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볼 시간에 오페라 한 편 더 볼걸.


6개의 다큐로 나뉘어져있다. 바그너와 베르디를 대조시키는 첫번째 다큐로 시작해서 베르디의 삶, 바그너의 삶, 베르디와 바그너의 여자들, 그들의 노래, 그리고 두 음악의 영향력을 주제로 한 여섯 가지 다큐가 엮여있다.


다큐는 별 내용 없다. 정말이지 별로 도움되는 내용이 없다. 감독도 6명이라 조금씩 겹치는 것도 있고 각각의 길이가 길지 않으니 (총 150여분) 내용이 얕다. 뭔가 더 재밌는 게 나오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보다가 6편이 모두 끝났다. 제목은 바그너 vs 베르디로 정했지만 실제로 둘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부분은 없고 바그너와 베르디 각각의 모습에 대해서만 치중한다. 

그나마 흥미로운 장면을 몇개 떠올리면 이런 거다. 클라우스 구트가 빈에서 탄호이저를 연출했는데 커튼콜 때 나오는 야유에서 살의를 느꼈다고. 실제로 살해 협박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신성시 여기는 걸 모욕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하여간 바그너 좋아하는 놈들 인성은....읍읍

바그너의 음악은 위험한가?라는 진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 음악이 아니라 이것을 오용하는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진부한 결론이 나온다. "요즘 세상에 히틀러를 찬양하는 사람이 어딨나요? 더 이상 바그너를 그와 연관짓지 말아야합니다"라는 식의 주장은 악의적일 만큼 순진한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도이체 오퍼의 나치 연출 리엔치 공연의 리바이벌 첫 공연이 우연치 않게 히틀러의 생일날로 잡혀서 단원들이 공식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탈리아 북부의 분리주의 정당이 나부코의 합창을 당의 노래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소개된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재밌는 소재들을 던져주지만 논의를 더 발전시키진 못한다.

바그너에 관한 내용은 대부분 익숙한 거였지만 베르디에 대해서는 새로운 내용도 있었다. 베르디가 상당히 넓은 영지에서 400여명의 일꾼을 부리는 지주였다는 것, 부세토 사람들이 조세피나와의 관계를 극혐해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줄 정도였다는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가창법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더 흥미로웠지만 이 역시 바그너와 베르디의 노래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둘의 노래 방식이 당시에는 비슷했을 거라는 식의 결론이 된다. 귀네스 존스가 나와서 바그너를 부르기 위해서는 벨칸토 창법에 완벽히 숙달 되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19세기 즈음에는 가수들이 모든 오페라 파트를 소화해냈어야 하며 오텔로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바리톤적 울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는 걸 오래된 녹음자료로 설명해준다. 


하지만 별다른 득도 없이 끝나는 이야기들도 많다. 베르디의 여자들과 바그너의 여자들을 비교하는 다큐멘터리는 두 작곡가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상을 대비시키는 듯 하다가 결국 둘다 비슷한 모습을 담고 있다는 모호한 결론으로 끝난다. 그 근거로 나오는 것이 베르디의 작품에도 투구를 쓴 여전사들이 있다며 조반나 다르코 (잔다르크)의 예시를 드는 것이다. 이 쯤에서 벙 찔 수밖에 없었다.

시간 낭비의 절정은 마지막 다큐였다. 두 음악의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이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극중 내내 메인으로 소개되는 실험이 바로 클래식을 모르는 쌍둥이를 데려다가 베르디와 바그너의 음악을 들려주고 그 반응을 측정하는 것이다. 무려 EEG로!

내가 돈 주고 보는 다큐멘터리에서 EEG가지고 실험한 걸, 그것도 겨우 한쌍 데리고 실험한 결과를 듣고 있어야 하다니... 결과가 베르디 듣는 사람에겐 행복한 뇌파가 나오고 바그너 듣는 사람에겐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 베르디 음악의 리듬감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바그너 음악이 지루하다는 입증은 못하지만 베르디 음악이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입증했다고 주장한다. 어우 로시니 들려주면 아주 행복해서 날아가시겠네요.


베르디와 바그너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것에 대해선 딱 하나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콘스탄틴 베커 (알고보니 독일에서 아주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다)가 아버지와 함께 노래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1. 베르디 음악은 바그너에 비해서 나이브하다 2. 하지만 아버지는 나이브하지 않고선 어떻게 인생을 버틸 수 있냐고 말하셨다 - 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단순하지만 공감가는 비유다.


다큐를 만들려면 더 영리했어야 한다. 에릭 슐츠 같은 감독이 만들어낸 전문성 넘치는 다큐멘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결과다. 중간중간 나오는 장면들 역시 의미없는 부분이 너무 많고,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도 모른다.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종교적인 수준으로 추종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있는 것인데 그걸 그런 현상이 있다는 수준으로 밖에 이야기하지 못한다. 두 사람의 삶이 다르고 두 사람의 사생활이 다르고 두 사람의 음악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나열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에 불과하다. 결국 두 음악이 주는 감동의 포인트가 어떤 형태의 것인지 제대로 잡아내질 못하고 있다. 

바그너나 베르디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딱히 볼 필요가 없다. 돈을 주고 샀다면 돈이 아깝고, 시간을 들여 본다면 그 시간까지도 아까운 다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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