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킨순이가 된 것만 같아


남의 팬질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아티스트와 친숙해진다. 당연히 영업을 많이하기도 하고, 영상과 캡쳐, 거기에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지면 서서히 이 아티스트의 매력을 알게 되간다. 하물며 원래 그 아티스트에게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다면 당연한 일이다.

킨리사이드에 괜히 더 애정이 가게 된건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그 분의 블로그 덕택이다. 굳이 언급하지 않는 건 이 글에 킨리사이드 이야기만 할 텐데 킨리 검방 넣는 분을 언급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여튼 다이나믹한 그분의 킨리 빠질의 기록들을 정주행하며 나도 어느새 킨리와 아주 친해졌다. 부인이 누구고 자식이 몇명이고 친한 지휘자랑 성악가는 누구고 인생의 흑역사는 뭐가 있고 취미는 뭔지 다 알게 됐다. 내가 빠는 쿠렌치스나 카우프만도 이 만큼은 모를 거야....

그래서 파리 오페라 일정을 보다가 킨리사이드 리사이틀이 있다는 말에 정말로 헉! 했다. 이건 가야 돼. 사실 이걸 안 가면 갈 수 있는 공연이 많았다. 햄슨이 나오는 미망인도 볼 수 있었을 거고 가디너가 지휘하는 율리시즈의 귀환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전혀 고민하지 않고 킨리사이드 리사이틀을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내 취향의 선택은 아니었다. 가곡 리사이틀보다 오페라 공연을 더 높게 치기도 하는데다가 유명한 가곡 가수도 아닌 (가곡 못한다고 까이는) 킨리 리사이틀이라니. 그럼에도 별 고민없이 이걸 선택한 건 그분 블로그 애독자로서 내가 킨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꼭 봐야만 할 것 같은 강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괜한 저급유머지만 킨리사이드 리사이틀에 중복된 음절이 세음절이나 있으니 킨리사이틀이라고 불러도 될듯! 킨리사이틀 프로그램 보니까 욕심 한 가득 넣어두셨더라. 아이튠즈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보니 28곡 1시간 7분. 곡 길이 자체는 그럴 수 있지만, 시벨리우스, 슈베르트, 영국 작곡가들, 풀랑크 등 총 네 개의 파트로 아주 폭넓은 곡들을 선곡한 게 특별했다. 자신의 폭넓은 음악관을 보여주려는 욕심이 분명했다.

가르니에에서 리사이틀이라니. 그것도 파리 오페라가 직접 초청한 것이다. 이번 시즌 가르니에 리사이틀로 초청된 가수들이 소피 코슈(Koch), 괴르네, 게오르규, 베차와가 있다. 생각해보니 킨리 커리어라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게 별로 이상하지 않구나.

반주는 영국 가수들 가곡 반주를 자주 맡는 말콤 마르티노. 유명한 반주자인데, 사진만 보고 젊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나이가 한참 드셨더라. 프로그램 따로 없이 리플릿만 주길래 얘네들은 가곡 리사이틀에 가사집도 안 주나 궁시렁댔는데 아예 자막을 띄워줬다. 파리 오페라는 가르니에나 바스티유나 모두 영어 - 불어 순으로 자막을 띄워준다.


킨리사이드가 들어오는데, 쿠렌치스 때와 비슷한 현상이 생겼다. 어라 진짜 킨리사이드네?? 인터넷에서만 봤는데 쟤 실존 인물이야? 마치 파미나 확인하는 파파게노 마냥 음 입가 주름 맞고.. 어깨 넓은 거 맞고.. 다리 짧은 거 맞고.. 진짜 킨리사이드 맞네요ㅇㅇ 왜 남의 오빠 보는데 내가 다 설레지ㅋㅋㅋㅋ 근데 머리 많이 기르셨네.

노래는 큰 기대 안 했지만 진짜 못 하긴 못 하.... 농담이고 그 정도 까진 아니었다. 대신 곡 간에 준비한 편차가 크게 느껴졌다. 시벨리우스 같은 경우는 뭔가 대놓고 목 푸는 곡 느낌? 목 안 풀려서 걸걸한 소리도 종종 나고 팔세토로 올리는데 이게 팔세토인지 죽기 전 마지막 단말마인지 모르겠는 소리가 났다. 이거 은퇴 리사이틀인가 잠시 고민했음. 다행히 슈베르트 때부터 점점 나아졌다. 분명히 방금 전에는 가뭄에 땅 갈라지듯 쫙쫙 갈라졌던 목소리가 좀 사람 목소리 같아졌다. 

확실히 킨리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가수다. 킨순이 그 분도 맨날 까지만 킨리사이드를 먹여살리는 건 연기력, 몸을 아끼지 않는 행동으로 연출가에게 사랑받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저음에서 짙은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직접 들으니 상당히 멋있다. 

본인은 그런 캐릭터로 자리잡고 싶지 않겠지만, 확실히 캐릭터성 있는 가곡을 부를 때 훨씬 잘 불렀다. 오페라 무대에서는 날아다니는 사람이 가곡 부를 때는 수줍음 많이 탄다던데 진짜 그랬다. 그러다가 가곡 안에서 연기할 기회가 생기면 사람이 자세랑 눈빛부터 달라짐. 예를 들어 방랑자 D649에서는 주인공이 노래하다가 달이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두개를 대비되게 부르는 거에 특별히 공을 들였더라. 다른 곡들에서도 Piggesnie나  A toute brides같은 빠른 노래에서 자기 장점을 더 잘 발휘했다.

당연한 거지만 전체 노래 중에서 영국 노래들이 제일 좋았다. 다른 곡들은 예습으로 들어간 것에 비해 아쉬운 것도 좀 있었지만 영국 노래들은 킨리 본인이 앨범을 낸적도 있고 참 안정감 있는 해석이었다. 전반적으로 프로그램에 가사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불러 마르티노의 반주와 함께 섬세한 마무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 다만 풀랑크를 부를 때는 보스트리지의 가볍고 야들한 음색에 익숙해져있다가 들으니 너무 오페라틱하게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반면 그것 때문에 얘가 골로 꽤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풀랑크에서는 고음도 꽤나 멋지게 질러줬는데, 그러고 나면 다음 곡에서 목소리가 불안해지는 게 좀 느껴졌다. 님 그렇게 부르다가 또 무슨 사고를 내려고ㅜㅜ 그래도 피아노 반주가 상당히 섬세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만들어줬다. 

공연 보는데 블로그에서 본 내용이 계속 머리 속에서 떠오른다. 곡 예습은 못해도 인물예습은 참 많이한 듯ㅋㅋㅋㅋ 워록의 My own country를 불렀는데 이 곡이 다른 사람 없이 혼자서 내 시골(country)로 가고 싶다고 거기 나무도 보고 잠들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 노래를 참 잘 불렀는데, 킨리 본인이 진짜 돈 모아서 땅 사놓고 과수원이랑 식물원 만들어 노는 사람이라 카더라. 노래 듣는데 자꾸 저놈이 얼마나 감정이입해서 부르고 있을까 생각하니까 너무 웃긴거 있지ㅋㅋㅋㅋ 노래를 듣고있으면 진짜 브리튼에 있을 킨리사이드 정원이 눈 앞에 보일 것만 같음.


앵콜 나와서 멘트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버지는 노래를 즐기라고 하셨죠. 아직 그렇게 살고 있어 다행입니다라"고 불어로 웅얼웅얼 거리면서 무대를 서성이는데 쿨쉭병과 가곡 리사이틀 불안증세가 겹쳐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슈베르트만 세곡 부름. 



쿠렌치스 직찍 하면서 느낀 거지만 셔터는 눈치 보지 않고 누를 수 있는 만큼 눌러야 하는 것 같더라. 예전엔 몰랐는데 이게 순간순간 마다 다른 표정을 찍어내는 게 중요하더라. 그 전까지야 그냥 커튼콜 사진1 사진2 이런 느낌으로 한두장만 찍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이 잘나와야된다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달라지더라ㅋㅋㅋ

나름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진찍으니 한참 멀리있는 걸 깨닫고 사람들이 이래서 비싼 망원렌즈를 사는거구나 싶었다. 빠질이 쉬운게 아니었구나 정말.

그렇게 열심히 찍으니 정말 100장 정도 찍었다. 양심상 앵콜 끝날때마다 들어가기 전까지 박수 쳐서 반주자랑 악수하거나 껴안는 사진은 없음.



오페라 무대에서도 보고싶은데 기회가 있을련지 모르겠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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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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