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공연.


리에주 왈롱 극장 공연에 조금 실망하고 나서 다음으로 선택한 공연이다. 연출이나 공연이나 정반대의 노선이다.


일단 아담 피셔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탁월하다. 아담 피셔의 코지를 듣고 가수와 호흡이 너무 안맞는 것에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공연에서도 그런 모습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일단 마스네의 음악을 아름답게 되살려냈다. 3막 1장의 312 리듬 역시 드물게도 정확하게 연주해낸다. 오케스트라 반주 파트만으로 음악을 아름답게 세공해내는 데에는 분명한 능력이 있는 지휘자다.


 주역 가수 두명이 탁월하다.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명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뽐내는 그루베로바가 40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정갈한 비브라토와 아름다운 발성의 모범을 보여준다. 덕분에 마농은 허영심에 가득찬 여자가 아니라 어린 소녀 같은 호기심과 순수함으로 가득찬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콜로라투라 패시지를 너무나도 가볍고 편안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많은 소프라노에게 교본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프란치스코 아라이자의 노래를 듣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강렬한 목소리와 절절한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꿈노래와 아 퓌예에서는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한다. 이 오페라 뭘까 싶다가 마농과 데그리외의 음악 만큼은 도저히 깔 수가 없다는 걸 느꼈다. 결국 이 작품을 불멸의 반열로 올려놓은 것은 이 낭만적인 아리아와 듀엣 덕택일 테다. 원작 소설을 보면서 압도되었던 데그리외의 정신병적인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두 주연의 열창에 빈 관객들은 열광한다. 브라보를 길게 끌면서 환호하기 때문에 그 소리가 마치 하나의 화음이 돼서 극장을 가득 메운다. 이 정도 노래를 직접 들으면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다. 이 작품에 설득력과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두 가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 뿐이다.

 

그 외에 레스코 역의 가수는 이 역을 꽤나 진지하게 불러내 코믹하기 보다는 악당 같은 면모를 잘 보여줬다. 코믹적인 연기가 빠지면서 오페라 전체가 마농과 데그리외의 로맨스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다.


판본 중 드물게 1막에 마농과 데그리외가 떠나고 나서 레스코가 기욤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들어가있다. 이 외에 5막에서 용병들이 다 도망쳤다는 레스코와의 대화도 들어가 있다. 대신 3막의 오페라 장면과 그와 관련된 기욤의 대사가 빠져있는 것이 독특하다. 

장피에르 폰넬이 연출을 맡았다. 그의 영화버전 공연은 대체로 아쉬운 게 많은 편이지만 오페라 연출은 당대의 다른 연출들과 비교했을 때 극의 개연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라 좋았다. 1막 끝에서 브레티니가 레스코를 조용히 불러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나 2막에서 자연스러운 동선, 5막에서 공간 분리 등은 사실적이면서도 극의 흐름을 매끄럽게 다듬어준다. 가수들의 연기 역시 자연스러워 몰입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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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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