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본토의 고전적인 로시니는 이런 맛일까.

사실 최근에 본 것은 아니고, 5월 달에 영국 갔다올 때 예습 용으로 노트북에 담아갔던 영상이다. 정작 갈때는 못보고 돌아올 때 비행기에서 1막을 보고 2막을 안보고 있었다. 마침 볼 영상 없이 노트북만 덩그러니 있어 볼게 뭐가 있나 찾다가 마저 보게 되었다.


본토에서 사골 작품을 올린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비극 작품이라면 실제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장미와 장엄함이 있을 텐데, 희극 작품이라면 작품의 재치가 더 마모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있다. 봐도봐도 슬플 수 있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봐도봐도 웃긴 것은 쉽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편견이라고 해두자.

특히나 새로운 연출적 요소가 별로 없는 이탈리아 연출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공연 기록은 산더미 처럼 쌓여있는 이발사 레코딩에 어떻게 예술적 가치를 한 줌이라도 얹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예상했던 것 처럼 함량 미달의 가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특별히 돋보이는 가수도 없다. 알마비바 역의 드미트리 코르차크Dmitry Korchak는 미성의 테너로 능력 없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백작의 모습에 상당히 잘 어울린다. 글고보면 플로레스의 알마비바는 역할에 비해 너무 멋진 게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평이하지만 피날레의 살인적인 아리아 il più lieto에 도전했다는 것은 높게 쳐주고 싶다. 피가로 역의 루카 살시Luca salsi 좀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다지 매혹적인 피가로는 아니었다. 능청스러운 재간둥이 느낌이 부족하다고 해야할까. 이탈리아인 답게 가사의 발음을 활용하는 능력은 상당히 훌륭했다. 메조 소프라노 케테반 케모클리제Ketevan Kemoklidze는 독특하며 매력적인 메조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기량이 꽤 훌륭한 편이다. 바르톨로 역의 브루노 프라티코Bruno Praticò는 테아트로 레알 이발사에서도 같은 역을 맡은 가수로 여기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다. 바질리오 역의 조반니 푸를라네토Giovanni Furlanetto는 목소리도 인상적이지 않고 표현도 너무 얌전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연출 컨셉은 세비야의 느낌을 어느정도 살린 듯 하지만 특별한 면은 별로 없다. 레치타티보 반주자를 끌어들이는 유머 코드는 괜찮지만 신선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영혼 없는 연출은 절대 아니고, 무리수를 두지 않는 선에서 극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가지로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음악에 대한 이해도 돋보이는데, 1막 피날레 앙상블에서 베르티가 고음을 내지르는 부분을 베르티 혼자 무대 정중앙에 세워놔 이목을 끌게 만들고, 이 씬스틸러의 등장에 로지나가 질투하며 베르티를 황급히 가리는 부분은 연출가의 센스가 돋보였다.


가장 인상깊은 건 젊은 지휘자 안드레아 바티스토니Andrea Battistoni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애늙은이'다. 흔히 젊은 지휘자들에게 기대하는 패기와 열정이 아니라 반대로 자중과 절제가 돋보이는 지휘자다. 어떻게 이렇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히 제어해낸다. 이걸 통해 상당히 긴 호흡의 프레이징을 선보이는데, 마치 아이다를 지휘하는 주빈 메타를 듣는 기분이다. 남들은 마리오티라면 훨씬 더 리드미컬하게 하고 터트렸을 포르티시모를 침착하게 또박또박 발음해내며 그 뒤에 등장하는 진짜 클라이막스를 기다린다. 이런 침착함 속에서 전체 앙상블에서 묻히기 쉬운 성부들이 균형잡혀 들린다. 아리아에서 종종 등장하는 피아노 표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 상당히 생경한 느낌을 준다. 극적인 재미를 신기할 정도로 거세시키는 듯하지만 그 절제가 오히려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절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1987년생, 2012년에 라 스칼라 최연소 데뷔. 작곡도 병행한다.

그런데 오히려 지휘 폼은 엄청나게 과장된 편이라 당황했다.


나중에 음악만이라도 한번 제대로 들어볼만한 영상물인 것 같다. 데논에서 음반도 몇개 냈던데 들어봐야겠다. 이름을 꼭 기억해둬야할 지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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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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