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돈이 아까운 정도가 아니라 시간까지 아깝다. 팔리아치를 보다가 그냥 그만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취리히 극장은 영상물을 상당히 열심히 발매한다. 캐스팅도 나름 훌륭하고 피에라브라스 같은 희귀작도 발매한다. 카우프만이 전속 가수로 있던 적이 있어 조연으로 등장하는 젊은 카우프만을 볼 수도 있다. 카우프만이 취리히에서 발터를 맡은 영상도 있다. 명가수 발터 폰 슈톨칭이 아니라 탄호이저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라는 게 함정. 이런 경력 때문인지 스타가 된 다음에도 취리히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여튼 난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를 괜찮게 보고 있다. 아니, 있었다가 맞겠군.


이 공연은 정말 끔찍하다. 다른 리뷰에서 구리다는 말을 듣고 기대를 낮추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몇몇 형편없는 가수, 그리고 도대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합창단, 가야할 길을 잃은 오케스트라 까지. 당연히 지휘자 책임이 제일 클 것 같다.


가수 중에 알피오와 베페는 수준 미달이다. 베페는 아를레키노로 분해서 듀엣을 부르는 장면에서 아예 지휘를 놓쳐버린다. 아니 베페 노래가 몇줄이나 된다고.. 토니오 역의 카를로 구엘피는 프롤로고는 잘 부르지만 그 뒤는 너무 연기에 몰입해서인지 노래가 아니라 연기만 한다. 산투차와 네다가 그나마 낫다. 호세 쿠라 역시 노래는 집어 던지고 연기에 몰입하는 느낌이다. 연기는 훌륭하다. 저렇게 미친 연기를 하는 것도 쉽진 않을 거다. 그런데 아리아에서는 자기가 울지 말고 관객을 울려야하지 않겠나. 마지막 가사 La comedia è finita도 조용히 읊조리는 걸로 처리했는데 앞에서의 폭발하는 감정과 연결되질 않는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개연성이 없다. 조울증인가. 


카브나 팔리나 합창단에 재밌는 노래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취리히 합창단은 이를 못 살려낸다. 팔리아치에서 1막 처음 합창과 2막 연극 시작전 합창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인데 전혀 흥이 나질 않는다. 합창이 조금만 어려워도 앙상블이 미로에 빠진다. 

지휘자 스테파노 란차니는 도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베리스모에서 기대하는 감정을 쥐어짜내는듯한 스릴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부드럽고 예쁘게만을 요구하는 듯하다. 찾아보니 유럽의 온갖 메이저 극장에서 활동하고 있던데 어쩌다 이 공연을 말아먹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아트하우스가 카브/팔리를 한글자막 까지 삽입해 특가 재발매해준건 참 고맙지만 공연 퀄리티는 참 처참하다. 내가 지금껏 본 블루레이 중 최악으로 기억하는 한스 그라프의 후궁탈출과 마체라타 나비부인과 겨룰 수 있을 것 같다.

요즘따라 그냥 오페라 영상을 보느니 악보 보면서 음반을 듣는게 훨씬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영상을 보고나니 더더욱 영상 감상에 회의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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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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