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프만 잘 한다 & 각성한 벨저뫼스트.
이 공연을 직접 보고 온 친구도 있고 영상으로 본 친구도 훌륭하다고 이야기해서 기대를 많이하고 본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우프만이 나온다. 카우프만 영상을 본 지 너무 오래돼서 팬으로서 반성하며 내 마음 안의 카우프만 빠심을 충전하기 위해 영상을 보았다.
사실 피델리오에서 테너 역의 비중이 크다고 하긴 힘들다.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카우프만 나오는 피델리오 영상물 커버를 봐라. 둘 다 카우프만 얼굴만 박혀있다. 너무 크게 박혀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카우프만이 이 오페라 주인공이고 타이틀롤 피델리오인 줄 알 거다.
이 프로덕션에서 구트의 연출이 꽤나 파격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사를 어떻게 편집했나 싶었는데 그냥 다 아예 들어내고 새로 합성해 웅웅 거리는 사운드로 만들어낸다. 설명 없이도 심리 스릴러 느낌이 물씬 난다. 덕분에 1막 초반부의 부파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그림자가 되어버린 죄수'라는 말에 맞게 플로레스탄 장면에서는 그림자를 제대로 살려낸다. 구출된 플로레스탄이 정신병 징후를 보이는 것도 특별한 포인트.
연출을 막 보았을 때는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카우프만이 노래를 잘 하고, 연기도 잘 하고, 얼굴도 잘 생겼다는 게 기억이 난다. 처음 노래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 같았다. 구트의 연출에 핵심에 있는 인물이다보니 요구하는 연기도 많은데 역시 잘 소화해낸다. 플로레스탄의 노래가 특별히 아름답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요구하는 기본기가 상당히 빡센 역할이구나 느꼈다.
솔직히 그 외에 누가 나왔는지 기억도 안 났다. 캐스팅 목록을 다시 보고 나서야 내가 좋아하는 토마시 코니에츠니가 돈 피사로로 나왔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레오노레 역의 에이드린 피에촌카Adriane Pieczonka(폴란드 계 캐나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남)는 별로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벨저뫼스트의 지휘는 깜짝 놀랄 만하다. 자기만의 단단한 사운드를 구축한 지휘자이지만 이 공연 만큼 자신감 있고 확신에 가득찬 모습은 처음 봤다. 내가 직접 보았던 2014년 여름에는 이 정도 느낌 까진 아니었는데, 1년 사이에 사람이 달라졌다. 2014년 9월에 빈 슈타츠오퍼를 때려친 효과인가!
특히나 레오노레 서곡 3번은 간지가 넘치는 연주다. 무거운 베토벤이 취향에 안 맞는 나 같은 사람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설득력이 있다.
'DVD,블루레이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그너 - 로엔그린 (2016년 드레스덴 젬퍼오퍼) (6) | 2018.02.25 |
---|---|
보이토 - 메피스토펠레 (2015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0) | 2018.02.25 |
몬테베르디 - 포페아의 대관 (2009년 리세우 대극장) (2) | 2018.02.10 |
몬테베르디 - 포페아의 대관 (1979년 오펀하우스 취리히, 장피에르 폰넬 영화) (4) | 2018.02.04 |
뒤카 - 아리안과 푸른 수염 (2011년 리세우 대극장) (4) | 2018.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