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로 알바레스, 리릭의 목소리로 스핀토의 감성을 노래하다.


스페인의 오페라 지휘자로 유명한 헤수스 로페스-코보스가 지휘를 맡았다. 로페스-코보스의 오페라 지휘에 안좋은 평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릴 정도로 훌륭한 반주를 들려준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날 서있고 광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울리카의 노래에 나오는 현악기의 반주 패시지를 격렬하게 긁어주는 대목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연출은 상당히 괜찮다. 사실적인 연출이지만 뻔하지 않다. 1막 2장을 실내로 표현하는데 실비노가 합창단을 끌고오는 장면의 구도가 꽤나 멋지다. 2막의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폐허도 탁월하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거울을 활용한 가면무도회 장면이다. 거울을 45도 쯤으로 기울여 무대 벽 너머의 무도회장을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복잡한 무대장치가 아니지만 기묘한 시야를 제공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가수 진 중에는 마르첼로 알바레스가 빛난다. 이 영상을 굳이 챙겨봐야할 이유를 하나 꼽자면 바로 알바레스의 노래 때문일 것이다. 알바레스의 목소리는 전형적인 리릭이다. 상당히 부드러운 미성이며 가벼운 목소리다. 사실 목소리만 보면 특색이 없는 편에 해당한다. 데무로 같은 꿀성대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멜리 처럼 진득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목소리만 보면 고민할 것 없이 누구나 리릭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알바레스는 완전히 스핀토로 전향했다. 목소리가 스핀토를 할 만큼 무게감이 생긴 건 아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 덜 가벼워 진 것 같긴 하다만. 알바레스가 스핀토를 노래할 때 가장 큰 강점은 바로 폭발적인 감정이다. 어쩌면 리릭의 목소리로는 너무 벅찰 노래에 도전하여 가까스로 해내는 그 모습이 감동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알바레스가 부른 셰니에의 Un dì al azzurro spazio. 이 정도로 격한 감정으로 노래한 가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마지막, Amor, divino dono non lo schernir del mondo anima vita è l'amor에서 폭발시키는 힘은 엄청나다.


비슷한 스타일로는 잘나가던 시절의 비야손을 들 수 있겠지만 이제 완전 리릭으로 자리잡았으니...


리카르도 역이 알바레스와 잘 어울리는 건 리카르도의 다양한 모습 때문이다. 총독이며 사랑에 빠진 남자이기도 하지만 좀 심할 정도로 낙천적인 모습도 자주 나타난다. 1막에서 울리카를 찾아가자고 하는 장면, 울리카에게 예언을 부탁하는 장면은 그의 가벼운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리카르도의 이런 모습은 과장 좀 더하면 만토바 공작만큼이나 생각없이 편하고 가볍게 사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작과 달리 사랑의 슬픔을 더욱 절절하게 노래해야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배역일 것이다.


알바레스는 이걸 훌륭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췄다. 3막의 아리아를 잘 부르는 가수는 많지만 1막에 나오는 경쾌한 노래들의 빠른 패시지를 이렇게 맛깔나게 노래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깐족거리는 모습을 보라.



다른 배역은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비올레타 우르마나Violeta Urmana는 목소리에 힘이 없는 느낌이다. 시종일관 초점이 없는 노래라는 인상을 받았다. 레나토 역의 마르코 브라토냐Marco Vratogna는 나쁘지 않지만 인상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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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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