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연주를 들려줬다. 거의 40분간 쉴새 없이 연주해야하는 톡바협2에서 닝펑은 시종일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모범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톡바협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다채로운 음색변화와 물흐르듯 박자에 구애받지 않는 선율선 처리도 뛰어났다. 앵콜로 연주한 파가니니 카프리스 5번에서도 극한의 기교를 뽐냈다.
2부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여러모로 놀랍고 기이한 연주였다.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전반적으로 거의 모든 음표의 아티큘레이션이 극단적인 레가토와 테누토로 이어지는데도 곳곳에서 다층적인 성부구조가 뚜렷하게 들린다는 점이었다. 로트의 브람스 교향곡 후기에서 언급했 듯이 투명한 성부구조는 대체로 가벼운 아티큘레이션과 함께 가기 마련이다. 그건 음향적으로 그게 더 여러 성부를 들리게하는데 유리하기도 하며, 대체로 시대연주 스타일의 지휘자들이 저 두 가지를 모두 챙기는 편이기 때문이다. 마치 동성결혼 합법화 찬성하는 사람과 낙태 합법화를 동시에 외치는 사람이 많은 것 처럼 말이다.
그런데 즈베덴은 그렇지 않다. 즈베덴은 극단적으로 풍성하고 여유로운 아티큘레이션을 유지하면서도 곳곳에서 그동안 듣지못했던 음표들이 튀어나왔다. 특히나 리드미컬한 3악장 마저 그렇게 일관된 테누토를 사용할 수 있다곤 상상도 못했다. 반대로 초반 현악기가 주선율을 이어받았을 때 클라리넷을 유독 강조하는 것 역시 이런 연주에서 듣기 힘든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분명히 기름진 아티큘레이션은 낭만파인데 종종 포인트룰 주는 밸런스는 시대연주파인 기묘한 음악이었다.
해석 상의 독특했던 부분을 또 하나 지적하잠녀 4악장 초반의 유명한 호른 선율 장면이다. 쭉 이어지는 것 처럼 들리는 선율이지만 긴 음표를 세컨 호른이 연주해서 퍼스트가 쉬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대목이다. 원래대로라면 보통 한 명이 부르는 것 처럼 최대한 음색을 맞추는데, 즈베덴은 오히려 둘의 음색을 명확하게 대비시키며 세컨의 긴 음표를 크레셴도 하게 만들어 퍼스트와 세컨이 주고 받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저음이 이렇게 강조된 연주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당에서 이렇게 저음이 뚜렷하게 들린 수 있다니. 보통 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콘트라바순의 소리가 이번엔 또렷이 들렸다. 저번 서울시향 때 빈약했던 현과 더더욱 빈약했던 첼로 소리와는 감히 비교도 못할 소리였다. 바이올린의 수는 못세었지만 첼로가 6풀트로 1풀트 정도 더 쓴 것도 이런 의도가 지휘자의 의도였을 테다.
즈베덴은 지휘자가 되기 전 바이올린으로 명성을 날려 RCO의 최연소 악장 기록까지 세운 사람이다. 현을 다루는데 있어 능수능란했다. 현악기가 완전히 오케스트라의 중심이 되어 쭉쭉 뻗어나가는 소리를 들려줬다. 1악장에서 현악기기끼리 주고받는 투티나 4악장의 현악기의 코랄 선율에서 보여준 윤기는 좀 처럼 듣기 힘든 것이었다.
다만 즈베덴이 이런 능력으로 큰 그림을 잘 설계했냐는 데는 의문이 든다. 단면으로 살펴보면 아주 아름다운 음향이 빛을 뿜어내고 있는데 그것들이 모여서 장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선율의 프레이징은 분명히 길게길게 이어지지만 긴 호흡으로 보았을 때는 끊어지는 부분들이 느껴졌다. 음향적으로는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었지만 분위기의 변화가 적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체로 빛나는 음향 때문에 위기를 찾아볼 수 없는 절대적인 낙관주의를 보는 듯 했다. 예컨데 4악장에서 마지막에 속도가 빨라지며 행진곡 풍 코다로 넘어가는 장면을 보자. 이때 분명 이 교향곡의 마지막 ‘위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 때 상승하는 바이올린의 세미트레몰로는 너무나 밝고 아름다우며 끝음을 아주 희망찬 크레셴도로 장식했다. 조마조마한 마음보다는 이미 샴페인을 터뜨린 게임을 보는 듯 하다.
앵콜에는 관악기 주자들이 대거 난입하더니 바그너 발퀴레의 비행을 했다. 최근에 낙소스에서 발매한 홍콩 반지가 상당히 좋은 평을 받으며 발퀴레까지 발매되었는데 자신들의 장기를 한껏 보여준 느낌이다. 1달 전 같은 무대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 서울시향을 제대로 능욕하는 연주였다. “풉 바그너는 이런 거란다 서울 촌놈들아” 안 그래도 네덜란드 선배인 데바르트가 상임 맡은 네덜란드 라디오 필과 홍콩필 둘다 즈베덴이 받아먹었던데 내한 공연까지 이렇게 뒤쫓아와서 같은 곡으로 고추가루를 뿌리고 가다니 네덜란드에서는 선후배 군기를 안 잡나보네ㅉㅉㅉ
그래도 메인 멜로디의 3:1:2 리듬을 시종일관 뭉게서 연주한 건 좀 아쉬웠다.
음악에서 거장성이 느껴지느냐는 둘째치고 오케스트라를 자기 의도대로 조절하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이있다는 걸 느꼈다. 현악기의 탁월한 표현능력은 물론 관악기 까지 자신이 원하는 밸런스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 망가진 뉴욕필을 어쩌면 다시 살려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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