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슈타츠오퍼 다음 가는 극장은 테아터 안 데어 빈이다. 공연 일정을 찾아볼 때 안데어빈 공연도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이 주에는 공연이 없었다. 요즘 뜨는 지휘자라는 구가이스가 한주 전에 와서 오베론을 하던데 참 아쉽다. 대신 캄머오퍼 공연이 안데어빈 홈페이지에 올라와있었다. 학생들 공연이라길래 일단은 뒷 순위로 빼놓았다.


그러다 당통의 죽음이 일요일 오후 5시반이면 끝난다는 걸 알게되고, 이날 저녁에 볼 수 있는 공연이 뭐가 있나 찾아봤다. 그 때 이 가짜정원사가 떠올랐고 표값도 싸니 빨리 예매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예습을 하려는데 티켓을 보니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이다. 헐. 월요일엔 이미 빈 심포니커 공연 예매해놨는데??? 결국 일,월 공연인 베를리오즈 레퀴엠을 대신 일요일에 보기로 하고 월요일 표는그냥  에어비앤비에서 만난 메이트에게 주기로 했다. 25유로 티켓 때문에 68유로 티켓을 버렸습니다...


캄머오퍼 공연을 기대한 건 공연장이 진짜로 캄머오퍼 수준의 작은 공연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또 소극장 오페라 하면 꺼뻑 죽지 않나. 저번 뮌헨 체네렌톨라가 좀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정말로 즐겁게 본 공연이었다. 그 외에 뮌헨 라보엠, 런던 팔스타프, 좀 더 넓게 잡으면 퀴빌리에 돈조반니 까지 거의 인생 공연이라 해도 좋을 순간이었다. 빈에서 모차르트로 작은 극장에서 한다는데 내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공연장은 빈 1구의 한 골목길에 있다. 트램에서 내려 바이올린 케이스를 메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니 바로 나왔다.


사실 반주가 피아노인지 오케스트라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들어가보니 극장 크기에 비해 피트가 상당히 커서 2관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넉넉히 들어갈 자리가 있었다. 그렇게 기대는 더욱 커져만 가는데..

무료로 나눠준 프로그램 북을 보다가 멘붕이 왔다. 일단 캐스팅 목록에 가수들이 7명 대신 6명이 있었다. 아르민다 역 가수 이름이 아예 없었다. 뭐???? 거기에 돈 라미로는 돈나 라미라가 돼있었다. 어?? 뭐 판본이 다르나? 긴장하고 독어 시놉시스를 읽었다. 그런데 두번째 문장 부터 이렇다. Hier, im Hause des Don Angieße, trift etwa Graf Belfiore (er denkt, er hätte seine Verlobte ermordert) dessen Nichte Arminia, um sich mit ihr aus Not zu verehelichen. Hier, im Hause des Don Anchise, trift Belfiore dessen Nichte Arminda, um sich mit ihr aus Not zu verloben

돈 안기에세 집이랑 돈 안키에세랑 두명이 나와?? 벨피오레가 verehelichen 하는 아르미니아랑 verloben 하는 아르민다랑 둘이 나온다는건가??? 내가 아는 오페라가 아니야?? 아르민다 가수는 이름도 안나왔던데 가수가 아니라 연극 배우가 맡나??

도대체 얼마나 개작한걸까 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연 다 보고 다시 숙소에 와서 읽어보니 그냥 만든 사람이 멍청한 실수를 한것 뿐이었다. 



불안한 조짐은 서곡에서도 이어졌다. 오케스트라가 참 강하게 튀어나오는데 좀처럼 스타일을 종잡을 수가 없다. 묵직하고 중후한 모차르트도 아니고, 시대연주 스타일로 날카롭게 치고빠지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냥 무대뽀 스타일..? 개방현을 의도적으로 쓰는 것 같은데 어색함이 묻어나온다. 패기가 넘치는게 뭔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초반 앙상블 이후 첫 나오는 아리아에서 비올라가 솔로를 제대로 뽑아내는 걸 보고 단원들 기량은 좋은게 맞구나 싶긴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들어낸 헛된 희망일 뿐이었고 막판까지 정말 못했다.


여기에 서곡 내내 무대에서는 어떤 연출도 없었다. 남주가 여주를 찔러 죽인게 막전에 일어나는 사건이라 보여줄법도 하고, 워낙 인물들끼리 연애관계가 얽히고 설킨 작품이라 서곡을 활용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런것도 없었다. 빈의 오페라 연출은 역시 독일이나 영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가수들은 대체로 훌륭했다. 가수들 목소리 개성도 뚜렷하고, 작은 홀이다보니 전달도 좋았다. 포데스타와 세르페타가 연기와 노래가 좋았고, 돈 라미로를 맡은 가수는 목소리가 특별하지도, 성량이 두드러지지도, 연기가 돋보이는 것도 아니었는데 가장 빨려드는 노래를 들려줬다. 목소리가 고급지고 음색이 일관되며 음 사이의 연결이 매끄러워 천의무봉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노래였다. 한국인 가수도 두명 있었는데, 둘 다 노래가 참 좋았다. 좀 아쉽지만 벨피오레를 맡은 가수는 딕션에서 한국어 느낌이 조금 남아있었다. 중간에 노래를 하는데 "나도 미워! 나도 미워!" 라고 들려서 지금 한국어로 드립치는 건가 하고 깜짝 놀랬는데 자막을 보니 가사가 Nardo mio, Nardo mio였다. 


가수들이 구멍하나 없이 잘해줬지만 반주가 엉망이었다. 빈에서 모차르트를 하면 다 기본은 하지 않을까, 21세기 모차르트의 수도는 페름이라고 생각하지만 취향에 안맞더라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그냥 총체적 난국이었다. 1바이올린의 음정은 끊임없이 쪼개지고 흐트러졌고 저음 현의 스피카토 반주는 뚝뚝뚝 기계적으로 끊길 뿐이었다. 좀 괜찮네 싶은 부분도 있지만 잠시일 뿐, 같은 음형이 반복될 때 정말 똑같이 기계적으로 강박 넣어가며 연주하는 거 보고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었다. 처음엔 종잡을 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스타일 통일 없이 그냥 활 가는대로 연주하는 거였다. 아티큘레이션 통일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가수들은 학생이어도 당연히 준비도 많이했을 테고 자기 역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고 나왔는데 오케스트라는 겨우 오브리 오케 수준이었다. 가수가 구린 모차르트는 참아도 오케가 구린 건 들어줄 수가 없다.


연출 역시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었다. 어제 당통의 죽음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가수들이 뭘 살려보려고 하는데 역부족이다. 아무래도 거의 바로크 오페라에 가까운 노래 구조 때문도 있겠지만, 가만히 서있는 걸 겨우 면한 수준. 상설 오페라 단체의 연출이라고 하기엔 많이 아쉬웠다. 


날씨는 더운데 비는 와서 공연장 안까지 눅눅했고, 피곤하기도 했고, 예습을 별로 못하기도 했다. 내 컨디션 때문에 공연이 별로였나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가수들이 잘해주는 부분에서 재밌게 들었던 것, 돌아오며 야콥스 반주 레코딩을 들으니 상쾌하게 귀가 정화되는 걸 보니 오케 반주가 제일 큰 문제였구나 싶었다.  


작은 극장에서 하면 다 잘 뽑힐 줄 알았는데, 그것도 짬밥있는 반주와 연출이 해야하는 거였다. 공연을 보면서 갓갓 코민과 팔스타프 연출이 너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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