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나사가 몇개 빠진 공연이 내 주말을 망쳤는가.
볼테르의 캉디드는 이 시대에 읽어도 상당히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볼테르의 냉소적인 유머와 고전 피카레스크 식 진행은 곽재식 작가의 재치있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연상케한다. 곽재식 작가가 캉디드를 읽었는지 혹은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차용하는 고전 이야기의 구성이 캉디드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나타난다.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전자책으로 다운받아 버스와 기차 안에서 후루룩 다 읽었다. 번스타인이 이 소설을 어떻게 옮겨놨을지 궁금해졌다.
티에리 어부는 믿고 걸러야 한다고 배웠지만 작품이 작품인지라 놓칠 수 없었다. 캔디드의 음악도 좋고, 원작 소설도 재밌으니 와이프와 함께 보러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와이프님은 내가 데려간 공연중에 제일 재미없었다며 도대체 몇시간을 날린 거냐고 다음날 까지 날 구박했다.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공연의 퀄리티가 아주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나사 몇개, 저기서 몇개, 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몇개씩 빠져나가며 제대로 조립되지 못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또 그리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가수들의 성량일테다. 노부인을 제외하면 주역 가수들의 성량이 한국인 단역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했다. 특히 캔디드 역의 테너는 심각하게 성량이 작아 오케스트라 반주 위에서 가수들끼리 주고받다보면 정말 입 뻥긋하는 것만 보이고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리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번스타인의 음악은 달콤하고 귀에 착착 감기지만 가수들의 뚜렷한 발음과 표현이 들리지 않으면 비슷한 멜로디를 끝없이 반복하는 지루한 시간이 될 뿐이다.
가수들만을 탓하기엔 다른 문제도 있었다. 베이스를 8대나 쓰는, 8-7-6-4.5-4 정도 되는 현악 편성 오케스트라를 마이크 없이 예당 콘서트홀에서 뚫고 나올 수 있는 가수는 몇 없을 테다. 겔가의 마린스키 반지 콘체르탄테가 이것보다 1풀트 씩 적었다! 여기에 어부의 지휘는 피아니시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환경에서 뮤지컬-오페레타 다운 찰지고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서울시향은 그저 열심히 연주한 잘못밖에 없겠지만 어부의 반주는 섬세하지도, 혹은 반주 자체만으로 황홀경을 줄 수 있는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날 공연에서 그나마 음악적 쾌감을 주었던 건 오케스트라의 연주밖에 없었다.
합창을 맡은 건 단원들에게 티켓을 강매시키는 아름다운 관행을 가지고 있는 국립합창단이었다. 이 공연은 티켓 얼마나 파셨어요? 말많고 탈많은 문체부 산하 단체들 중에 국정감사에서 단연 돋보이신거 축하드리구요. 단원들이 티켓 파느라 연습할 시간이나 있었겠습니까.
영어의 까다로운 딕션은 캐스팅을 제한적으로 만드는 요소였을 테고 공연 중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됐다. 한국인 가수들이 영어 대사를 원어민 수준으로 처리하는 걸 기대할 수 없겠지만 (그리고 극중 스페인 인물의 경우 투박한 발음이 전혀 문제가 없기도 하고) 노래의 딕션까지 그런 아쉬움이 생기는건 문제가 있다. 빠른 템포와 맞물리면 가사와 음악 모두 함께 망가졌다.
이 작품엔 영어만 나오는 게 아니다. 그걸 간과한걸까 아주 기본적인 것도 안되는 실수가 나왔다. 1막 노부인의 스페인 노래 I'm so easily assimilated에서 스페인어 가사가 나온다. 이때 남성 조역 두명이 함께 노래하는데 Me muero, me sale una hernia에서 h를 묵음이 아닌 ㅎ으로 발음했다. 아무리 오페라 가수들이 스페인어로 노래할일이 없다고 하지만 같은 라틴 계통인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에도 똑같이 나오는 기본적인 발음 규칙도 몰랐다, 혹은 아무도 교정해주지 않았다는 건 경악스러웠다. 가수들 중 가장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노부인 역시 외국어 발음은 아쉬웠다. 이 노래에서 Por favor, Toreador! 같은 경우 다른 것보다 스페인어를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나야하는 부분인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더 사소하게는 자기의 러시아 이름인 Rovno Gubernya 역시 전혀 러시아어 같지 않았다. 이 날 가장 정확한 발음을 자랑한 건 내레이터 마이클 리였는데, Rositzky의 R과 tz 발음이 특히 훌륭했다.
딕션은 사실 사소한 문제다. 다만 그걸 통해 이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딕션 코치가 따로 있었는지, 얼마나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음악 못지 않게 문제였던건 연극적 구성이었다. 이건 번스타인과 수많은 작사가들, 그리고 그 와중에 알 수 없는 기준으로 노래를 자르고 대사를 섞어넣은 서울시향의 합작품이었다.
트위터에서 후기를 찾아보니 어느새 볼테르는 낙관주의를 보여주기 위해 여자들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이야기를 쓰는 개쓰레기가 돼있었다. 이 짧은 의견은 이날 공연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 여러개를 한번에 꿰뚫고 있다.
일단 테크니컬리, 저 의견은 틀렸다. 볼테르는 낙관주의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낙관주의를 까려고 캉디드를 썼다. 여성들이 강간당하는 것은 낙관주의라는 게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수많은 고통 중 하나다. 물론 그러기 위해 강간 서사를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조금 다른 일이지만, 여튼 볼테르는 인간이 얼마나 피폐하고 끔찍한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퀴네공드나 노파가 저런 고통을 겪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날 캔디드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이 오페라가 낙관주의를 노래하는 작품이며, 볼테르를 저런 개객기라고 생각하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이다. 낙관주의 까는 소설이 낙관주의 옹호하는 내용으로 보였으니 잘못되도 뭐가 단단히 잘못된 셈이다.
일단 번스타인과 작사가들이 사용한 가사들이 볼테르의 신랄한 문체에 비해 재미도 없고 의도가 명확하지도 않다. 볼테르는 팡글로스의 낙관주의를 이렇게 희화화한다. "코는 안경을 얹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씁니다. 다리는 양말을 신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양말을 신습니다. ... 그러니까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딱 봐도 궤변이며 당당하게 헛소리 하는 팡글로스야 말로 이 작품의 유머 포인트다.
하지만 캔디드의 가사는 "말은 타기 위해 있고 책은 읽기 위해 있다"라고 희석된다. 타고다닐 말이 있고, 읽을 책이 있으니 행복하다 라는 나이브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팡글로스의 강의 역시 마찬가지다. 뱀과 전쟁 역시 존재 이유가 있다는 팡글로스의 설명은 더 이상 우스운 궤변이 아니다. 이렇게 되니 관객들은 이게 낙관주의를 까는 게 아니라 낙관주의를 설명하는 오페라 처럼 보게 되는 것이다.
볼테르의 캉디드는 결국 낙관주의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캉디드가 어떻게 현실에 발을 딛냐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캉디드는 수많은 고난을 겪고, 또 주위 사람들 역시 모두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볼테르는 여러 장치를 넣어둔다. 자기 혼자 산전수전 고생을 다했다고 생각한 캉디드는 퀴네공드를 맞나고, 둘은 또 노파의 이야기를 듣게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노파는 '이 배에 탄 사람 중 슬픈 이야기 없는 사람이 어딨는지 찾아보라'고 말한다. 캉디드는 이 세상에 고통으로 가득차있다는 걸 알게된다. 주인에게 팔 다리가 잘린 흑인 노예를 보며 캉디드는 낙관주의를 버린다.
「그런데 낙관주의가 뭐에요?」
카캄보의 질문에 캉디드가 대답했다.
「아! 그건 나쁜데도 불구하고 좋다고 마구잡이로 우기는 거야.」
그는 검둥이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철철 흘렸다.
낙관주의 캉디드는 팡글로스의 안티테제인 비관론자 마르틴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와 끊임없이 토론하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아간다. 폐위된 여섯 왕을 만나는 것도, 추하게 변해버린 퀴네공드를 만나는 것 역시 그러한 사건의 일부다.
이 날 공연에서는 이런 에피소드들이 대부분 삭제됐다. 다 번스타인 때문만은 아니다. 번스타인의 1989 런던 콘체르탄테 판본에서는 짧지만 마르틴이 등장해 노래를 하고 여섯 왕이 권좌에서 물러나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쿠네곤드와의 재회 역시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쿠네곤드가 가면무도회에서 캔디드를 사기쳐서 등쳐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때 부르는 캔디드의 아리아 Nothing more than this는 캔디드의 깨달음(비록 볼테르의 소설만큼 자세하진 않지만)을 짧고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렇게 작품을 단순화시켰으니 관객들이 캔디드를 낙관주의 오페레타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볼테르의 날카로운 풍자는 번스타인에서 한번 희석되었다. 번스타인은 이 소설에 흥미를 느낀건 1차적으로 매커시즘과 같은 광기가 보였기 때문이었을 테다. 이 작품의 노래들이 주인공들의 신세한탄 아리아, 극 내용과 별 상관은 없지만 이국적인 느낌의 아리아, 사기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 정도로만 구성된 것 역시 이 때문일 테다. 여기에 시향 판본은 번스타인의 판본에서도 방향을 잃었다.
콘체르탄테라고 하지만 연출의 부재는 참담한 결과를 냈다. 방향도 의도도 불분명한 아이디어들이 조잡하게 이어졌다. 외국인 가수들의 어설픈 한국어라던가, 아우토다페에서 "캔디드 오빠 사랑해요" 같이 설득력도 없고 의미도 없는 장난만 있을 뿐이었다. 번스타인이 캉디드를 캔디드로 만들며 집중했던 건 아우토다페로 대표할 수 있는 매카시즘적인 세태인데 그것마저 비판적이지도 풍자적이지도 않은, 그저 우스운 장난으로 만들어버렸다. 가뜩이나 강간 희화화로 비난 받을 수 있는 텍스트를 다루면서 어째서 극중의 모든 여자가 (심지어 엘도라도의 양마저) 섹스어필을 해야하나. 올드 레이디의 엉덩이 한짝이 뭐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라고 그걸 길게 끌어야 했나. 찾아보니 그렇게 엉덩이 에피소드를 강조하는 판본은 흔하지도 않아서 안 보인다. 결국 풍자극은 커녕 질 떨어지는 드립밖에 남지 않는 작품이 됐다. 거기다 마지막에 팡글로스의 어색한 한국어로 "질. 문. 있. 나. 요?"를 넣는 건 도대체 어디서 굴러들어온 아이디어인가. 마지막까지 정신 못차리고 낙천주의 일관하는 팡글로스에게 농사짓고 살겠다는 캉디드의 일침이 원작의 마지막 대사다. 그런데 오페레타 마지막에 팡글로스의 첫 강의장면 대사를 넣는다고? 이쯤되면 거의 볼테르 엿먹으라고 막 던지는 느낌이다.
여기에 자막 역시 엉망이었다. 가뜩이나 텍스트가 넘쳐나는 이 작품의 자막을 맡기며 번역비를 얼마나 후려친걸까.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황당한 예시를 몇개 적어뒀는데 이튿날 공연에는 이 오류들은 고쳐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한 번역들이 눈에 밟혔다. 엘도라도에서 황금 가루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Dust를 먼지라고 옮긴다던가 (Dust가 자세히보니 황금이더라 라는 대목이니 먼지가 아니라 흙이나 가루라고 번역해야한다) 유대인과 종교재판관이 쿠네곤드를 어떻게 나눌것이냐는 대목에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저녁은 어떻게 할지 논쟁이 있었지만 - but let that pass(그 이야기는 넘어갑시다)" 를 "그 날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고 번역했다. 당장 오페라 속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이고 그것 때문에 하룻밤새 둘다 나타나는 건데.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이상한 번역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번역가에게 준 대본도 엉망이었던지 쿠네곤드의 거처가 파리인지 리스본인지 판본을 섞어놔서 쿠네곤드의 애인이 대주교였다가 종교재판관이었다 바뀌었다. "한국 초연"이라는 타이틀로 광고했지만 정작 신경써야할 대본 번역은 제대로된 감수도 하지 않고 내놓은 셈이다.
최근에 비슷한 종류의 풍자극 뮤지컬-오페레타를 콘체르탄테처럼 올린 공연이 있었다. 메조 소프라노 김선정님과 구자범 지휘자님이 올린 <Guten Abend mit Lola Blau>로 게오르크 블라우의 <Heute Abend: Lola Blau>에 동시대 카바레 음악등을 추가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따로 후기를 쓰지 못했지만 비범한 작품의 탁월한 공연이었다. 풍자는 날카로웠고 노래의 감정은 명확했다. 자막은 가수 본인이 직접 번역한 것을 사용했다. 두 공연을 비교하자면, 훨씬 가벼운 작품인 캔디드 쪽이 작품의 가벼움 만큼이나 연주나 공연준비에 있어서 더 가볍고 나이브했다.
하필 같은 날 있었던 KBS향과 루이지의 공연은 모든 사람의 극찬을 받았다. 루이지 거르고 어부를 선택한 대가는 뼈 아픈 경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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