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탈리아의 베르디 공연.
사실 쓸 말이 별로 많지 않다. 연출이나 연주나 무난무난한 공연.
시몬 보카네그라를 처음 본 건 정명훈이 서울시향과 함께 국립 오페라단 공연에 나섰을 때다. 정명훈은 국립오페라단이랑 공연을 두 번 했는데 첫 번째가 이도메네오고 두 번째가 이 시몬 보카네그라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오알못이던 나는 두 작품을 알기는 커녕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정도였지만 정명훈의 오페라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예당에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는 한창 돈이 부족하던 때라 공연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꽤 고민했었다.
웬만한 베르디 오페라에 대부분 익숙해진 지금도 시몬 보카네그라는 내가 잘 모르는 작품이다. 공연으로 직접 본 작품이지만 내가 그 때 오페라 예습을 요즘 만큼 열심히 하던 때도 아니고, 심지어 그 때는 베르디 = 핵노잼 으로 생각하던 때였다. 한참 지나서 베르디 좀 듣는 요즘에도 유독 시몬 보카네그라의 영상을 찾아볼 일이 없었다. 눈길을 끄는 블루레이 타이틀이 안 나온 것도 있고. 그래도 뭔가 더 알고 싶은 작품이라는 조그마한 욕심은 있었는지 아바도 음반을 핸드폰에 넣고 꽤 들었던 것은 기억난다.
이 와중에 다시 시몬 보카네그라를 꺼내 든 것 역시 순전히 정명훈 때문이다. 정명훈이 롯데콘서트홀 개관의 일환으로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합창단, 솔리스트와 함께 시몬 보카네그라를 콘체르탄테로 공연한다. 롯데홀 공연 예매한게 몇개 없는데 이것만큼은 공연 일정이 확정되자마자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예습용으로 이 영상물을 꺼냈다. 예스24에서 아트하우스 블루레이 떨이를 할 때 구입했었다. 당시에 세일 목록은 정말... 아무도 안 살 것 같은 것만 잔뜩 있었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다른 베르디 오페라에 비하면 강렬한 아리아보다는 서정적이고 연극적인 면이 중시된 느낌이다. 리브레토가 이해하기 쉽고 명확한 편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갈등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가수들에게는 노래하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레치타티보를 맛깔나게 처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마 모든 출연진이 이탈리아 네이티브인데, 그 때문인지 정말 전형적인 베르디 공연을 보는 것 같다. 가수들의 노래나 연기나 표현이나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 하면 생각나는 그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말로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특별한 재미가 없다는 거에 가깝다. 뭐라 할까, 살짝 매너리즘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감정이 휘몰아친다거나 노래로 관객을 몰입시킨다든가 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나마 그중에서 인상적인 건 파올로 역을 맡은 마르코 브라토냐Marco Vratogna다. 테아트로 레알에서 한 가면 무도회에서 레나토 역을 맡은 건 별로였다고 쓴 것 같은데, 파올로로 보여주는 레치타티보는 상당히 훌륭하다. 반대로 아멜리아 역의 카르멘 잔나타시오Carmen Giannattasio는 가장 애매한 가수다. 노래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무난해서 매력이 없달까. 프레이징이 단조롭기도 하고 딕션이 명확한 편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가수가 이번 롯데 공연에서 아멜리아로 온다는데 실제 공연에서는 어떨지 궁금하다.
테너를 맡은 주세페 지팔리Giuseppe Gipali는 목소리나 얼굴이나 분명 어디선가 본적이 있어서 누굴까 한참을 고민했다. 프클에서 검색해봐도 내가 본 영상물이 없길래, 언제 한국에 내한했나 검색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다가 내가 외국에서 본 가수인가 싶어서 머리를 뒤져보니 빌바오에서 돈 카를로스 타이틀 롤을 맡았었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꽤 시원시원한 가수였다고 기억하는데, 영상으로 보기에는 조금 아쉬운 편이다. 일단 목소리가 힘이 아도르노를 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편이다.
지휘자 미켈레 마리오티는 살짝 가벼우면서 날카롭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능력을 여기서도 보여주는데 녹음을 너무 악기 가까이서 해서 소리가 너무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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