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품을 이렇게 오랜만에야 다시 봤을까.


오페라 영상을 보고 매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좋은 내가 어떤 작품을 언제 보았는지 있다는 점이다. 오네긴을 마지막으로 봤던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이었나 보다. 여태 한번도 오네긴 영상 리뷰를 적이 없다.


동안 오네긴 리뷰를 썼던 것은 내가 작품에 관심이 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새롭게 보고 리뷰할 영상이 남아서였다. 공연 역시 원래 DVD 보았지만 나중에 블루레이로 사놓고 보관만 했었다. 기왕이면 안본 공연을 보고 싶어 여태 뒤로 미뤄놨지만 흐보의 오네긴이 다시 듣고 싶어졌다.


수많은 명작 중에 제일 좋아하는 오페라를 꼽는 얼마나 의미가 있겠냐 싶지만 굳이 꼽자면 오네긴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작품이다. 차이콥스키를 그토록 사랑하는 한국에서 오네긴 공연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정말 서글픈 일이다. 북한에선 오네긴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상연하는데 소련의 영향인지 오네긴을 아주 자주 올린다. 유튜브에도 북한에서 오네긴의 100번째 공연이라고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의 퀄리티나 지휘 흐름이나 여러모로 안타까운 연주이지만 학생 공연으로 오네긴을 올린다는 점은 부럽다. 남북 예술교류가 활발해지면 북한 오페라단이 하는 오네긴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다시 본 오네긴은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을 부분, 지루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최근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는데, 오네긴과 카레니나에서 모두 화려한 도시 생활과 농촌의 생활의 대비가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1막에서 어머니와 유모의 대화나 농부들의 합창역시 이 작품의 밑바탕에 깔린 시대적 배경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오네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른 오페라와 달리 좀더 미묘한 면이 있다. 오네긴과 렌스키의 결투는 표면적으로 타티아나와 상관없는 일인 것 같지만 3막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반전된 관계는 이 결투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처음 오네긴이 공연이었기 때문에 연주나 연출에 대한 인상은 별로 없었다. 카슨은 스타일이 상당히 자주 변하는 연출가다. 카탸 카바노바는 로버트 윌슨을 생각나게 만큼 미니멀한 무대를 사용했고, 오네긴도 마찬가지다. 잘츠부르크 장미의 기사, 페니체 트라비아타 처럼 도발적인 연출을 선보이다가도 얌전한 연출을 선보인다. 연출은 메트 관객의 취향에 맞게 아주 얌전한 편이다.


게르기에프와 메트 오케스트라의 만남은 참 특이하다. 디테일 보다는 흐름에 신경쓰는 게르기에프와 얄팍한 사운드라고 지적받는 메트 오케의 조합. 게르기에프의 지휘는 날이 서있고 상당히 거칠다. 어느 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는 점 만큼은 훌륭하다. 메트 오케 역시 이 점에서 지휘를 잘 따라온다 . 하지만 현악기 음정이 쪼개지는 소리가 계속 나고 금관의 소리는 가볍게 들린다. 가장 심각한 건 베이스다. 게르기에프가 베이스를 제대로 쪼았는지 아니면 녹음 탓인지 베이스 소리가 아주 크고 분명하게 잡혔는데 계속 늦다. 정말 항상 늦다. 토스카니니가 리허설 중 미쳐 날뛸 만한 상황이다. 베이스!!!!! 


플레밍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은 와중에 흐보로스톱스키가 제대로 실력 발휘한다. 노래 외모 연기 삼박자를 고루 갖춘 참된 오네긴이다. 1막에서는 오만하고 재수없는 인간상을 잘 표현하는데 3막이 압권이다. 타티아나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리고 혼자 찾아가서 맡겨놓은 사랑 찾으러 온 것 처럼 당당하게 유혹하는 모습, 타티아나가 거절하니 치맛자락 붙잡으며 매달리는 모습까지 완벽히 몰입해서 소화해냈다. 흐보 특유의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목소리와 긴호흡, 그리고 네이티브 답게 정확하고 명확한 딕션까지 일품이다.



그 동안 새로운 레퍼토리를 듣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다시 듣는 데에 소홀했던 것 같다. 음악을 제대로 들을 시간이 없는 요즘 같은 때일 수록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다시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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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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