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미래란 게 있을까?


영상을 본지 5분 만에 그만 볼까 고민했다. 반주와 연출, 가수 까지 총체적 난국이다. 다행히 네제-세겡의 반주는 뒤로 갈수록 폼이 올라온다. 하지만 나머지는 끝까지 추락한다.


메트의 연출이 언제 내 맘에 든 적이 얼마나 있겠냐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1막 오프닝은 모든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짜릿한 합창 장면이다. 이 폭풍같은 극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작이고 지휘자나 연출가나 여기서 관객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네제-세겡의 밋밋한 반주는 둘째 치더라도 바틀렛 셔의 정지 화면 같은 연출은 황당한 수준이다. 합창단에 어떠한 생명력도 없다. 아니 이건 이탈리아에서도 상상을 못할 정도로 단조롭다. 차라리 합창단원에게 알아서 연기를 하라고 해도 이것보단 자연스러울 테다. 번개라고 조명 장난 치는 것도 무슨 애들 장난 처럼 만들어놨다. 무대 전체가 난장판이 나야하는데 무대의 그 특유의 메트스러운 색감만 강조된다. 객석까지 같이 조명쇼를 하는데 그냥 무대 안에서만 제대로 해도 되는 걸 괜히 이상한 수작을 부린다.


바틀렛 셔는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연출가인데 도대체 그 브로드웨이에서 뭘 하고 있길래 오페라 연출을 이런 식으로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합창단이라는 걸 처음 보나? 합창단원도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나? 목석이 된 합창단원들 때문에 분위기는 굳는데 그렇다고 다른 연출로 무대를 채워나가는 것도 아니다. 움직이는 구조물로 화면 전환을 빠르게 가져가는 걸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오텔로의 각 장면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탈리아식 자연주의와 영국식 사실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며 그 이도저도 아닌 무대를 만들어냈다. 


3막에서 이아고와 카시오가 이야기를 나누고 오텔로가 엿듣는 장면에서는 무대 전환을 끊임없이 활용한다. 할 줄 아는 게 무대 전환 밖에 없으니 그것만 열심히 하는 거다. 물론 그렇게 만들면 오텔로가 카시오의 말을 계속 놓치게 된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순 있다. 하지만 오페라에서 관객들이 다 알아서 넘어가는 게 있다. 돈 조반니에서 레포렐로의 변장을 가지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없고 코지 판 투테에서 굴리엘모와 페란도의 변장이 얼마나 사실적인지에 관심이 없는 것 처럼 오텔로의 위치가 카시오의 대화를 얼마나 놓치기 쉬운 것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외엔 정말로 연출이 없다. 응당 연출 지시가 있어야 할 곳에도 없다. 3막에서 오텔로가 데스데모나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장면에서도 다들 제자리에 석상처럼 서있다. 하.. 우리 맥비커 슨상님이 연출하시면 이런 일은 상상도 못할텐데...  결국 가수들 스스로의 연기에만 의지하게 된다.아 1막에서 카시오의 칼부림 장면이 아주 실감나게 처리 됐다는 건 인정하고 넘어가겠다. 근데 그건 연출이 한게 아니라 싸움 감독이 만든 거잖아? 오페라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칼싸움 장면이었으면 연출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아 거기다 표지에도 등장하는 2~3막 데스데모나의 붉은 드레스는 왜 그런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비올레타나 카르멘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한 색깔인데, 차라리 데스데모나 성격을 그렇게 해석했으면 신선한다고 박수라도 쳐주겠다. 욘체바는 인터뷰 때 데스데모나는 강인한 여자 어쩌고 하지만 정작 무대 위에서는 존재감 없이 겁먹은 데스데모나일 뿐이다. 새빨간 드레스로 뭘하려던 걸까. 솔직히 가수 가슴라인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제일 클 것 같다. 


연출이 최악을 향해 열심히 나아갈 때 옆에서 부채질 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젤코 루치치다. 도대체 루치치의 매력은 뭘까? 루치치의 목소리는 고음부에서 힘없이 쉰소리가 난다. 알맹이가 안잡혀서 옆으로 퍼져나가는 쉰 소리 말이다. 그렇다고 저음이 딱히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폭발시키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 발음도 구리다. 1막에서 카시오에게 술 권할 때 Beva beva con me를 하는데 va 발음에서 자음이 사라진다. 이탈리아 오페라만 하는 분이 이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뭔가 노래가 좀 부족하면 킨리사이드 처럼 연기(혹은 근육)로 커버를 치거나 노래 표현력으로 승부를 봐야하는데 사실 루치치가 제일 안되는 게 그거잖아?

자 비교해봅시다. 옛날 분들 모셔오면 불공평하니 요즘 분으로 모셨습니다.

가수 비교하려고 가져온 영상인데 비교해서 들으니 애꿎은 네제-세겡이 무티한테 뺨맞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루치치는 메트 스칼라 로열 오페라 바이에른을 다 쌈싸먹으면서 이아고 맥베스 스카르피아 리골레토 같이 대박 역할만 얻어내는 거지???? 실연에서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는건가. 아니면 얼굴이 커서 무대에서 표정이 잘보이는 이점이 있나?? 아니면 내 귀가 슈퍼 막귀라 이 시대의 참 바리톤을 못 알아듣는 걸까.


루치치 혼자만 까면 미안하니 옆에 소냐 욘체바Sonya Yoncheva도 같이 까자. 요즘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소프라노다. 그런데 딕션이 구리다. 아 불어나 독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 딕션이 너무 불명확하다. 음표 하나하나를 예쁘게 부르려다보니 비브라토가 과한 편이고 르네 플레밍이 떠오르는 프레이징도 나온다. 그리고 저음에서 목소리가 불안하다는 약점이 있다. 고음에서 상당히 깔끔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지만 아쉬울 때가 더 많다. 그래도 4막 버드나무 노래와 아베 마리아에서는 아주 아름다운 피아노를 들려준다. 원래 페르골레시나 모차르트 쪽을 많이 부른 것 같은데 데스데모나는 너무 건너 뛴 게 아닌가 싶다.


안토넨코Aleksandrs Antonenko는 요새 오텔로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몇 안되는 테너 중 한 명이다. 실력에 비해 영상물이나 음반이 많은 편이 아닌데, 이번에 메트 오텔로와 로열 오페라 Cav/Pag가 발매됐다. 쿤드의 오텔로도 괜찮지만 안토넨코 처럼 미쳐 날뛰는 소리도 좋다. 목소리 자체가 드라마티코를 할 만큼 많이 어두운 건 아니지만 내지르는 힘 하나 만큼은 확실하다. 여기에 오텔로 경험이 많아서인지 필요한 순간에 가사 표현력 역시 괜찮다.


곁다리로 로도비코 역에 귄터 그로이스뵉이 나온다. 처음에 보고 "메트에 그로이스뵉 닮은 베이스가 있네 진짜 닮았다ㅋㅋㅋ"했는데 나중에 재킷 다시 보니까 그로이스뵉 맞더라. 아니 아저씨 왜 뉴욕 와서 이런거나 하고 있어요....


네제-세겡의 지휘는 일반적인 베르디 지휘와는 스타일이 꽤나 다르다. 무티나 레바인이 보여주는 폭발적이며 역동적인 베르디는 찾아보기 힘들다. 슈만을 하듯 깔끔하고 단정되게 만든다고 할까. 오히려 세부적인 아티큘레이션에 더 신경을 많이 쓰는 듯 하다. 1막에서 권주가를 부를 때 바이올린의 유머러스한 음형을 잘 표현해낸다. 아기자기하고 짧은 프레이징 안에서 디테일을 살리는 걸 잘하고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항상 큰 그림보다 마이크로 디테일을 본다고 말한다.

난 베를린필 디지털 콘서트홀에서 네제-세겡의 베필 데뷔 공연 환상 교향곡을 보고 완전히 반했는데 요즘 슬슬 그의 능력에 물음표를 달아가고 있다. 성남에서 보여준 로테르담 필 내한 공연때도 괜찮았지만 최근 들어본 브람스 교향곡 3번도 별로였고 메트 루살카 역시 인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필리랑 한 브9가 그렇게 좋다카던데 사실 내가 브루크너를 또 많이 듣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호빗 지휘자 아웃풋 갑으로 밀고 싶은 사람이라 좀 잘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커튼콜 할 때 안토넨코랑 루치치 옆에 서는데 진짜 초등학생ㅠㅠ 지금 정도라면 잘 쳐줘도 "메트에 재미있는 지휘자가 있어" 정도밖에 안될 것 같다. 음악에 분명 자기 스타일이 분명하고 흥미롭긴 한데 청중을 휩쓸고 지나갈 카리스마가 아쉽다.


메트가 미래가  안 보이는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이런 글러먹은 프로덕션을 시즌 오프닝으로 선택한 안목이라든지, 네제-세겡이 과연 레바인의 명성을 쫓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왜 메트의 가수 캐스팅은 이렇게 이름 값을 못하는 건지. 아 거기다 영상물 한정으로 하면 제발 그 오케스트라 피트 정도 높이에서 무대 올려다 찍는 짓좀 안 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미지 프로세싱 전공이었으면 메트 카메라 워크 분석해서 이게 시청자를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지 실험해서 검증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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