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에 등장한 헨델 드림팀, 하지만 반주의 상태가?


줄리오 체사레는 거대한 작품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들이 4시간을 노래로 가득 채워넣는다. 최소한 5명의 훌륭한 바로크 가수가 필요하고 다채로운 곡을 소화해내야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체사레와 클레오파트라가 부르는 아리아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잘츠부르크 축제의 장기는 돈으로 드림팀을 짜맞추는 것이다. 딱히 오페라에 집중된 페스티벌이 아님에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상연되는 오페라들의 무게감이 생기는 것은 압도적인 스타 캐스팅에 기인한다. 그리고 헨델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가수 개개인의 기량이다. 그런 점에서 잘츠부르크의 2012년 줄리오 체사레는 이론상 결정반의 자리를 욕심낼만한 타이틀이다.


안드레아스 숄, 체칠리아 바르톨리, 안네 소피 폰 오터, 필리프 자루스키, 크리스토프 뒤모라는 갈락티코 캐스팅 중에서도 바르톨리는 단연 으뜸이다.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축제 예술 감독으로서 첫 시즌을 맞았던 바르톨리는 자신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수라는 걸 똑똑히 알려준다. 3막의 아리아 Piangerò la mia sorta가 끝나고 관객이 외친 "Sei unica(너는 유일하다)"는 지금 바르톨리의 위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왜 Siete 라고 안하고 반말로 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넘어가자. 바르톨리는 초인적인 기교가 어떻게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헨델 특유의 기교적인 패시지에서 모든 음표가 정확하게 들리는, 말 그대로 marcato로 표현되는 순간은 정말로 경이롭다. 바르톨리는 다른 가수와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도 허황되지 않을 테다. 여기에 느린 음악을 표현하는 능력은 또 어떤가. 가사의 감정을 완벽하게 흡수해서 내뿜어낸다.


그리고 카운터테너 3명이 등장한다. 니레나 역에 요헨 코발스키Jochen Kowalski도 있지만 지금의 나이에는 저 셋과 함께 비교하긴 어렵다. 카운터테너를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 중에서 가장 독특한 소리를 내는 건 안드레아스 숄이다. 다른 가수들이 비교적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색을 내는 데에 반해 숄의 소리는 상당히 인위적이다. 인위적이라는 말이 조금 부당한 묘사일 수 있지만 숄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항상 그런 느낌이 든다. 콧소리가 조금 섞여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다른 카운터테너의 노래를 들을 때 별생각 없이 들으면 자연스러운 여성의 목소리로 들리는 것과 별개로 숄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 그것이 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다. 숄을 상당히 좋아하기에 즐겁게 들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줄리오 체사레의 모습에 어울리는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자루스키는 어린 세스토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기교적인 곡에서보다 Caro speme questo core와 같이 느린 곡에서 더 빛난다. 숄에서 청아함을 남기고 독특함을 조금 빼면 자루스키의 목소리가 되지 않을까. 그의 목소리가 비브라토를 절제하며 울려퍼질 때 바로크 음악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목소리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토프 뒤모는 앞선 두명에 비하면 톱스타는 아니지만 정말 매력적인 가수다. 글라인드본 줄리오 체사레에서도 똑같이 톨로메오 역할로 나왔는데 레치타티보를 맛깔나게 뱉어내는 연기는 정말 최고다. 그때나 이번이나 아리아를 부르면서도 어려운 연기를 소화해낸다. 약간은 간드러지는 듯한 음색이 중독성 있는 가수다. 아리아를 부를 때도 연극적인 면을 상당히 강조해내기에 듣기에 즐겁다.


오터의 이름을 마지막에 언급하는 건 그가 준 인상이 절대 부족해서가 아니다. 분장 때문에 거의 60대 후반이 아닌가 싶었지만 1955년 생이다. 코르넬리아는 극 내내 암울한 마음을 노래해야하는데 오터는 그 무게감을 견뎌낼 수 있는 가수다. 역할의 무게에 잡아먹히지 않으면서 진중한 노래를 들려준다. 세스토와 함께 부르는 듀엣은 브라비시모라는 외침을 이끌어낼 만큼 압권이다. 


연출도 도발적이며 효과적이다. 바로크 오페라 연출에서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보는 극의 논리성 부여와 다카포 아리아의 표현 두가지 모두 수준급이다. 일종의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표현해낸 것은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극 전반에 걸쳐 그 컨셉을 잘 활용했다. 마지막에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해피엔딩을 엿 먹이는 연출도 마음에 쏙 들었다. 아리아의 표현도 동적인 아리아와 정적인 아리아를 구분해 연출을 절제한 것도 꽤 설득력 있었다. 또한 레치타티보에서 카운터테너들이 종종 남자 목소리를 섞어가며 말하는 것도 연극적으로 훨씬 사실적인 효과를 냈다.


하지만 문제는 반주였다. 믿었던 안토니니가 이런 짓을 할줄이야.

난 안토니니와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를 정말 좋아한다. 보케리니 , 베토벤, 하이든, 비발디, 헨델 등등 이들의 음반은 항상 옳았다. 성남 내한 공연을 어쩔 수 없이 못갔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바젤 챔버오케와 대전에서 했던 공연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건 대전예당 음향 탓이려니 생각했다. 여기에 안토니니가 그간 바르톨리 반주를 많이했던 걸 생각하면 기대를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가 과연 오페라 지휘에 적절한 사람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 

절반은 자르디노의 규모와 음색 탓이다. 자르디노 특유의 거친 스타일과 하우스 퓌어 모차르트의 건조한 음향이 맞물려 메마르기 짝이 없는 소리를 들려준다. 명료함은 바로크 음악의 생명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선율선이 파괴될 정도로 건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여기에 바소 콘티누오 구성 역시 너무나 단촐했다. 하프시코드와 베이스 이외에 류트 정도만 쓴 것 같은데, 레치타티보와 느린 아리아는 대체로 너무 비어있었다.

내가 비교 대상으로 윌리엄 크리스티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를 삼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계몽시대 오케스트라가 과도하게 '낭만적'일지도 모른다. 헨델 시대 오케스트라는 자르디노에 가까운 소리를 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시대연주를 좋아하고 특히나 자르디노의 거칠고 에너지 넘치는 연주를 사랑했지만 이들의 오페라 반주는 성악가와 제대로 섞이지 못한다. 아리아의 전주나 간주에서 자신들의 특색을 발휘하는 듯 하지만 가수가 들어오는 순간 이질적인 느낌이 나고 머뭇거리면서 이도저도 아닌 연주를 들려준다.

안토니니의 지휘 역시 뚜렷한 방향성이 없다. 그동안 음반에서 들려주던 재기넘치는 해석은 다 어디로 갔는지 평이하기 짝이없다. 가수를 반주할 때 너무나 소극적으로 숨어버리는 것 역시 듣는 재미를 반감시킨다. 안토니니 당신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반대로 크리스티가 얼마나 위대한 오페라 지휘자인지 깨닫게 된다. 바르톨리가 멱살 캐리 하고 그 뒤에 오터와 카운터테너 3대장이 지원사격을 하지만 안토니니와 크리스티의 격차는 그것보다 훨씬 크다. 크리스티의 줄리오 체사레가 아마존에서 역대급 리뷰를 기록하고 있는 게 아무 이유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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