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구트가 이런 사람이었지.
어느 덧 모페라 파는 블로거가 된 것 같다. 일단 저를 이렇게 만들어준 뮌헨의 명지휘자 마르코 코민 방향으로 마음의 절 한번 올리구요. 코민이 얼른 백수탈출 하길 기원하며 시작하겠습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빠심이란 게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클라우스 구트가 연출한 잘츠부르크의 다 폰테 삼부작은 현대 모페라에서 하나의 마일스톤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그 뒤에 잘츠부르크 예술감독이기도 한 스벤에릭 베흐톨프가 다시 다 폰테 삼부작을 완성했지만 구트에 비하면 평범한 프로덕션으로 평가하고 싶다.
구트의 삼부작 중 피가로와 돈조는 오페라에 입문하면서 보았던 영상이다. 이게 현대 오페라 연출이구나라는 걸 오페라 뉴비에게 가르쳐줬던 작품이다. 이상하게 코지는 볼 일이 없었다. 코지에 입문한 건 한참이 더 지나고 나서였고, 그때는 새로 발매된 블루레이만 겨우 조금씩 모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된 코지 영상을 살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코지를 보게됐다.
구트 연출의 가장 큰 장점은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보는 입장에서 재밌을 수밖에 없다. 돈 알폰소와 데스피나에겐 특히나 더 많은 움직임을 요구했다. 이 작품을 무겁게 만든 예는 많지만 구트는 인물들이 상처 받는 장면들을 제대로 포착해낸다. 희극적인 장난이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출해냈다는 점이 특히 훌륭하다. 높이를 분할한 무대 구성, 인물의 본성이 드러나는 2막에서 자연의 범람은 구트가 항상 자주 사용하는 메타포라할 수 있다. 굴리엘모가 피오르딜리지의 노래를 들으며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은 특히나 섬세한 장면이었다.
가수들의 면면도 모두 훌륭하다. 굴리엘모 역을 제외하면 모두 내가 알고 있는 가수들이었다. 미아 페르손Miah Persson은 흔치 않은 스타급 모차르트 소프라노라 할 수 있다. 깊이있고 울림 좋은 목소리로 다른 레퍼토리에 도전해볼 법도 한데 굳이 위험한 탈선을 시도 하지 않는다. 페르손의 외모는 플레밍을 떠올리게 하나 프레이징 스타일은 전혀 닮지 않았다. 목소리는 조금 닮은 구석이 있는 듯. 모차르트 오페라를 대체로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들이 가져가고 있는 와중에 페르손은 다른 레퍼토리도 곧잘 해낼 것 같은 목소리로 모차르트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몇 안되는 가수다.
도라벨라는 이자벨 레너드Isabel Leonard가 맡았다. 특별히 인상깊진 않지만 부족한 것 없는 노래를 선보였다. 탁월한 연기력은 인기를 끄는데 꽤 큰 영향을 줬을 테다. 목소리가 내 취향은 아니었다.
페란도를 맡은 토피 레티푸Topi Lehtipuu는 핀란드 출신의 테너다. 바로크-모차르트를 위주로 부르는 가수치곤 노래가 상당히 공격적이다. 가벼운 목소리의 테터들이 불렀을 때 인물이 바보같아 보일 때가 있는데 레티푸의 페란도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찌르는 듯한, 즉 스핀토 스러운 가창이 모차르트 오페라와 잘 어울리도록 컨트롤 했으며 필요한 순간에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준다. 알폰소에게 조롱당하고, 애인에게 배신당하는 페란도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적격이다.
굴리엘모를 맡은 플로리안 뵈시Florian Boesch는 레티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레티푸가 공격적이며 날카로운 모차르트를 보여준다면 반대로 뵈시는 아주 정제된 모차르트를 보여준다. 다른 두 남성 가수의 자극적인 모습에 중창에서는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혼자 노래 할 때는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속으로 분노를 삭히며 멘탈을 추스리려하는 구트의 연출과도 맞아 떨어지며 설득력 있는 연기와 가창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보 스코부스Bo Skovhus가 깨방정 돈 알폰소를 선보인다. 스코부스가 이런저런 연기를 잘 소화해낸다는 건 잘 알았지만 이렇게 오도방정을 잘 떨 수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문제는 노래가 너무 쎄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액센트가 심하고 신경질적이다. 나이 지긋하게 먹어 젊은 애들 장난을 멀리서 귀엽게 바라보는 모습이 아니라, 연애에 크게 데여 비뚤어진 사람 처럼 보인다.
데스피나의 파트리샤 프티봉Patricia Petibon은 데스피나 역에서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수브레트 소프라노들이 맡는 역할이지만 프티봉의 목소리는 수브레트보다 더 두텁고 고혹적이다. 목소리나 가수의 해석 면에서 데스피나를 이렇게 진지하고 매혹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찾아보기 어려울 테다. 목소리가 데스피나에 어울리냐하는 것은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프티봉의 성악적인 기교가 매우 탁월해 표현의 디테일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연기에서도 스코부스와 함께 깨방정 듀오를 선보인다. 이 공연에서 프티봉의 붉은 머리가 유독 더 붉게 보인다.
가장 아쉬운 건 아담 피셔의 지휘다. 기초적인 리듬이 서로 안 맞거나 가수의 호흡을 무시해서 어긋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당장 위의 una donna a quindici anni에서만 봐도 오케스트라가 가수를 자주 놓치거나 호흡을 무시하고 자기 템포대로만 간다. 바렌보임의 반주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싫었다면, 피셔의 반주는 그냥 기본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구트의 다 폰테 삼부작은 확실히 현대연출의 고전으로 삼을 만한 프로덕션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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