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하임은 자신의 메시지를 오펜바흐에서도 이어갔다.
호프만 이야기는 미스테리한 작품이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일들로 가득차있으며 모든 인물은 술에 취한 듯 제정신이 아니다. 한마디로 만화경 같은 작품이다. 헤어하임이 이 작품을 손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이 작품은 모든 면에서 헤어하임을 유혹한다. 동화같이 비현실적인 사건들, 수수께끼 같은 일인다역은 마치 헤어하임이 손을 본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미 헤어하임 스럽다.
브레겐츠에서 연출한 헤어하임의 오펜바흐는 여러모로 헤어하임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좋은 말로 하면 헤어하임의 확고한 스타일을 볼 수 있는거고, 나쁜 말로 하면 어떤 오페라든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술 같은 무대 변환, 합창단에 성격 부여, 악보에 없는 일인다역을 통한 메시지, 관객을 끌어들이는 기법, 무엇보다 이야기를 성 대립으로 이끌어가는 것에서 헤어하임의 특징이 뚝뚝 묻어나왔다.
헤어하임의 연출을 한번 보고 평가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좋은 연출이라면 한번에 보고 이해가 돼야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유럽 관객들에게 같은 연출을 여러번 본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연출도 두번은 더 봐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혹시나 도움이 될만한 글이 있을까 해서 해외 리뷰도 찾아보았지만 대부분의 글이 단순히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글로 묘사한 수준에 그쳤다. 결국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객관적인 기술로 시작해야겠다. 이 연출에서 전체 출연진의 복장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남성 정장, 여성 드레스, 여성 코르셋. 헤어하임은 작품 내내 인물의 복장을 핵심 메타포로 사용한다. 모든 인물의 복장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이 차이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한참 뒤에 깨달았다). 여성 드레스의 경우 금발 가발을 쓰느냐, 캡을 쓰고 있느냐로 한번 더 차이가 생긴다.
여기서 한가지 혼란이 생긴다. 예를 들어 3막에서 닥터 미라클이 여성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는 것은 바리톤이 여성 드레스를 입은 인물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여성 드레스를 입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봐야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가수의 동일성이 우선인지, 아니면 복장의 성격이 우선하는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여성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것은 수긍이 가지만, 이 가수가 뮤즈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일까? 즉 복장의 메타포와 가수의 메타포가 엮여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시간의 작품 안에서 헤어하임이 일관된 메시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일종의 '성 권력'에 대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을 호프만이 겪은 세 명의 다른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인이 겪은 세 명의 다른 호프만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한 거라고 본다.
호프만은 남성적인 복장을 입고 있다가 올랭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처음으로 복장을 바꿔 여성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왜? 여기서도 가수의 메타포와 복장의 메타포가 충돌한다. 호프만이 여성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것인가, 아니면 여성 드레스를 입은 인물이 호프만의 가사를 노래하는 것인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어쩌면 후자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남성 호프만이 아니라 여성 드레스를 입은 인물의 관점에서 본 것이라는 암시일 수 있다.
올랭피아 장면에서 호프만이 안경을 벗을 때 올랭피아는 끔찍하게 고통받는 표정을 짓고있다. 호프만이 안경을 쓰면 다시 화사하게 웃으며 노래한다. 이 장면은 여성의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남성의 모습을 그린 거라고 볼 수 있을까. 호프만은 안경을 통해 자기가 욕망하는 환상을 바라본다. 올랭피아의 아리아에서 올랭피아가 오히려 남성적인 자세로 호프만을 겁탈하는 것은 분명 호프만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본다. 코펠리우스가 등장하여 부서지는 것은 올랭피아가 아니라 마네킹이 되어버린 호프만이다. 호프만은 코르셋을 입은 채로 '자동 인형'이라는 말을 외치며 절규한다. 이때 테너는 '자동인형!'이라는 가사를 외치며 탄식을 한다. 자신의 모습이 자동인형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탄식인가, 아니면 코르셋을 입은 올랭피아의 입장에서 탄식한 것인가?
힌트는 다음 막에 나온다. 겁에 질려잇는 코르셋 인물은 회전하는 무대를 따라 퇴장하고 연결된 출입구에서 새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안토니아다. 이 부분에서 복장의 메타포는 가수의 메타포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토니아는 부서진 마네킹 호프만을 보며 좌절하며 노래한다. 미세한 차이지만, 1막에 등장하는 호프만과 2,3막에 등장하는 호프만은 분명 다른 모습이다. 비슷하지만 2,3막에 나오는 호프만은 1막의 양산형 호프만, 즉 합창단의 호프만 분장과 아주 똑같다. 미라클 박사는 여성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고, 또 뒤에는 코르셋을 입고 와 유혹한다. 이건 여성 내면의 목소리다.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것은 악마의 유혹이라기보단, 자기 삶의 주체성을 가지라는 명령으로 들린다. 안토니아는 드레스를 입고 쓰러지는데, 이를 보고 아버지와 호프만(이번엔 양산형이 아닌 호프만으로)이 좌절하는데, 어쩌면 여성이 자신의 것(코르셋입은 여인)이 아닌 주체적인 인간이 되어 버림받게된 남성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다.
4막의 호프만은 완전히 절망하고 술에 취한 듯 하다. 뱃노래는 코르셋의 여인을 관에 넣어 곤돌라로 운반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곤돌라가 다리를 건너 도착하는 곳에는 양산형 호프만이 자신들의 코르셋 여인을 애도하고 있는 장면이다. 호프만은 그들을 깨우고 남자들은 여자를 모두 강압적으로 대한다. 이 때 바리톤이 등장하며 여성들을 일으켜 세운다. 보석으로 줄리에타를 유혹하는 장면은, 코르셋 여성들에게 드레스를 주는 숭고한 장면으로 변한다. 아, 이 때 바리톤의 아리아 Scintille, diamant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 드레스를 입은 줄리에타는 호프만을 유혹한다. 헤어하임이 4막의 앞 장면을 절묘하게 잘라냈기 때문에, 호프만이 줄리에타에 빠져있다는 설정은 사라져있고 줄리에타의 아리아가 바로 호프만을 유혹하는 순간이다. 코르셋을 입었을 때 만만했던 여성은 이제 호프만을 농락한다. 이 때 올랭피아, 안토니아, 뮤즈 역의 세 가수가 줄리에타의 아리아를 나눠서 부르는 것이 압권이다. 완전히 유혹에 빠져버린 호프만에게 줄리에타가 합창에서 '시인 노릇은 그만 하시지'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호프만과 그 뒤의 모든 양산형 호프만은 모두 스스로 가슴을 찌른다. 다시 뱃노래가 나올 때 곤돌라는 이제 관 속에 코르셋 여성이 아닌 호프만들을 담고 떠난다. 성 권력의 역전이라고 해야할까. 줄리에타가 마지막에 호프만의 그림자를 요구하는 장면에서 처음 1막에 나온 스텔라 역의 배우가 코르셋을 입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여성이 자신의 주체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남성을 만나지 못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낭만주의 시인 호프만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비틀어놓았다. 이런 형태는 헤어하임의 루살카에서도 명확히 드러나고, 시칠리아의 저녁기도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극중에서 단역 몇개를 오펜바흐 분장을 하고 등장시키는데, 오펜바흐는 호프만의 행적을 한발짝 멀리서 관찰하며 이를 음악으로 옮겨놓는다.
대체로 헤어하임 치고도 작품에 손을 많이 댄 편이지만 이 작품이 원래 미완성이라는 걸 생각하면 별 문제가 되진 않는다. 아마존 평들을 읽어보면 헤어하임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과는 별개로 곳곳의 신선한 장면이 주는 즐거움은 확실해보인다.
가수 중엔 단연 미하엘 폴레가 돋보인다. 최근 들어 유독 헤어하임과의 작업이 많은데, 노래나 연기나 모두 다른 대안을 떠올리기 힘들만큼 완벽하다. 저번 시칠리아의 저녁기도에서 언급했 듯이 프랑스어 딕션도 아주 훌륭하다. 여성 드레스와 코르셋을 입는 굴욕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호프만 역의 다니엘 요한슨Daniel Johansson은 작품 내내 훌륭한 체력을 보여주지만 노래는 평범한 편이다. 올랭피아 역의 커스틴 아베모Kerstin Avemo는 살인적인 고음을 아주 잘 처리해낸다. 여기에 연기력도 뛰어난데, 생각해보니 하네케 코지와 체르니카노프 돈조반니에서 인상깊게 본 가수였다. 뮤즈 역의 레이첼 프렝클Rachel Frenkel은 목소리도 좋고 부드러운 노래도 참 좋지만 딕션이 너무 딱딱하다.
지휘를 맡은 요하네스 데부스Johannes Debus는 무난하다. 극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높아서 작품 전반의 분위기 변화는 괜찮지만 좁게 보았을 때 반주의 음악 퀄리티는 썩 만족스럽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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