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연출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의 감정에 관객들이 몰입하게 해주거나, 혹은 반대로 의도적으로 몰입을 방해하더라도 관객에게 특별한 메세지를 줄 수 있다. 대개의 이탈리아 연출가들은 무대에 생동감과 진실함을 불어넣지도 못하고, 탁월한 아이디어를 효율적인 방법으로 전달하지도 못한다. 

이 날 파비오 체레사의 무대는 이탈리아 연출의 장점 조금과 많은 단점을 보여주었다. 나부코의 포다보단 나았고, 놓쳤지만 안 봐도 뻔한 델 모나코의 아틸라보다도 나았을 테다.

이탈리아 연출스러운 특징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무대 정중앙에 놓인 거대한 심볼, 의상에 상징적인 색을 넣어서 대비 시키는 색깔 놀이, 개성 없는 캐릭터, 정적인 합창단, 전통적인 발레라기엔 밋밋하고 전위적인 무용이라고 하기엔 단조로운 안무.

오렌지 색과 Cyan청록색의 대비는 시칠리아와 프랑스를 단순히 선악,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단조로운 이분법을 어느정도 완화시켰다. 이 점에서 하얀색과 빨간색 색깔놀이를 한 포다 나부코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이 색깔이 주는 가벼움은 전반적으로 무대를 단조롭고 조금 조악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체레사의 이전 한국 연출이었던 오를란도에서 보여준 만화스러운 느낌과도 닿아있다. 차라리 하얀색 옷만 입고 있는 5막의 첫장면 무대가 더 고급스러워보였던 걸 생각하면 그 색깔이 문제다.

1막의 오렌지 나무, 2막의 돛과 3막의 시칠리아 섬+왕좌는 좋게 말해 무난한, 나쁘게 말하면 단조로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뻔한게 낫다는 걸 4막에서 보여줬다. 4막의 행성은 진짜 무리수였다. 연출가 노트 보니까 그걸 통해서 이 작품의 의미를 전 지구로 넓히고 어쩌고 이랬던 것 같은데, 아주 구트 라보엠 마냥 우주선을 쏘지 그러세요? 무대에 동그란 행성을 크게 매달아놓으면 오페라의 메세지가 온 지구 스케일과 인류 전체로 확장되는거였네. 그 쉬운 걸 왜 다들 몰라서 안하고 있었을까.. 엘레나를 와이어에 매달아서 승천하는 마리아 마냥 만든 것도 뜬금없었다. 그 와중에 중앙 거대한 행성은 가운데 이어붙인 부분 마감이 매끄럽지 않아 티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3막의 피날레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1막에서 오렌지를 쥐고 있던 사람들이 리본 대신 긴 오렌지 색 천을 손에 묶으며 투쟁을 이야기한다. 엘레나의 암살 실패 이후 한명씩 체포되어 무대 중앙의 시칠리아 지형 위로 모이고 아름다운 드레스의 엘레나를 중심으로 뭉친뒤 시칠리아인들이 손에 쥐고 있는 천과 비슷한 형태의 긴 오렌지 색 천이 무대 위로 높게 펼쳐지는데, 이때 아주 확장된 템포의 합창과 잘 맞아 떨어지며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 순간에도 체포되는 합창단 동작의 어색한 단조로움이라던가, 어떤 단원은 천을 묶지 않은 반대편 손을 들고 잡혀가는등 엉성한 장면을 보였다.

이처럼 단조롭지만 나름 효과적인 장면들이 있었다. 2막 프로치다의 아리아 시퀀스에서 프랑스 색 깃발을 내리고 시칠리아 깃발을 올리고 노젓는 방향을 바꾼다든지, 1막에서 두 세력이 대립하는 합창 동선은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이런 단조로운, 혹은 떠먹여주려는 연출이 극 배경의 죽은 인물 (페데리코 공작이라던가 아리고 엄마라던가)을 직접 소환하는 형태로 연출한 건 진부했고 극의 몰입이나 감정 전달에도 별로 도움을 못주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연출 포인트는 바로 결말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이다. 4막에서의 화해 이후 5막에서의 비극은 여러모로 미스테리하다. 작품이 원래 파리에서 초연됐던 걸 생각하면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미스테리인데, 현시대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더더욱 폭력적인 결말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프랑스 사람들은 알고봤더니 착한 사람들이고, 시칠리아 사람들은 평화를 깨트린 과격분자라고 말하기에는,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의 입장을 너무나 단순화시키는 일이다. 이제 화해했으니 잘 지내보자는 건, 한국 관객으로선 내선일체를 떠올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무차별적으로 무방비 상태의 지배계층을 살해하는 장면에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어렵지 않겠나. 이러한 미스테리 속에서 프로치다와 시칠리아인들의 행동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일단 캐릭터 개개인의 감정을 공감가게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한 이탈리아 연출가들에게 프로치다와 몽포르테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건 과한 기대다. 프로치다는 의상도 그렇고 원시부족장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어떤 점에서는 자기 부족/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피의 복수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의 인간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 동선과 연기를 통해 프로치다의 동인을 제대로 설명하는 부분은 없었다.

피날레의 살육 장면은 너무나 급작스럽고 짧게 끝나버려 허무한 느낌까지 주는데, 체레사의 연출 역시 여기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이 부분의 연출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접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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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살해 동작은 없이, 종이 울리면 시칠리아인들은 노란 오렌지를 높이 들어보이고 청록 오렌지를 들고 있는 프랑스인들은 독살당한 것 마냥 천천히 쓰러진다. 갑자기 억하고 죽는게 너무 상징성만으로 전개하는 느낌이라 관람하는 순간에는 별로였다. 곱씹어보면 특정한 누군가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일어난 살육이 아닌, 마치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처럼 프랑스인들의 살육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듯 하다. 

그 외에 3막 무도회 장면에서 남남/여여 커플은 죽이고 남녀 커플 한쌍만 살려놓는 것도 차별이라는 키워드로 메세지를 넣고 싶어하는 연출이었을텐데, 다른 것들과 이어지지 않아서 따로 놀았다.

서곡에서 무대 막을 올리길래 뭐 괜찮은 걸 준비했나 싶었는데 솔직히 별 내용도 없고 안무가 음악의 진행이랑 어울리지도 않았다. 이탈리아 연출답지 않게 연출이 음악을 방해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2막 타란텔라였나에서 합창단이 무대 두드리며 박자 치는데 오케스트라 연주랑 안 맞아서 짜증났다. 무대 배경이 모두 천 재질로 돼있어서인지 가수들이 무대 가운데서 부르면 음향적으로 손해를 많이 봤다. 3막에서 몽포르테의 아리아와 듀엣은 그 점에서 연출이 아쉬웠다. 2막 프로치다의 아리아에서도 합창단이랑 가수들이 같이 노젓는 행동을 했는데, 허공에서 노젓는 동작이라는게 각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서 다른 합창단원들끼리도 잘 안맞고 가수는 더더욱 노래부르랴 따라서 노저으랴 불안해보였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최근 죄다 이탈리아 연출가만 부르는지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음악은 훌륭했다. 홍석원은 역시 탁월한 지휘자다. 베르디 오페라에 나오는 다양한 반주 어법들의 뉘앙스를 잘 살려내며 그때그때 분위기를 잘 조성해냈다. 무리하지 않고 잘 세공해나가다가도 강조할 파트에서는 자신의 주관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이런 지휘자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국내 관객에게는 참 행운이다. 

합창단은 분량이 아주 많은 작품이라 빡셌을 텐데 잘 소화해냈다. 3막 피날레는 쉽게 듣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언제나 감탄하는 가수이지만 서선영은 이날의 탄탄한 캐스팅에서도 명확하게 빛났다. 음색, 성량, 기교, 표현, 연기 어느하나 빠지는 것 없는 오페라 가수다. 프로치다의 최웅조 역시 엄청난 소리를 들려줬는데, 2막 아리아도 대단했지만 5막에서 엘레나에게 마지막으로 협박하는 저음은 엄청난 긴장을 응축하는 순간이었다. 양준모의 몽포르테도 역시나 좋았는데 연출적인 면에서 오히려 좀 손해를 본 느낌이다.

강요셉은 그간 해준게 얼만데, 안 좋은 이야기 하기가 안타깝다. 이날 앉았던 자리와 비슷한 위치에서 광분하는 2막의 알프레도를 보며 감탄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오페라 이외의 개인적인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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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직장을 옮겨서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육아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느라 근 1년만에 공연장에 다녀왔습니다. 이직하면서 해외 취업 절차 중 마지막 단계만 남겨두고 있다가 다른 좋은 기회를 얻어 한국에 남아있는 걸로 선택했습니다. 좀 더 큰 물로 나가 실력을 키우고 입증하며 탁월한 연구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여기에 남아서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들도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잡고 그러면서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전혀 잃지 않는 이 날 공연의 출연진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에 또 다른 이유로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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