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T에서 아트하우스 블루레이 할인을 할 때 구입했다. 큰 관심이 없었지만 워낙 떨이라서 구입했었기에 구입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Anhaltisches Theater Dessau이니 데사우에 있는 안할트 주립 극장이다. 안할트는 과거 공국이었다가 현재는 작센-안할트 주의 일부가 되었다. 수도, 혹은 주도가 데사우였다.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공연되지 않지만 독일에서는 아주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인 12월에 많이 상연하는데, operabase에서 검색해본 결과 2015년 12월 한달 동안 헨젤과 그레텔을 올린 독일 극장은 28개로 같은 기간 마술 피리(19개), 라 보엠(15개)을 가뿐히 넘어선다. 


독일 극장들이 대체로 도시의 크기에 비해 매우 훌륭한 것은 사실이나, 보통 영상물을 내는 거대 메이저 극장들에 비하면 부족함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은 대체로 훌륭한 편이다. 가수들의 노래도 투박한 느낌이 들지만 거슬리는 것은 없다. 그 중 그레텔의 경우 상당히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 다만 오케스트라가 화면에 잡히진 않지만 소리만 들어도 인원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빈약한 연주를 들려준다. 풍성한 오케스트라를 듣고 싶다면 이 영상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영상의 가장 큰 특색은 연출이다. 리브레토에 지정된 공간적 배경은 1막 집, 2막 숲, 3막 마녀의 집이지만 이를 모두 헨젤과 그레텔의 집으로 표현했다. 대신 2막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이고 3막은 종전 이후 부유한 삶을 살게 된 가족의 집이다. 또한 마녀 역할을 아버지 페터가 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마녀 역할을 테너가 부르는 것은 흔하지만 바리톤, 그것도 아버지 역할을 맡은 사람이 1인 2역으로 부르는 것은 상당히 색다른 시도다. 이로써 극 중에서 마녀와 아이들이 만나는 것도 아버지가 크리스마스에 마녀 역할을 맡아 서로 역할극을 하고 노는 것으로 표현했다. 약간 괴기할 수 있는 마녀의 장면이 발랄한 느낌을 준다. 마녀가 아이들에게 뱉었던 대사 중에는 다정하게 들리는 것들이 많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각 막의 앞에 영상을 프로젝터로 보여주는데 독일과 세계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영상들이다. 2막 끝에 14명의 천사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세계 각국의 민속 의상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등장해서 헨젤과 그레텔을 다정하게 둘러싸는데, 3막 끝에 아이들이 해방되는 장면에서도 이 아이들이 다시 등장한다. 독일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부유한 국가가 되기까지 세계 여러 민족의 도움 혹은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영상도 영상이지만 데사우 극장 드라마 어시스턴트가 작성한 부클릿 글이 인상깊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각 막이 의미하는 바를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1막에서 헨젤과 그레텔의 듀엣은 허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들(신을 믿거나 부모님을 기다리거나)을 보여주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둘이 빈곤에 대응하는 방법이 단지 분노와 술 밖에 없는 것으로 표현된다. 2막에서 뻐꾸기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른 판본의 원작 동화에서 부모님이 식량이 부족하다고 헨젤과 그레텔을 버리는 것을 비꼬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상당히 신선한 연출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공연이지만 아트하우스 풀 프라이스를 주고 구입하는 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