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오페라를 본적이 언제일까. 가수진에 구멍이 없고 반주도 뛰어나고 훌륭한 극장과 뛰어난 연출이 모두 어우러진 공연 말이다. 

외국에서 공연을 종종 보는 편이지만 그렇게 대단한 공연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일단 외국에 나가는게 대부분 학회 때문에 나갔다가 일정 맞는 공연있으면 보는 거지 맘에 드는 공연을 보려고 출국을 계획하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객관적으로 완성도가 높았던 공연은 그렇게 많지 않다. 바이로이트에서 공연들 정도? 그나마도 반지는 지크프리트와 브륀힐데가 요즘 기준으로도 많이 아쉬운 편이었다.

그러고는 극장에 일이 별로 없었다. 베를린에서 공연중 완성도로 치면 가장 좋았던 공연이 아마 래틀 지휘 셰로 연출의 <죽은자의 집에서> 일텐데, 솔직히 작품 예습을 많이 하지 못해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도이체 오퍼에서 알라냐 나오는 카르멘은 여러모로 구렸다. 뒤로 영국에서는 ROH ENO 그리고 글라인드본에 갔다. 솔직히 ROH 이제 탑레벨이라고 하기엔...  내가 지금껏 단일공연 가장 비싼 티켓은 글라인드본 명가수였을 텐데, 발터가 샤데였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지? 독일에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좋아하다보니 페트렌코 명가수 제끼고 뉘른베르크 가서 전쟁과 평화보는 짓을 했다. 그날 후기를 다시 읽는데 내가 그랬을까…. 잘츠부르크에서도 오페라 편을 보았지만 모두 뭐하나씩 부족한 공연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공연 탑클래스 공연은 뮌헨에서 트리티코였지만 연출도 조금 아쉬웠고, 음향도 베스트라고 하긴 어려웠다.

그런 보면 쿠렌치스 공연을 찾아가는 아닌 이상 무조건 높은 이름값만 찾아간다고 해서 감동이 보장되는 아니었다. 

슈타츠오퍼의 컴플렉스 하나는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랑할만한 초연작이 별로 없었다라는 점이었다고 한다. 컴플렉스를 날려버린 작품이 바로 1919 초연된 슈트라우스의 무영녀. 올해 초연 100주년을 맞아 다시 올리는 프로덕션이니 이번 시즌 최고의 기대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다. 틸레만 지휘, 카밀라 닐룬트, 니나 슈템메, 에벨린 헤를리치우스, 볼프강 코흐, 스티븐 굴드로 이루어진 초호화 캐스팅. 

소문난 잔치에 먹을 없을 수도 있지만 정도면 기대를 안할 수가 없었다.

프리미어는 25일이었고, 무려 최고가 티켓의 정가가 500유로였다. 다음 공연부턴 티켓값이 절반넘게 떨어진다.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티켓 판매가 2달전에 오픈됐을 이미 매진이었다. 이게 표가 그때 실제로 풀리긴 하는건지, 아니면 일찌감치 정기권 사람들한테 팔려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날짜는 다가오는데 표를 못구하고 있었고 비엔나 티켓 사이트에 신청해서 표를 구입했다. 일단 표를 구했다는 행복해서 별생각없이 티켓을 오케이했는데 수수료가 무슨 티켓정가의 80% 되더라.. 흑흑 여행객은 호갱이 뿐입니다ㅠㅠ 

객석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프리미어 티켓값이 워낙 비싸다보니 오히려 덕후들은 두번째 공연부터 노렸던 걸까.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려고 하자 사람들이 쉬이이잇 소리를 내며 정숙을 요구했다. 조금만 말소리가 나와도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왔고, 연주 중에 누군가 큰소리로 기침하자 곳곳에서 짜증이 섞인 탄식이 들려왔다.

 

과연 호화 캐스팅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헤를리치우스의 등장부터 귀가 트이는 느낌이었다. 어라 헤를리치우스가 이렇게 잘하는 가수였나? 여자 메피스토펠레인 유모 역할에 드러맞는 목소리였다. 이런 쪽으로는 미하엘라 슈스터가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했는데, 슈스터가 우아하고 도도하게 사악한 악당이라면 헤를리치우스는 비열하고 멋대로 날뛰는 같은 모습이었다. 성량도 크고 딕션도 또렷하고 목소리 연기도 탁월했다. 이졸데 같은 역을 부르기에는 단점이 있는 목소리나 노래스타일도 유모역 에는 딱이었다.

오페라에서 제일 중요한건 여자 삼인방일 것이고 뒤로 바락과 황제가 중요할테다. 분량으로 치면 바락이 많겠지만 황제는 한번 나오면 혼자 길게 노래하는 스타일이라 묻어갈 없는 역할이다.

들으면서 감탄한 것은 슈템메, 닐룬트, 헤를리치우스 삼인방이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며 합을 맞추는 점이었다. 각각의 역할에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슈템메는 압도적인 성량, 그리고 풍부한 감정으로 아내 역에 필요한 극단의 감정들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바이로이트에서 만난 뮌헨 오페라 리뷰어 아저씨가 최고의 바그너 소프라노로 슈템메를 꼽았는데 이유를 있었다. 여태 성량 제일 가수하면 네트렙코 정도 생각했는데, 4 편성 뚫고 나오는 바그너 소프라노가 어떤 존재인지 슈템메가 제대로 보여줬다. 성량이 크다 정도가 아니라 쩌렁쩌렁하게 극장을 울렸다. 고음도 깨끗하게 나오는 말할 것도 없고 선율을 살려내는 것도 좋았다.

슈템메가 감정기복으로 무대를 장악했다면 닐룬트는 황후답게 고고하고 정제된 목소리를 들려줬다. 닐룬트의 성량이 작은 편이 아님에도 슈템메와 헤를리치우스 사이에서는 작게 들릴 수밖에 없었는데, 무리해서 소리를 내지 않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살려냈다. 목소리에서부터 이미 그림자 없는 여인의 투명함이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2막에서 바락이 집에 돌아온다고 소리치는 장면에선 소름끼칠 만큼 소리로 가사를 소화했다. 2막과 3막의 솔로 파트는 황후가 겪는 갈등과 심정이 다가오는 절창이었다. 숭고한 느낌,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오페라 안에서도 홀로 빛나는 황후의 존재처럼 닐룬트의 노래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와는 다른 종류의 감동을 주었다. 

코흐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바이로이트 반지에서 좋게 듣지 않았고 뮌헨에서 트리티코 미켈레 역시 탁월하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바락을 부르니 다르더라. 어쩌면 코흐의 목소리에 가장 드러맞는 역할이 아닐까. 라인골트에서 코흐를 처음 들었을 보탄 노래가 이리도 재미없다니, 도대체 남은 발퀴레랑 지크프리트는 무슨 재미로 듣나 싶었다. 가사를 살려내거나 포인트를 둬서 재미를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런 코흐한테 감탄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발퀴레 Leb wohl이었다. 독일 오페라를 주로 부르는 코흐지만 사실 서정적인 라인을 살리는데 탁월한 가수였다. 그게 바락 파트와 맞아떨어졌다. 바그너 가사 처리보다 사람착한 바락을 표현하는 서정적인 노래가 중심이 되니 코흐의 장점이 매우 살아났다. 

스티븐 굴드를 직접 듣는 처음이다. 요새 안되는 헬덴 테너로 유명하고, 아마 헬덴테너 섭외 1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직접 들으니 정말 소리통 하나는 현존 헬덴테너 최고가 아닐까 싶다. 감정 표현이 탁월하거나 폭이 넓은 아니었지만 일단 이런 목소리로 힘있게 밀어붙이는 노래를 듣는 자체가 이미 충분히 즐거웠다.

 

틸레만과 슈타츠오퍼의 반주! 정말로 설계된 반주였다. 슈트라우스의 악보가 상당히 섬세한 것도 있지만 오케스트라가 가수를 덮는 경우가 없었다. 틸레만의 스타일은 시작부터 드러나는데, 다들 바로 포르테로 카이코바트의 모티프를 때려박는데 틸은 변태감성 답게 피아노로 시작해서 점차 키워나간다. 찾아보니 예전 잘츠부르크 공연때도 같은 방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석이 예전 연주와 똑같냐, 그건 아니다. 물론 전체를 모두 다시 비교해본 아니지만 잘츠 영상때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면 틸레만 특유의 느끼한 프레이징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연주에서는 그런 변태같음을 느낄 없었다. 제어되고, 함부로 나서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곳에서 폭발시키는 연주였다. 

틸의 변태설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부분은 3막에 황제가 돌에서 깨어나고 바락과 아내로 넘어가는 장면의 간주였다. 이게 아마 작품의 마지막 관현악 투티일 텐데, 이게 뭔가 시원찮게 시작하는 거다. 힘을 아끼고 매우 절제해서 연주하는데, 조가 바뀌면서 고조되는데도 성에 안차게 연주했다. 오페라 끝나가는데 이러기 있나요ㅠㅠ 하고 슬퍼할 금관이 가세해 같은 선율을 마지막으로 반복할 한방을 제대로 폭발시키며 절정의 순간을 만들었다. 뿜어져 나오는 금관과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에 그저 우리 틸레만 성님의 그림을 보지 못하는 미천한 본인을 용서해주소서 흐그흑찾아보니 잘츠부르크때도 이런 해석을 보여줬지만 실연으로 보아 그런건지 해석이 대비가 커진것인지 직접 들을 때의 쏟아지는 듯한 절정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슈타츠 연주 한다는 이야기를 해서 뭐하겠냐만, 알슈 오페라를, 그것도 자기 극장에서 초연한 오페라를 연주하니 격차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일단 좁은 방향으로도 호른 8명이 나란히 앉을 있는 거대한 피트 사이즈부터 압도적이다. 현악기의 음정이 나가는 경우가 없었고 오케 끼리의 밸런스도 정말 맞았다. 가끔 나오는 솔로는 정말 심멎이었는데, 특히 2 간주곡에 나오는 첼로 솔로는 이게 오페라 극장에서 들을 있는 솔로 수준인가 싶었다. 솔로에 뒤이어 나오는 첼로 투티의 카이저 사랑 모티프는 흐그흑 오페라에서 제일 멋진 장면이었다. 1 삼형제 장면에서 현악기들이 힘껏 긁어대는 보니 과연 여기가 태업의 심볼 빈필이 맞나 싶었다. 

 

 

연출은 무난했다. 도발적인 장면은 없었고 리브레토의 내용을 현실감있게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었다. 동화적인 부분을 추상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판타지 영화의 느낌이 나게 무대를 꾸몄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영계의 칠월산을 주상절리 바위산으로 표현한 것은 보기에 괜찮았다. 솅크의 반지 연출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쪽이 너무 회화적이라면 연출은 벽을 입체적으로 사용했다.  바락의 집의 무대는 야외인듯 실내인듯 모습이 셰로-페두치 콤비의 무대가 떠올랐다.

가장 독특했던 부분은 1막에서 바락과 아내의 다툼 간주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Dritthalb Jahr 직전 부분인데, 바락이 아내에게 천에 감싼 선물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선물을 받은 아내는 활짝 웃으며 반긴다. 그리고 간주의 흐름에 맞춰 선물을 천천히 풀어보는데, 결국 나오는 아기 인형이다. 아내는 실망하며 인형을 집어던진다. 웬일로 남편이 선물을 주나 했더니 결국 아이 낳아달라는 이야기라니 질릴만도 하다. 하지만 연출의 포인트는 아내가 실망하고 짜증을 낸다는 것보다 선물을 받는 순간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점이다. 결혼생활의 비참한 부분만 강조하지 않고 사이에도 서툰 애정표현이 있고 복합적인 감정이 있다는 보여준다. 아내의 복잡한 심정을 풀어내지 못하면 2막과 3막에서 아내의 행적이 개연성이 부족할 수있다. 

2 황제 장면 역시 특이했다. 무대에는 부상당한 군인과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다. 멀리서 보아 정확히 모르겠지만 1 세계대전의 사상자로 보였다. 황후는 슬퍼하며 군인 명을 껴안고 황제는 멀리서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한다. 황후의 성격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동정심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중심 동기이기 때문에 이 점을 간주곡에서 부각해주는 건 극에 통일성을 주는데 도움이 됐다.

 

 처음 오페라를 보았을 때와 결혼하고 나서 다시 보았을 다가오는 달랐다. 오페라에서 부부 관계를 이렇게 흥미롭게 묘사한 오페라가 있을까. 고단한 삶과 출산 문제 때문에 생기는 갈등서부터 부부의 사랑에 대한 찬미까지. 지극히 교훈적인 결말에 불만일 수는 있겠지만, 20년 전 드라마를 봐도 가부장적인 사회모습이 드러나는 마당에 100년 전 오페라라면 이 정도도 그저 놀랍다. 또한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의 다른 작품들 보다도 더 여성 인물들이 주체적으로 등장한다. 살로메,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아라벨라 등에서도 슈트라우스의 여성들은 분명 이탈리아 오페라의 히로인들과 다른 모습이지만, 이 오페라는 훨씬 더 강렬하게 부각된다. 무엇보다 남자들이 극 중에서 취하는 행동이 너무나 한정적이다. 황제는 부인을 놨두고 사냥가는게 일이고 바락 역시 극의 흐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을 만들지 못 한다. 1막부터 3막까지, 큰 일은 모두 여자가 하는 오페라다. 

 

그만큼 세 여 주인공의 비중도 크고 스타일도 다른데, 이 날 공연은 현역 최고의 조합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커튼콜을 참 오랫동안 한 것 같다. 대여섯번 정도는 더 부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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