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데 바르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바그너 - 니벨룽의 반지 축약본 (헨크 데 블리거 편곡)
압두라이모프는 탁월한 음색과 기교를 겸비한 피아니스트였다. 이름은 처음 들어봤지만 프로필 커리어를 보고 기대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첫날 후기가 좋더라. 역시 기대대로 화려하면서도 내실있는 연주를 보여줬다.
각성부가 뚜렷하게 전달되도록 애썼으며 리듬의 균질감도 훌륭했다. 몰아치다보면 리듬이 흔들릴 수 있지만 압두라이모프는 빠른 템포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또렷하게 음표를 소화해냈다. 2악장에서 보여준 대비도 돋보였으며 3악장 피날레에서 흔들리지 않고 휘몰아치는 부분은 곡에 압도당하지 않으며 자신을 내보인 연주였다.
반면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1악장 때부터 앙상블이 불안하였으며 독주자와 엇나가는 대목이 여럿 나타났다. 독주자가 안정적으로 흐름을 이어나가는데도 오케스트라가 헤매더라. 전체적인 반주의 흐름도 유기적이지 않아 2악장에 등장하는 트럼펫 솔로는 곡 특성상 특별한 효과를 주는 곳이라 하더라도 너무 따로 놀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위기 전환이 문제가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그 전환을 충분히 못따라간다는 인상이었다. 3악장의 느린 선율 역시 특별한 늬앙스를 갖지 못하고 어영부영 넘어갔다. 특히 처음에 첼로만 연주할 때는 너무 밋밋해서 듣어주기 힘들었다.
시향의 바그너 사랑은 알아줄만 하다. 꽤나 굴곡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 첫도전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였고 두번째는 이 헨릭 블리거의 판본이었을 테다. 정명훈은 결국 허리 통증 때문에 공연 당일 펑크를 냈다. 다시 날짜를 잡아 올린 공연은 정명훈 서울시향의 네임밸류를 생각했을 때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 뒤 라인골트는 정명훈과 서울시향 모두의 단점이 드러난 공연이었다. 정명훈은 발퀴레 때 또 한 번 펑크를 냈는데 서울시향 공연을 펑크낸 두 번 모두 바그너 반지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바그너 알러지, 최소 반지 알러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대타로 나온 트링크스의 평이 더 좋았다는 게 함정.
데 바르트의 바그너는 작열하지 않았다. 그의 성향은 데 블리거의 편곡이 지향하는 바와 일치한다. 데 블리거의 편곡은 대표적인 대조군인 마젤과 비교하였을 때 온갖 작열 포인트를 삭제했다. 돈너의 망치가 빠지고 라인처녀의 노래가 들어갔으며 발퀴레 1막의 불타는 사랑이 사라지고 브륀힐데가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가장 힘이 넘치는 작품인 지크프리트의 비중이 데 블리거의 판본에서 더 증가했음에도 이러한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데 블리거는 지크프리트의 호른 콜을 넣는 대신 1막 노퉁을 벼리는 장면을 넣지 않았다.
데 바르트의 스타일 역시 이 편곡의 방향에 어울렸다. 난 로게의 마법 불이 그렇게 천천히 타오르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지크프리트가 마법의 불을 건너는 장면에서 나오는 지크프리트의 모티프는 영웅적이라기보다는 찬송가적이었다. 지크프리트가 브륀힐데를 만나는 장면에서 모든 선율은 아름답게 부풀어오르 듯 연주됐다.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너무.
더 큰 문제는 서울시향의 현이 지휘자가 원하는 대로 부풀어오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라인골트 전주곡부터 현은 아무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바그너스러운 기계적 패시지가 나타날 때마다 현악기는 제대로된 소리를 못냈고 라인골트 전주곡에서 흘러넘치듯 쏟아지는 라인강의 소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점은 마법의 불을 연주할 때든 라인강을 연주할 때든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라인강 기행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몰레이션에서 다시 현의 소리가 충분히 채워지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결국 남은 건 어쩌면 데 블리거 판본의 장점과 가장 거리가 먼 금관이었다. 데 블리거의 판본에서 금관이 활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컨데 금관을 갈아 넣어서 곡을 이끌어 나갈 거였으면 마젤 판본이 나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날 금관이 보여준 앙상블은 아주 탁월했다. 호른 수석 역시 호른콜을 끝의 실수를 제외하면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역시나 가장 압권은 서울시향의 노퉁이라 불릴 만한 트럼펫 수석 바티였다. 말 그대로 차이나는 클라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연주였다. 라인골트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장면에서 울려 퍼진 바티의 트럼펫 소리는 곡 초반을 빛낸 하이라이트였다.
바그너를 연주할 때마다 서울시향은 현악기의 단점을 감추지 못한다. 오늘 연주에서는 유독 현악기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바그너를 연주하는 매 공연 썩 좋지 못한 평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바그너에 도전하는 정신에는 박수쳐주고 싶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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