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메네오의 가치를 증명한 공연.
6월 독일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뮌헨의 게어트너플라츠테아터Gärtnerplatztheater 의 공연을 볼까 고민중이었다. 원래 별로 끌릴 게 없는 공연이었지만 자기들 본진인 게어트너플라츠테아터가 리노베이션 중이라 퀴빌리에 극장에서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 관심이 생겼다. 퀴빌리에 극장의 모습이 궁금해서 꺼내든 타이틀이 바로 이 이도메네오다. 무슨 공연을 보든 예습에 필요한 블루레이를 꺼내들 수 있다는 데 손톱만큼의 뿌듯함을 느꼈다.
꺼내고 보니 퀴빌리에 극장 공연이 아니더라도 봐야할 이유가 여럿 있었다. 일단 나가노의 지휘인데다 캐스팅도 화려했다. 타이틀 롤에는 존 마크 에인슬리John Mark Ainsley, 그리고 그의 아들 이다만테 역으로는 파볼 브레슬릭Pavol Breslik, 일리아에는 율리아네 반제Juliane Banse, 그리고 엘레트라에는 아네테 다슈Annette Dasch가 나온다.
이도메네오는 1781년 퀴빌리에 극장에서 초연됐다. 2008년 퀴빌리에 극장의 재개관에서 이도메네오를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덕분에 로코코 양식의 보석이라 불리는 이 극장 자체가 공연의 주된 감상포인트라 영상에서도 극장의 아름다움을 열심히 찍어준다.
이도메네오를 처음 본 것은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데려와 지휘한 국립오페라단 공연이었다. 당시 오알못이던 내가 알고 있던 모페라라곤 피가로와 돈조 밖에 없었지만 정명훈이 지휘한다는 이유 하나로 보러갔었다. 물론 음악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국오 단장이었던 이소영이 연출을 맡았었고 연출이 참 별 볼일 없었다는 것과 대략적인 줄거리, 왕자인 이다만테 역이 바지 역할이라는 것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
그간 이도메네오에 대한 나의 인상은 베르디의 나부코와 비슷한 정도였다. 거장의 초기 작품 중 그래도 눈여겨 볼 만한 작품이지만, 주요 작품과는 확실히 차이가 느껴지는 작품 말이다. 하지만 다시 듣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가 오페라 세리아 전통 위에서 만들어 놓은 걸작이며 그의 후기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매력을 갖춘 작품이다. 거의 대부분의 레치타티보가 세코가 아닌 극적인 아콤파냐토로 이루어져 있고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비중 역시 현저하게 높다. 부클릿에선 이 작품이 모차르트의 유일한 합창 오페라이며 가장 큰 규모의 발레곡을 포함한 작품이라고 지적한다. 특히나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에서 느껴지는 극적인 표현력은 모차르트야 말로 오페라의 진정한 대가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이런 장면은 오히려 후기 작품에서 더 찾아보기 힘들어지는데, 오죽하면 국내 모 평론가가 진행하는 음악 감상회에서 대표작에 잠깐 나오는 아콤파냐토를 가지고 엄청나게 대단하고 획기적인 거라고 호들갑을 떨 정도였으니 말이다. 합창 역시 비중이 상당히 큰데, 다른 모페라에서 합창곡이 딱히 중요하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여기에 모페라 치곤 좀 재미없는 내용이지만, 오페라 세리아 치고는 인물관계가 상당히 간결하고 분명한 갈등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단 갈등에 얽힌 주요 인물이 4명이라는 건 바로크 오페라가 아닌 다른 모페라와 비교해도 적은 편이다.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의 영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삼았으며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자식을 희생해야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울리드의 이피제니>를 닮았다.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이렇다.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가 트로이 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폭풍우를 만나 죽을 위기해 쳐한다. 넵튠에게 기도해서 자기가 안전하게 뭍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만난 생명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다. 그렇게해서 살지만 하필 해변에서 제일 먼저 마주친 사람이 자신의 아들 이다만테. 이다만테는 아빠 없는 동안 트로이 포로들을 풀어주는 자비를 베푸는데 그 중에는 트로이의 공주 일리아도 있다. 일리아와 이다만테는 사랑에 빠지는데 이걸 엘레트라가 질투한다. 사실 엘레트라의 질투가 극에 특별한 영향을 끼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이도메네오는 아들을 희생하기 싫으니까 엘레트라 호위하라며 아르고스로 떠나라고 재촉하고, 아들은 아들대로 일리아 놨두고 집 떠나가는 게 싫어서 징징대고... 이다멘테가 떠나려는 순간 넵튠이 분노해 폭풍우가 일어나고 크레타에는 괴물이 나타나 재앙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도대체 신을 분노케 한 자가 누구냐며 이도메네오에게 따지고 어서 제물을 바치라고 한다. 이도메네오가 사실을 밝히고 사람들은 경악하는데 이 와중에 모든 걸 포기한 이다만테가 죽기살기로 괴물과 싸워 괴물을 죽인다. 아니 넵튠은 괴물 보내면서 자기가 원하는 제물도 못 이길 놈으로 보냈나?? 이다만테는 괴물 죽여놓고도 모든 걸 포기하고 희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때 일리아가 이다만테 대신 자신이 죽겠다며 훈훈한 동화책의 클리셰를 선보이니 넵튠 역시 자비의 클리셰로 화답해준다. 이도메네오는 은퇴하고 이다멘테랑 일리아가 결혼해 왕위를 이어받는다. 엘레트라만 혼자 쪽박찬다.
연출은 디터 돈Dieter Dorn이 맡았다. 오랫동안 연극 연출을 맡아온 노장인데 앞서 본 스테파노 포다의 연출과 좋은 대비를 이루었다.
꾸밈 없이 황량한 무대, 뭔가 정신 없는 의상 등 시각적인 요소로만 보면 별 볼 일 없는 연출이다. 하지만 포다가 보여주지 못한 걸 디터 돈은 해낸다. 바로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감정이다.
원래 포다 예습 겸으로 포다의 대표 프로덕션이라는 마스네 <타이스>를 볼까 했는데, 포다 연출을 두 번 연속으로 보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 느낌이 무엇인지 디터 돈의 이도메네오를 보면서 확실히 알았다. 포다의 무대 위에선 인물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었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거대한 분위기에 짓눌린다. 이건 사람의 감정이 극도로 잘 드러나는 <안드레아 셰니에>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포다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실제 세상 속의 인물들이라기 보다는 신화나 성경의 인물에 가깝다.
포다의 방향이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언제나 말해왔 듯이 디터 돈과 같은 독일식 연출을 훨씬 좋아한다. 처음 일리아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노래부를 때 크레타 인들은 가림막 뒤에서 일리아가 무얼 하는지 궁금해 한다. 일리아의 절망적인 감정은 표정과 노래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위의 캡처 장면은 전쟁에서 돌아온 크레타 병사들과 그 가족들이 만나는 장면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법한 복장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젊은 부부, 나이든 부부의 표정이 각각 다르지만 모두 진실되게 다가온다.
디터 돈은 특별한 기술을 쓰지 않고 기본기에 충실한 연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야기의 구조를 그대로 전달하지만 각각의 노래와 장면들에서 나오는 감정을 관객에게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퀴빌리에 극장 기념인 만큼 마지막 발레 시퀀스는 무대 연출 없이 조명을 켜고 오케스트라의 피트를 올리는 것으로 대체했다.
가수들의 노래도 모두 빼어나다. 존 마크 에인슬리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 있다. 브리튼 오페라로만 접했던 가수인데 자신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역할들을 위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한 가수더라. 율리아네 반제는 하딩 지휘 마탄의 사수 영화판이나 슈만 게노베바에서 본 적이 있는데 오히려 모차르트에서 더 빛났다. 모차르트 소프라노의 단아함이 있으면서도 감정 표현에 따른 프레이징이 자연스러워 지루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아네테 다슈는 특히나 마지막 아리아에서 찌르는 듯한 고음과 매서운 노래를 자랑한다. 아르바체 역할로 나온 라이너 트로스트Rainer Trost 역시 살짝 마이너한 역할이지만 아리아를 잘 표현해준다.
가장 특이했던 것은 파볼 브레슬릭이다. 홀텐 연출 ROH 오네긴에서 렌스키를 보고 정말 감탄했었다. 내가 외국 나가면 항상 우리나라에서 좋은 공연을 하던데, 2014년 12월에는 바로 브레슬릭이 오는 오네긴이 그랬다. 이 공연을 보면서 일단 놀랐던 건 브레슬릭이 아주 어리다는 점이었다. 리릭 테너가 대체로 고만고만한 요즘에 브레슬릭 만큼 확실한 매력을 가진 가수는 돋보일 수 밖에 없고 이미 톱 클래스 테너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태클 걸 사람이 별로 없을 테다. 난 그래서 당연히 40은 넘은 나이일 줄 알았다. 그런데 1979년 생이라 2017년인 지금도 아직 40이 안 됐더라. 이 이도메네오를 할때는 아직 20대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얼굴에 주름하나 없이 앳된 모습을 보여준다.
브레슬릭은 좀 이상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2008년 이다만테를 부를 때 브레슬릭의 발성은 뭔가 어딘지 살짝 불안정한 느낌이 난다. 안정되게 같은 소리를 쭉 뽑아내지 못하고 조금 흔들린다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그러면서 놀라울 만큼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개성이 있는 특별한 목소리도 한몫 하지만 마법처럼 흘러가는 프레이징이 가장 큰 장점이지 않나 싶다. 저게 아직 30세도 안된 가수의 표현력이란 말인가. 감정을 너무 드러내지도, 그렇지만 밋밋하지도 않게 균형을 잘 맞춘다. 간혹 잘 나가는 가수들에게 보이는 "나 노래 짱 잘 부르지?" 같은 순간이 브레슬릭에겐 전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쿠다쿠다 복습 한번. 이 공연을 정말 좋아해서 다시 보고픈 마음에 블루레이도 집에서 챙겨온 지 오래됐다.
나가노의 지휘도 특별히 훌륭했다. 나가노는 이 작품을 마치 현대 음악처럼 성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반주가 이렇게 복잡하며 섬세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는지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음색의 변화를 주는 것도 탁월했다. 나가노는 필요한 순간 필요한 성부를 얼마나 키워야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흐름에 따라 매번 새로운 밸런스의 음향을 만들어 내 변화무쌍한 소리를 들려줬다. 얌전한 이미지와 달리 폭풍우 장면에서 깔끔하지만 강렬하게 몰아붙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이도메네오를 빼고 모페라를 논해선 안 되겠구나를 느낄 만큼 작품의 완성도에 감탄했다. 여기에 가수, 연출, 지휘 까지 모두 탁월해 추천하는 데 망설일 필요가 없는 공연이다. 아, 딱 하나 걸리는 건 브라이언 라지가 카메라 감독이라는 건데 그래도 라지가 찍은 것 치고는 클로즈업이 덜한 편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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