해서는 절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다른 부분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줬다고 느꼈다.


A팀에서 잘 해줬던 배역들이 바뀌면서 걱정했던 부분들 역시 생각보다 차이가 심하지 않았다. 라인처녀 중 특히 뛰어났던 보글린데의 캐스팅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앙상블은 역시나 훌륭했다. A팀에서 워낙 뛰어났던 미메나 파졸트 역시 B팀도 나쁘지 않았다. 김일훈 씨 역시 굳이 A팀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썩 만족스러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미메는 상당히 놀랐다. 일단 그 성량이 상당했는데, 미메가 아픈 신음을 내는 소리가 너무 커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발음이나 슈필테너 다운 모습도 좋았다. 가녀리거나 유약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씬스틸을 해내고도 남을 기량이었다. 혹시 가면 안에 독일인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찾아보니 아헨 극장에서 전속가수로 오래 활동했던 테너 김성진 씨였다. 에르다 역시 A팀과 비교해 손색이 없어서 놀랐다. 목소리도 어두운게 에르다에 꽤 잘 어울리고 전반적으로 프레이징도 훌륭한 노래였다. 커튼콜 때야 한국에서 공연 보러다니면 모를 수 없는 양송미 씨라는 걸 알았다. 

주의: 빠심으로 가득한 문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 극장에서도 보탄으로 이름 날린 안토니오 양, 양준모 씨가 있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끝자음 까지 명확한 딕션, 보탄다운 근엄함에서부터 폭력적인 모습까지 다채로운 표현 등, 뭐 하나 부족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2장에서 처음 발할라를 보며 꿈결에 흐뭇하게 노래하는 모습에서부터 정신차리고 거인들에게 중재하는 모습, 그리고 3장과 4장에서 알베리히를 윽박지르는 변화의 폭은 참으로 훌륭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바리톤 목소리로, 보탄이 노래하는 순간에는 역시 이 맛에 바그너 듣는다 싶은 그런 매력들이 뿜어져 나왔다. 비슷한 스타일의 목소리로 토마스 코니에츠니가 생각나는데, 그의 보탄이 대체로 사악한 목소리 덕에 너무 '코니에츠니적'인 반면 안토니오 양의 보탄은 카리스마와 폭력, 그리고 낭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명징하게 전달되는 딕션과 가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아름다운 선율선을 놓치지 않는 능력이 참 탁월하다. 뉘른베르크에서 올린 링 싸이클에서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는데 역시 그럴 만하다. 옆동네에서 보스트리지 말러가 그렇게 좋았다지만 양준모 보탄을 한국에서 언제 또 들어보겠는가. 연대 교수로 부임하신 뒤부터 한국 활동이 확실이 늘어났는데, 그 와중에 국오 묻었다고 헨젤과 그레텔을 포기한게 좀 후회됐다. 

A팀의 한국인들이 대부분 유럽에서도 이름을 날린 가수들이라면 B팀은 나에게도 새로운 이름들이 많았다. 한국에 이렇게 노래잘하는 사람이 많았구나 다시 한번 놀랐다. 또한 바그너는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거 아니라는 편견과는 달리 한국인 가수들의 노래는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기준을 충분히 넘어섰다 (물론 출연진 대부분은 독일 음대를 나왔다). 아무래도 딕션 전달력 등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까지 바라면 한국이 아니라 유럽에 가야지...

한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이 대부분을 이뤘다는 점에서 이날 공연은 첫날 공연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된 반지라는 데 의의가 더 컸다.




여기까지가 공연에 대한 후기이고, 연출을 이야기하자면 최근 화제가 된 클갤 리뷰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모로 가치있는 글이고 사람들의 논의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힘을 가진 글이다. 오래 전부터 클갤에서 멸종된 알찬 후기를 종종 써주시는 분이고, 내 블로그에도 종종 와주시는 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4층에서 보느라 전면 프로젝션과 무대의 어우러짐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는데, 인물의 단순화와 이 전면 커튼을 혼합하여 일종의 심적 표상으로서 이해하고 설명한 부분은 굉장히 설득력 있으며 간결하고 탁월한 설명이다. 멀리서 보며 별 생각 없이 지나간 디테일들, 파프너가 자와 돋보기를 들고 있다는 것이라던가, 

 이 리뷰를 촉발시킨 유정우 씨의 리뷰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나도 이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메타 리뷰를 써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참이었다. 하지만 클갤발 후기가 워낙 속 시원하게 써줘서 특별히 덧붙일 이야기가 없을 것 같다. 나의 경우 유정우 씨의 리뷰를 보며 내가 썼던 리뷰를 돌아보게 됐다. 내 리뷰가 혹시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내가 극딜했던 다른 리뷰들도 조심스럽게 꺼내봤다. 다시 읽어보니 내 스스로를 변명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난 유정우 씨의 풍부한 경험이나 오랜기간 쌓아온 지식이나 내공, 또 독일어 딕션에 대한 날카로운 기준이나, 강사로서 여러가지 능력에 대해 존경한다. 나 역시 바그너를 처음 듣기 시작하던 시절 유정우 씨의 강연에 찾아가서 배웠었다. 막상 글을 쓰고나니 내 비판의 어조가 매우 강해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유정우 씨 본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중앙일보라는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에 실린 비평에 대한 비판이다.


일단 유정우 씨의 리뷰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프라이어 연출에 대해 일방적으로 혹평하며 딴지를 거는 논리가 너무 빈약하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유정우씨가 큰 관점에서 이 연출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이유는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이 리뷰에 연출에 대해 좋은말은 처음 두 문장과 로게 불꽃에 대한 말 뿐이다. 나도 포다 연출을 보면서 장점은 저것보다 더 많이 꺼내놨더라. 거기다 까는 포인트와 논리도 뭔가 영 이상하다.

또한 조명은 극의 맥락과 상관없이 불필요하게 분 단위로 변화하는 까닭에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였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일관성도 없었기에 향후 ‘발퀴레’부터는 상당 부분 정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바그너 음악극의 조명은 극의 맥락이 아니라 음악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거의 100년 전 아돌프 아피아가 이야기했던 점이다. 불필요하다는 것에 근거가 없다.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이, 뭐 똑같은 모티프가 나올 때 같은 조명이 아니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걸까? 무지개 모티프 나오면 뒤에 맨날 무지개 깔아주는 걸 원하는 건가 싶다.

그리고 2장에서는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 타이밍을 원작 설정과 다르게 조금씩 비튼 것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관객들의 예상을 어긋나게 함으로써 긴장을 유지하는 좋은 수단이긴 하지만 그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해 설득력을 지니는 것에는 실패했다. 대표적인 예가 무대 위에 미리 등장해 있던 프라이아와 거인 형제의 모습이다. 이후에도 이런 설정이 계속되었으면 명분이 있었을 텐데 다른 장면들은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기에 위화감만 남긴 셈이다. 또한 피날레에서 라인강의 처녀들을 무대 맨 앞에 배치한 것도 그들의 가창이 끝난 다음 바로 터져 나와야 할 중요한 ‘칼의 동기’가 묻히는 결과를 초래하여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인물의 등장과 퇴장 타이밍을 다르게 한 설정이 명분을 얻으려면 다른 장면에서도 비틀어야 한다는 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이게 전형적인 '한 것에 대해 까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까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2장에서 프라이아와 거인들이 먼저 나와있는게 맘에 안 들면 왜 맘에 안 들었는지 설명하면 된다. 왜 나중엔 그렇게 안 꼬았냐니, 라인처녀들이 오프스테이지가 아니라 맨 앞에 나오는 건 뭐 리브레토에 나온 대로 래요? 4장에서 보탄이 반지 뺏을 때 거인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아 4장에서도 꼬았으니 2장에서의 행동에 명분이 생기는군!"이라고 평가하셨을 건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거기밖에 없으니까 거기만 바꾸는 거라곤 생각을 못 하는 건가. 애초에 프라이아랑 거인들이 밑에 먼저 나와있는게 뭐 그렇게 특별한 "비튼 것"이라고 설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기 모티프가 나올 때 등장해야 음악적으로 적합하다는 라이트모티프 원리주의자 같은 주장이면 이해라도 할텐데 말이다. 라인처녀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노래한 것이 뒤이어지는 칼의 동기가 묻히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설득력이 없다. 트럼펫과 라인처녀가 같이 나오는거라 성악가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분장과 가면, 의상, 그리고 동작에 이탈리아 전통 광대극 ‘콤메디아 델라르테’를 응용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광대극은 우리의 남사당패와도 일맥상통하는 오랜 전통의 대중극이다. 앞서 지적한 반지 모양의 띠가 둘러진 무대바닥 위에서 알록달록한 색채의 의상을 입은 등장인물들이 인형극과 같이 양식화된 동작으로 연기를 하는 것은 흡사 우리의 마당극을 연상시켜 친근함을 느끼게도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화적인 분위기를 가진 ‘라인의 황금’이라고 해도 바그너가 그렇게도 거부하였던 관습적인 이탈리아 극의 스타일에 해석을 의존한 것은 도저히 그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원리주의자스러운 모습은 여기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가면과 분장 -> 코메디아 델라르테 -> 이탈리아 것 -> 바그너가 싫어함 -> 그러니 잘못된 것이라는 답을 도출할 수 있는 이 단순명료한 논리구조는 어디서 나온걸까. 바그너가 "반지에 가면 쓰고 나오면 절대 안됨"이라고 써논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게 금지해놨다해도 예술적으로 필요하면 시도할 수 있는거지, '바그너가 싫어한, 이탈리아 전통의, 코메디아 델라르테 스타일의, 가면과 분장'을 사용했으니 문제다라니 이게 말인지 뭔지.... 이 부분은 "사돈의 팔촌의 권위에 기대기 오류"라고 부르고 싶다.

참고로 가면과 바그너는 그리 멀지 않고, 이에 대해 잘 정리해놓은 좋은 글이 있다. 요약하자면 바그너는 코메디아 델라르테와 그리스 비극의 전통에 관심이 있었고, 그의 초기작 <요정>의 원작인 고치의 극은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포함하고 있다. 비록 바그너가 자신의 세 초기작을 폐기했다곤 하지만 <요정>의 내용은 로엔그린에도 이어져 있다. 또한 변장은 <반지>에도 계속 나오는 장치이다. 가면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특히나 비인간성을 나타내는데 탁월하다.

차라리 웅장한 바그너를 기대했는데 애들 장난같아서 돈아까웠다라는 평은 솔직하고 논리적이기라도 하지, 바그너가 이탈리아 극 스타일을 싫어했기 때문에 납득할 수 없는 연출이라니. 같은 논리라면 파르지팔은 바이로이트에서만 공연하라고 했으니 다른 오페라 극장에 올라온 파르지팔은 도대체 왜 올리는지 납득할 수 없는 공연이겠군요? 이 연출이 정말 바그너의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면 바그너가 뭘 좋아했는지 아닌지 따위는 언급할 필요도 없이 연출과 작품의 실제 결과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을 거다. 그걸 못하니까 어거지로 끼워맞춘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가장 큰 주제로 넘어가자. 저 디테일들을 까는 내용은 그저 트집잡기 수준에 불과하고 결국 유정우 씨가 가장 비판하고 싶었던 포인트는 바로 새로운 해석이 없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한다. 내가 프라이어 연출의 만하임 반지를 처음봤을 때 비슷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썼던 내 리뷰들은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이유도 내가 보통 다른 연출에 실망하는 것도 비슷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내가 쓴 만하임 리뷰에서 일부를 긁어와봤다.

하지만 연출에서 별다른 감동을 느끼긴 어려웠다. 브레히트의 제자에게서 일반적인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까. 그렇다고 반대로 소격효과로서 얻는 비판적인 느낌 역시 부족했다. 반지의 내용이 어떻게 사회 비판적인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지금, 프라이어가 작품의 이면에 있는 모습을 무대 위로 끌어와봤자 이미 인지하고 있는 내용들 뿐이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기대했지만 아이디어의 신선함 보다는 표현 방법의 색다름이 더 돋보였다. 프라이어의 연출이 작품의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고 작품 자체의 의미에 좀 더 많은 생각을 하며 볼 수 있긴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의미있을 만큼 새로운 경험은 아니었다.

(2017년 5월 만하임 DVD 리뷰 중)

나는 이 글의 처음에 내 연출 취향을 분명하게 써놨고, 연출이 진부하다는 이야기 대신, 이것이 나에게 어떤 경험으로 다가왔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 표현했다. 아이디어의 신선함 보다 표현 방법의 차이가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실제로 리뷰 중 많은 부분이 프라이어가 어떻게 독특한 시각적 분위기를 만들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도 반지를 보며 연출가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보는 걸 좋아한다. 라인처녀들이 진짜 수조 안에서 노래하고 있다거나, 라인의 황금이 의인화되서 나타나거나, 신들이 바보같은 짓이나 일삼고 있다거나, 라인골트 모텔이 나온다던가, 보탄이 알베리히의 팔뚝을 톱으로 썰어버린다던가, 보탄이 로게를 죽여버린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과연 프라이어에게 저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맞는가. 저렇게 눈에 띄게 새로운 사건이 무대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연출은 진부하고 실패한 연출인가? 나 역시 그런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연출을 사랑하며 옹호하지만, 같은 잣대를 다른 연출가들의 연출을 평가하는데 적용하지 않는다. 그런 디자이너 연출가들의 연출은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항상 말하고 다닐 뿐, 프라이어나 포다 같은 연출가들의 프로덕션을 볼 때는 새로운 것들을 기대하기 보다는 전체 무대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 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며 본다. 블로그에 리뷰한 포다 프로덕션 3개의 리뷰를 다시 읽어봤다.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연기가 아닌 디자인 요소로 보여주는 사람이며, 어떤 아이디어들을 제시했고, 어떤 요소들이 이해가 가지 않고 명확하지 않았는지 써놨다.

그 점에서 프라이어가 연극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까이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 무엇보다 프라이어가 바닥에 원을 그린 것을 가지고 진부한 아이디어며 식상하다고 평하는 부분은 부당하다는 걸 넘어 악의적으로 보인다. 그건 그냥 배경이다. 프라이어의 수많은 디자인 중 그저 딱 하나일 뿐이었다. 그럼 바닥에 원 대신 사각형이나 다이아몬드나 유대별이라도 그리면 참신하다고 해줬을 건가? 아니면 바닥을 역삼각형 구덩이처럼 파두면 덜 진부해 보이나? 평평하고 반사재질의 바닥에 추상적인 공간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천을 하나 깔았고, 거기에 누구나 알아먹을 수 있는 원 하나를 그려줬는데 진부하니 식상하니라니. 누가 보면 이날 연출에 연출가의 의도가 보이는 건 이 동그라미 딱 하나뿐인 줄 알겠다. 이해가 되는 상징은 식상하다고 딴죽이고, 다른 온갖 상징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새로워 보이지도 않는 건가. 아 새로운걸 시도하면 그건 코메디아 델라르테 같다고, 그러니 바그너와 어울리지 않으니 납득할 수 없다고 하시지.

프라이어가 제시한 여러가지 시각적인 이미지에 대해 자신이 해석하고 평가를 내리든, 아니면 내가 포다 연출 이해 못 했다고 하는 것 처럼 상징들의 뜻을 알아먹기 힘들었다고 비판을 했어야 한다. 그런 모든 것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고 까는 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유정우 씨의 리뷰가 불편했던 건 그가 연출의 실제 결과물과 효과를 두고 평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가진 기준, '그래야만 한다'라는 당위성만을 두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출가는 새로운 걸 보여줘야한다', '코메디아 델라르테는 바그너와 어울리지 않는다' '리브레토를 따르다가 안 따르다가 하면 일관성이 없다'라는 기준만 있다. 실제로 프라이어 연출의 결과물을 까는데 설득력있는 말은 수도 없이 많다. 가수들의 동선이 단순하고 무대 위의 사건이 정적이라 지루하게 느껴진다, 심한 분장으로 가수들의 표정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엔 애들 학예회 분장으로 보인다 등등등. 그나마 라인처녀가 앞에 나와서 칼의 동기가 묻혔다고 하는 주장은 공감은 안 가지만 그나마 설명의 근거가 있는 편이다. 프라이어가 바닥에 그려놓은 동그라미 원이 도대체 이날 작품을 어떻게 망쳤기에 그것을 진부하다고 비난하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그냥 공감할 수 없는 혹평이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이 글을 쓰며 하나하나 짚어보니 이건 너무나 부당한 리뷰다. 논문 냈을 때 리뷰어가 내가 해놓은 성과들은 읽지도 않은 채 '앱스트랙트의 표현이 너무 진부함', '섹션의 순서가 마음에 안듦', '요즘 이런 방법론이 대세인데 넌 왜 안씀? 신선하지 못 하네', '1870년대 이 분야를 정립한 모모 씨라면 절대 이런 방식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을 거임.'  같은 소리를 하는거 아닌가.


오케스트라에 대한 평 역시 마찬가지다. 프라임필이 연주했으면 기존 프라임필 연주 수준이나 다른 국내 오케스트라 수준을 기준치로 하고 평가를 해야한다. 공연을 보러가는 사람 아무도 프라임필이 독일 오케스트라처럼 연주해줄거라고 기대 안 한다.  정보이론 식으로 접근하면, 프라임필의 금관이 라인골트를 연주하는 와중에 삑사리를 내는 건 확률이 1에 가까울 만큼 당연한 일이라 공연을 안 간 사람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니까 프라임필의 금관이 바그너를 연주하면서 실수를 몇번 했다는 건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는 거다. 그걸 뭐 굳이 어디서 실수를 했네 뭐네 하고 쓸 필요가 뭐가 있는가. 

읽는 사람에게 최소한 정당한 정보는 전달해야한다. '바그너의 작품을 즐기기에 이 정도 오케스트라는 부족하다'라고 썼으면 깔끔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라임필이 평소보다 잘했던 공연에서 프라임필이 엉망진창이었다고 하면, 뭐 평소보다 더 망한건지 그냥 평상시 만큼은 한 건지, 평상시보다 잘했는데도 역부족인지 도저히 감이 안오지 않는가.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 어느 오페라도 직접 보지 않고 리뷰를 쓸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다이나믹 폭이 넓지 못했고 흐름이 딱딱했으며 가수와의 호흡이 맞지않는 순간이 있었다. 금관악기는 종종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줬고 오케스트라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현악기의 음정이 불안정하거나 아티큘레이션이 제대로 통일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유럽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케스트라들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다"

심지어 가수진 역시 보탄 김동섭 씨 이외에는 모두 혹평 뿐이다. 친절하게 "바이로이트나 유럽 유수의 극장에서 들었던 것과 비교하면"이라는 말을 추가해주셨으면 읽는 사람 입장에서 이해가 빠르지 않았을까 싶다. 가수들 중 실망스러웠던 부분이 있는 건 당연히 공감하지만, 전반적으로 기존 우리나라 공연에 비하면 훨씬 뛰어난 퀄리티였다는 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에 다른 음악 칼럼니스트 노승림 씨가 클갤 후기를 언급하며 페북에 유정우 씨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전체공개로 올리셨으니 링크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에서 경악한 점이 몇가지 있다. 일단 스스로 국내에서 오페라 공연을 끊은지 오래 됐고, 유정우 씨 역시 다른 '노답' 공연들은 찾아갈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이것이 정말 신문에 평론을 기고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핑계일까? 그러니까 쉽게말해서, 요새 국내 오페라 판이 어떻고 공연 수준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공연에 대해서 평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노승림씨는 낮은 기대치 덕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는 평을 썼으니 요새 오페라 공연을 보러가지 않았다는 게 큰 흠이 되진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라인골트를 후드려패는 글을 써놓고서, 도대체 그 동안 국내 다른 오페라 공연 때는 뭐했냐고 따지니, '그 분은 바쁘셔서 그런 공연 다 못 챙겨 봤을 수 있다'라고 옹호하다니. 음악계 동업자 의식은 사람의 눈을 이렇게 멀게한단 말인가. 노승림 씨의 평소 글을 재밌고 유익하게 읽고 있는 독자로서 경악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그걸 그렇게 못 챙겨봤으면서 이런 리뷰를 쓰시면 안 되는 겁니다. 독자들이 평소에 무슨 공연을 어떻게 보고 다니는지도 모르면서 평론가랍시고 글을 쓰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높으시고 돈 많으신 분들은 외국가서 좋은 공연 자주 보고 그래서 어떤 지 모르겠는데요, 저 클갤에 글 쓰신 분이나 저 같은 사람은 울며 겨자먹기로 국내 오페라라도 찾아가는 겁니다. 국내 오페라단체에 실망해서 오페라를 끊으셔서 모르겠지만, 그걸 못 끊고 뭐 하나라도 건져보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당신들한테 국내 오페라는 구리면 그냥 끊으면 되는 대상이겠지만, 누군가한테는 그게 직접 볼 수 있는 오페라의 모든 것이라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요. 저도 국오 코지 때 폭발해서 자체 보이콧 하고 있는데, 내가 왜 멍청한 국오 수뇌부 때문에 국가 세금으로 만들어주는 오페라를 버려야 하나, 보이콧 같은 알량한 자존심 버리고 그냥 다음부턴 조용히 보고 올까 고민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소위 평론가라는 사람들과 우리 같은 오페라 덕후들이 밟고 있는 땅이 이렇게나 달랐구나.


거기다 이것이 단순한 혹평과 비난이 아니라, 발전을 기원하는 평가라니,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보이나 싶다. 유정우 씨의 글에서는 프라이어 연출을 이해하려는 시도나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김학민 연출을 봐도 이것보단 장점을 더 발견하려고 애쓰겠다. 쓴소리로 보이면 모두 발전을 기원하는건가? 어떤 파트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만 하면 그것이 제대로 된 리뷰가 되는 것인가?

죽어라 까도 망하지 않을 국오는 아무도 안 까면서 (코지 사건때 제대로된 기사가 단 한줄도 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 음악 비평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저런 후드려패는 혹평 하나에 충분히 타격받을 수 있는 민간 오페라단에 칭찬없이 혹평만 줄줄이 이어놓는게 발전을 기원????? 저런 비평을 통해서 다음 작품이 더 나아질거라구요? 프라이어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조금도 이해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연출을 내놓으라고 하는게 이 공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겁니까? 오케스트라가 구렸으면, 적당히 패고 다음에는 더 좋은 오케스트라와 함께하길 기원한다 라고 써놔도 될걸, 한문단 내내 죽어라 까놓고 발전을 기원?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물론 제한된 지면 안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처럼 공연 리뷰가 신문에 실릴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중앙일보 같은 주요 일간지에 평을 하는 것이라면 이보다는 더 논리적이고 치밀해야하고, 독자들의 기대치를 고려했어야만한다. 이 글이 공연단체에 미치는 영향, 또한 이 프로젝트의 다음 공연이 엎어지기 않기만을 바라는 애호가들에게 어떤 의미일지도 생각했어야한다. 애초에 한국 오페라계에 대한 시선이 애호가들과 이렇게나 괴리가 심한 저자에게 평론을 부탁한 김호정 기자의 선택 역시 과연 적당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클갤 후기 3편에서 언급된 대로 에스더 리 단장에 대한 반감도 분명하게 보인다. 에스더리 단장이 일을 추진하며 말실수를 할 수도 있고, 썩 훌륭하지 않은 태도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기자간담회 때 뻥튀기를 너무 많이한 걸 까는 거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고 애꿎은 공연만 까내린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내 눈에도 에스더리 단장의 일 처리가 아쉬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첫날이나 막공이나 두번 다 커튼콜이 끝나고 나서 마이크를 잡고 하는 멘트가 있었다. 첫날은 트레일러 내레이션을 맡았던 성우가 올라와 돌반지 결혼반지는 봤어도 니벨룽의 반지는 처음이라는 드립으로 갑분싸 시키더니 주저리 주저리 하다가 결국 프라이어가 강남 어디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니 많이 와주시라 라는 이야기를 했다. 막공에는 에스더리 단장이 직접 나와 BMW코리아에 대한 감사를 한국어와 독일어로 길게 말했다. BMW코리아에 대한 감사도 이해하고, 그 정도 돈 줬으면 커튼콜에 직접 나와 감사인사를 하는 것도 조건으로 걸려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걸 그렇게 길게 말했어야 하나 싶다. 독일어 인사도 한두 문장도 아니고 뭐 그렇게 길게 이야기하는지. BMW도 돈 냈지만 거기 앉아있는 관객들도 대부분 돈 내고 와서 앉아있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독어로 길게 감사인사하는 부분은 수백명의 관객을 BMW에게 감사하는 데 들러리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BMW 당사자들도 과연 그 순간이 즐거웠을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물론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내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반지 올려보겠다고 저렇게 욕먹어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단장이 감사할 따름이다. 당장 내년에 테오린으로 예정돼있는데, 만약 진짜 오면 큰절 한번쯤 올릴 수 있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 쓰이는 돈이 전적으로 사적인 재산으로 보긴 어려울 수 있다. 국가 문화기금을 받을 수도 있고, 예컨데 BMW코리아의 기부 역시 반지 말고 다른 프로젝트가 받았을수도 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로 공적인 재화라고 할 수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히 회계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내가 반지 플젝에 기부한 것도 아니니 그 예산을 어디다 썼는지 모르겠다 같은 비난을 할 필요도 없다. 내 티켓값 만큼만 공연해주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난 유정우 씨만큼 독일어를 잘 하지도 못 하고 바그너 경험도 훨씬 일천하지만, 저 리뷰가 공연 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리뷰라고 깠으니 내 딴에서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들로 마무리 해야겠다.

플레츠베르거 씨가 리허설 중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공연 지휘자로 세우는 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권합니다. 바이로이트 객원은 조금만 더 늘어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듯 합니다. 공연 끝나고 마이크 잡지 마세요. 사람들이 양해해줄 수 있는 상황은 가수가 캄머쟁어가 되든 특별한 기념을 맞든 은퇴를 하든, 출연진에게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뿐입니다. 프라이어의 연출에 대해 여러가지 강연도 기획하고 했지만 좀더 직접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프라이어 인터뷰는 프라이어의 연출만큼이나 추상적이죠. 기획사 측에서 전문가를 고용해 쉬운 말로 연출의 감상 포인트를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출연진들 위주로 한팀을 꾸리는 게 괜찮은 결과를 만들었고 의의도 분명해보입니다. 이 정도 퀄리티라면 다음 발퀴레도 두번다 보러가겠죠. 지휘만 이렇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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