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공연한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이 작품의 첫 블루레이 발매였다. 연출가 루이지 피치를 안 좋아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구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구입한지 얼마 안 돼서 오푸스 아르테가 ENO(English National Opera, '국립'은 아니라서 번역하기 까다롭다)의 동작품 공연을 한글 자막까지 삽입해 발매했다. 아마 이 작품을 한글 자막 삽입해 박종호시리즈로 발매한 아울로스 입장에서도 타격이 있지 않았을까.


사족인데 Death in Venice를 번역하기가 참 까다롭다. '에서의'라는 조사가 어색한데 '베니스에서 죽음', '베니스의 죽음' 역시 썩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니스에서 죽음'은 죽음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어버리고 '베니스의 죽음'은 죽음의 주체가 베니스가 되기 때문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어색한 번역이라고 하면 다른 두개는 틀린 번역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공연을 보면서 아무래도 연주보다는 작품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과는 다른 브리튼만의 특징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1973년 초연으로 1971년 개봉한 그 유명한 동명의 영화보다도 늦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오페라로 만들었다고 할 때 가장 궁금한 것은 과연 타지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다. 브리튼은 이 문제에서 훌륭한 답안을 보여준다. 타지오를 무용수로 표현한 것이다. 오페라에서 중요한 인물이 가수가 아닌 사례는 그 앞에서도 몇몇 찾아볼 수 있다. 연극배우가 맡은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의 태수 젤림이나 마탄의 사수 자미엘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그 외에 마님이 된 하녀의 묵역인 베스포네도 떠오른다. 하지만 무용수라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발레 오페라들에서는 이런 사례가 있을련지 모르겠다. 이렇게 타지오를 무용수로 표현했을 때 확실히 나타나는 장점이 있다. 일단 주인공 에셴바흐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타지오는 어떤 대사도 없으며 음악이 아닌 무용이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또 다른 장점이라면 타지오의 외모 기준을 맞추기 훨씬 쉽다는 것이다. 오페라에서 외모로 캐스팅하는 건 지양해야하지만 타지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순전히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으로 에셴바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외모 자체가 미학적 가치를 지녀야만 한다. 이런 사람을 캐스팅하는 데는 가수보다 무용수가 훨씬 적격이다.


브리튼의 오페라에서는 기존 오페라와 달리 감정 보다는 심리 묘사가 더 주를 이룬다. 너무 자의적인 구분일 수 있지만, 감정은 희노애락과 같은 비교적 큰 카테고리로만 구별하는 반면 심리 묘사는 훨씬 세부적이다. 물론 어느 오페라에서든지 인물의 심층적인 심리를 분석한다는 것은 가능하며 그것이 음악에서도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브리튼의 오페라에서는 인물이 뚜렷한 감정을 보이기보다는 세밀한 심리 변화를 보여준다. 때문에 인물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이 이전 오페라들에 비해 더 까다롭다. 에셴바흐가 베니스를 떠나려다가 짐을 찾지 못해 돌아가는 장면에서 에셴바흐의 감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베니스의 열기와 떠들썩한 사람들을 이기지 못하고 독일, 이성의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과 타지오를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는 기쁨이 교차한다. 이 장면을 복합적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심리 묘사라고 부르고 싶다. 나사의 회전의 인물들은 또 어떤가. 어린 아이들의 감정, 유모의 감정, 가정 교사의 감정은 오페라 전반에 걸쳐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피터 그라임즈 역시 인물의 관계 속의 심리를 읽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다. 


단순한 감정보다는 복잡한 심리를 표현한다는 것이 브리튼 오페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면 이는 음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복잡한 인물의 감정을 잘 표현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에서는 오케스트라가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오케스트라고 가수들은 오케스트라의 흐름에 끼어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브리튼의 경우 언제나 가수가 먼저다.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절제되어있으며 극을 이끌어나간다기보다는 분위기만 만들어준다. 레치타티보 세코를 연상시키는 피아노 반주 역시 대표적인 특징이다. 또한 이 작품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선 타지오를 묘사하기 위해 실로폰과 같은 타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인물을 음악적으로도 다른 세계에 옮겨놓는다.


오페라 리브레토는 상당히 특이하다. 원작 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상당히 충실하게 옮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2시간 30분 정도의 길이지만 상당히 많은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어 극의 진행이 탄탄한 편이다. 특기하고 싶은 점은 외국어의 활용이다. 영어 오페라인데도 극 중에서 외국어가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오페라에서 원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등장하는 부분으로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나 카프리치오에서 이탈리아 가수들이 노래하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선 극 전반에 걸쳐 외국어가 나온다. 에셴바흐가 베니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호텔 지배인이나 영국인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간단한 이탈리아어를 섞어서 말한다. 호텔 로비에서 각국에서 온 숙박객들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덴마크어 등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며 극중 떠돌이 음악가들이 노래하는 것 역시 이탈리아어다. 이런 장치는 극이 에셴바흐의 고향과 정반대의 성질을 상징하는 베니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관객들은 에셴바흐와 함께 자연스럽게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특히 떠돌이 음악가가 이탈리아어로 풍자 노래를 부를 때 호텔의 숙박객들은 모두 하하호호 웃지만 진짜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은 알아들을 수 없어 철저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아 물론 페니체 관객들 처럼 이탈리아인이거나 한글 자막으로 보면 이런 효과를 느끼기 힘들겠지만. 영어 자막으로 보면 번역 없이 리브레토의 언어대로 나오는데, 극에 나오는 이탈리아어들이 어렵지 않은 것들이라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 부분에서는 몇가지 놓쳤다.


음악적으로는 극의 마지막에 하프반주로 등장하는 에셴바흐의 독백이 매우 아름다워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음악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어 마치 에셴바흐가 이미 죽어 천국에서 읊조리는 듯한 느낌이다. 



공연은 훌륭하다. 테너 말린 밀러Marlin Miller는 맑고 깨끗한 목소리인데 노래는 훌륭하지만 ENO공연의 존 그레이엄-홀에 비교했을 때 연기가 부족하다. 나이가 에셴바흐를 맡기에는 너무 젊은 것도 단점이다. 에셴바흐의 중요한 성질 중 하나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인데 이 점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바리톤 역의 스콧 헨드릭스는 이전에도 두 개의 영상물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연기력과 가창 모두 뛰어난 가수다. 에셴바흐를 디오니소스의 세상에 끌어들이는 악마와 같은 인물들을 잘 표현해냈다.


피치의 연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피치의 오르페오를 보고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내는 것보다 인물의 심층적인 심리를 분위기있게 표현해내는 데 뛰어난 것 같다. ENO의 연출에 비하면 훨씬 암울하고 정적이지만 시각적으론 충분히 아름답다. 합창단을 무대에 올리지 않고 피트에 넣은 것도 오묘한 효과를 낳았다. 디오니소스와 아폴로가 나오는 꿈 장면 역시 선정적이지만 의미를 잘 전달해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ENO의 공연에 좀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연출에서 타지오의 매력이 충분히 표현된 것 같지도 않고, 극에서 가장 중요한 에셴바흐는 그레엄-홀이 너무 훌륭하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궁금하다면 ENO의 타이틀을 사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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