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전에 한국에서 미리 받아본 공연 티켓들. 도쿄 필하모닉, 도쿄 시티 필하모닉, 신국립극장 탄호이저, 프라하 국립극장 투어 공연 티켓이다.




돌이켜보면 그 동안 난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별 매력을 느끼지도 못 했던 것 같다. 멀리 떠나는 일을 좋아하지도 않고 타지에 가서 꼭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외 교환학생을 갈 생각도 했지만 사정이 생겨 그 생각을 접으며 어디론가 여행갈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도 대전을 벗어나 다른 곳을 찾아가는 일이 적었던 건 전혀 아니다. 공연을 보러 서울은 물론, 강원도, 부산, 대구, 광주 등에 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전을 벗어나게 만드는 건 대부분 공연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기억은 바로 2009년에는 베이징에 1박 2일로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보러간 일이었다. 말이 1박 2일이었지, 다음날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공항으로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베이징에서 한 거라곤 밥먹고 자고 공연 두 개를 본 것 밖에 없었으니 '여행'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었다. 심지어 거리 음식점을 찾아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호텔에 있는 식당과 왕푸징에 있는 맥도날드를 먹은 게 전부였으니까. 어찌보면 공연을 보러 여기저기 다닌 당일치기 일정의 연장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공연은 매우 훌륭했고 외국에 나가서 공연을 보고 오는 것이 정말 귀중한 경험이 되긴 했다.


그렇게 중국에 한 번 다녀온 이후로 언젠가 일본에 가서도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되었다. 당시에 내가 알고 있었던 일본의 홀은 산토리 홀 뿐이었다. 산토리 홀은 더군다나 내가 아바도를 처음 본 영상인 1994년 베를린필 실황 공연이 있었던 홀이기도 했으니 '아바도를 꼭 봐야겠다!'라는 생각 만큼이나 언젠가 산토리 홀을 찾아가고픈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말러를 들었으니 산토리 홀에서도 말러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실제로 산토리 홀의 공연 일정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한국에 오지 않는 해외 오케스트라나 연주자들의 공연을 위주로 살폈었다. 일정을 살펴본 것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의 공연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 작년에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로 인턴을 가게 되었다. 음악학교에는 2012년부터 실내악으로도 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도호학원 학생들로 구성된 Aile String Quartet이 있었다. 학생들의 연주 실력을 볼 기회는 학생 연주회 때 밖에 없는데, 이 현악사중주 팀의 멤버들은 모두 학생 음악회 연주를 신청해서 각각 독주를 했었다. 아쉽게도 스태프로 일해야했기 때문에 직접 들은 연주는 한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네 명이 같이 현악사중주를 하는 건 딱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현악사중주 학생 음악회를 따로 열었는데, 이날 이 학생들이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전악장을 연주했었다. 마스터클래스 때 기가 막히게 연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연주회장 문 앞에 앉아서 듣게 되었다. 그 때 업무 때문에 상당히 피곤했던 것 같은데, 첫 시작 부터 잠이 확 달아날 수 밖에 없었다. 개개인의 실력이 정말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현악사중주 단으로서의 호흡이 너무나 좋았다. 현악사중주 공연도 나름 자주 찾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이 학생들의 연주는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일본 학생들이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에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그 정도 수준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단언컨데 그날 연주는 우리나라에 있는 그 어떤 사중주단보다 뛰어난 연주였다. 사실 최근에 서울시향 수석과 박상민 교수님으로 다시 창단된 서울스트링콰르텟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현악사중주단이 얼마나 있나 싶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현악사중주단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는 노부스 콰르텟이 정말 우리나라 현악사중주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노부스 콰르텟의 정기연주회 때 가보려고 했지만 일정이 안 맞아 못가 아쉬운 기억이 남는다.


절대 한국 학생들의 실력을 비하하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Aile String Quartet의 연주는 정말 놀라웠다. 그 순간 나는 일본의 클래식이란 무엇일지 궁금해졌고, 일본에 공연을 보러간다면 해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볼 게 아니라 일본의 오케스트라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턴이 끝나고 돌아와서 여행 생각을 잠시 뒤로 했다가 대학원 합격 소식이 있고 나서 다시 일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산토리홀 일정 중에 내 눈을 끈건 바로 말러 5번의 공연이었다.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와 세거스탐,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와 인발이 각각 1월 21일,22일에 산토리홀에서 말러 5번을 하기로 계획이 잡혀있던 것. 이틀 간 연달아 두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인 지휘자 두 명과 함께 같은 홀에서 말러 5번을 한다는 걸 보고 그 두 공연을 포함할 수 있도록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 공연을 전후로 있던 다른 공연들을 찾아보니 NHK교향악단, 도쿄필하모닉, 뉴재팬필하모닉, 토다이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다. 그 후 도쿄에 있던 다른 공연장의 공연들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해서 신국립극장의 탄호이저(도쿄심포니)와 오페라 시티의 도쿄 시티필의 공연 까지 계획에 넣을 수 있었다. 


공연 일정을 찾다보니 자꾸 여행 일정이 늘어나게 되어, 재팬필과 도쿄심포니의 정기 연주회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최종 일정은 16일 NHK교향악단으로 시작해서 23일 탄호이저로 끝나는 걸로 결정했다. 이 큼직한 공연들을 미리 예매해놓고, 낮 시간에 있는 공연들을 채워나갔다. 이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사이트는 바로 '음악지우'라는 사이트(http://www.ongakunotomo.co.jp/concert/index.php)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여행 계획을 짜는데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일이 오케스트라와 도쿄 공연장의 일정들을 조사했었는데 이 사이트를 이용하면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여행 일정을 공연으로 가득 채워나갔고 결국 9박 10일 여행에 입국 출국에 쓰는 이틀을 제외한 실질적인 여행 일정인 8일 동안 17개의 공연을 보기로 계획했다.





15일 

17:45 인천 출발 -> 20:00 나리타 도착


16일

15:00 하쿠주홀 - 토네티&밴스카 듀오 콘서트

19:00 산토리홀 - NHK 교향악단 (데이비드 진만, 엘렌 그리모)


17일

10:30 스기나미 공회당 - 테너 미노루 카모시타 뮤직 브런치

14:00 구동경음악학교주악당 - 도쿄예술대학 학생 목요일 콘서트 (성악)

19:00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 -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 에팅거)


18일

11:45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 - 오페라 시티 비주얼 오르간 콘서트

19:00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 - 도쿄 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마사아키 스즈키, 마키 모리)


19일

14:00 산토리홀 -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잉고 메츠마허)

16:30 분카무라 오차드홀 - 프라하 국립극장 피가로의 결혼


20일

11:00 산토리홀 블루 로즈 - 23회 일본 주니어 클래식 콩쿨 입상자 연주회

14:00 산토리홀 - 동경대 음악부 관현악단

19:00 스기나미 공회당 메인홀 - 뉴 이어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1일

19:00 산토리홀 -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오케스트라 (레이프 세거스탐)


22일

11:30 하마리큐 아사히홀 - N향 멤버들의 앙상블

19:00 산토리홀 -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 (엘리야후 인발)


23일

13:30 오페라 시티 콘서트홀 - 토모하루 우시다 리사이틀

17:00 신국립극장 - 탄호이저


24일

14:15 나리타 출발 -> 17:00 인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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