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 사태 이후로 1년간 자체 보이콧하고 있었다. 윌리엄텔 같은거 놓치고 있자니 괜히 억울하다. 국가에서 오페라 좀 보여주겠다고 세금 쓰는 몇안되는 행사인데 왜 내가 이 혜택을 포기하고 있어야하지? 

원래 단식투쟁을 끝내려면 명분을 주어줘야한다고 하지 않나. 내 보이콧에도 그런 명분이 생겼으니 바로 국오 단장 해임이다. 사안의 법적, 윤리적 과실 유무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단장으로서 코지 사태 그 순간에 1층 객석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른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후기들도 많으니 짤막한 후기



지휘와 오케: 여태까지 국립오페라단 공연을 통틀어서도 가장 각잡힌 반주였다. 코심이 이렇게 잘하는 오케였구나 싶을 만큼 실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해석의 스타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올랭피아 아리아 반주 때 아주 공들여서 프레이즈를 같이 만들어놨구나 싶었고, 곳곳의 어려운 반주 파트도 아주 깔끔하게 해내서 놀라웠다. 


성악: 장프랑수아 보라스는 나폴리에서 로돌포를 괜찮게 불렀어서 잘 기억하고 있었다. 노래도 시원스럽게 잘 불러주고 어려운 고음도 상당히 안정적인데다가 프렌치 답게 딕션도 물론 좋았다. 파사로이우는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잘 불러줬다. 철인삼종 수준의 도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올랭피아에서 가장 빛났다. 안토니아가 그 다음이었고 줄리에타는 이상적인 목소리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안토니아 장면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폭풍간지 장면인 어머니와의 듀엣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스피커로 나와서 너무 깼다. 니클라우스 역의 김정미 씨는 저번 서울시오페라단 베르테르에서 가장 빛났던 캐스팅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날도 상당히 훌륭했다. 


연출: 부사르의 약점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부사르에게 반하게 된 함부르크 나비부인은 뭔가 돌연변이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이번 포함에서 영상물이나 공연으로 부사르 연출을 6번 정도 본것 같은데 나비부인만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누구 다른 사람 아이디어 컨닝한거 아닌지 검사 한번 들어가봐야한다 싶을 정도.


2,3,4막의 이야기가 호프만과 친구들의 극중극이라고 하는 컨셉은 세상 쓸데없는 컨셉이었다. 도대체 그게 극중극이라는 사실이 뭘 바꾼 건지 모르겠다. 아이디어를 위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다. 그걸 중요한 컨셉이라고 드라마투르그 프리렉처나 처음 공연 시작전 자막으로 안내할 필요가 뭐가 있었나 싶다. 호프만의 친구들이 구경꾼으로 막 중간중간 등장한다 -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뭐 사회적 관음증으로 피해받은 연인의 케이스인가? 이 컨셉은 올랭피아 막 마지막에서 합창단이 호프만을 비웃는 장면을 제외하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 했다.


올랭피아 - 안토니아 - 줄리에타를 모두 같은 가수가 맡는다는 점을 잘 살려내지도 못했다. 전반적으로 한 막 안에서 특별히 사건이라고 할만한 것들도 없고 동선도 별로였다. 프로젝터로 보여주는 이미지들도 영 유효타가 없었다. 프랑스 연출답게 미장센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만큼 뛰어났다고 보기도 힘들고, 독일식의 신선한 아이디어, 혹은 영국식의 사실적인 연기도 물론 없었다. 

유독 한복을 혼합한 의상이 많았는데, 작년에 마농 연출이 부사르의 이전 프로덕션과 너무 닮아있다는 비판을 의식한건가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게 아니고선 너무 뜬금없이 들어가있었다. 예전 서울시립오페라단 사랑의 묘약처럼 무대와 의상 디자인 전반에 한국적인 디자인을 넣은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닌 혼합물이 됐다. 그래도 여주인공의 옷은 연출에 잘 어우러졌지만 다페르투토의 저승사자는 웃길려고 한건지 무서울려고 한건지 도통 분간이 안 갔다. 웃길려고 했다기엔 다페르투토의 연기가 이전 다른 배역들에 비해서 훨씬 무거운 편이었고, 드라마투르그도 렉처 때 다페르투토야 말로 악마적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악마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기엔 그 저승사자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주위 관객들이 실소를 터뜨릴 정도였다.

무엇보다 호프만과 여인들 사이의 케미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던 점도 크다. 별로 둘이 사랑하는 것 같아보이지도 않고 열렬해 보이지도 않았다. 새로운 아이디어고 뭐고 기본이라도 충실해줬으면 좋았으려만.

사람은 사랑으로 성장한다는 결말은 오페라의 중간 막들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고 나이브하다. 이 연출도 그 결말 만큼이나 가벼웠다.


공연 외적으로도 아쉬운 점이 남았다. 공연 시작 전 프리렉처로 드라마투르그가 나와서 작품과 연출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 설명이 영 매끈하지가 않았다. 예컨데 "보통 2,3,4막을 환상으로 보는데, 사람에 따라서 1,5막도 환상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그 경우에 2,3,4막은 환상 속의 환상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복잡하니 1,5막은 진짜라고 생각하자" 같은 내용의 설명이 있었다. 그렇게 설명할 거면 아예 그 말을 꺼내지도 말았어야죠... 저런 해석이 있다는 걸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도 아니고, 떡밥을 던진 다음에 아 이건 아니에요라니. 

여기에 "오늘 연출은 2,3,4막을 극중극으로 표현했는데 4막이 끝날 때 쉴레밀을 죽이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실 친구인 헤르만이라는 걸 깨닫는다". 설명이 필요한 드립은 실패한 드립이 듯 극중극이라는 컨셉을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설명해야한다면 그건 실패한 컨셉이다. 극중극이라는 컨셉이 정말 중요하고 참신한 개념이었으면 그 사실을 관객들이 공연을 보며 깨달아야 효과가 극대화 됐을 테다.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깨달음을 줄만한 포인트도 없으니 그냥 저렇게 프리렉처 때 극중극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주세요 애원하듯 설명하게 된 것이다.

렉처나 프로그램 노트가 영 별로라서 드라마투르그 맡은 분의 이력과 저서를 잠깐 찾아보았는데, 통번역 전문가이시지 오페라나 공연사에 대해 연구를 하신 분이 아니다 (역서 중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이기도 한 데이빗 랜돌프의 클래식 입문 서적이 있긴 하다) 드라마투르그가 연출가와 출연진, 관객사이의 소통을 도와주는 존재라고 해서 진짜 말 그대로 불어 통역해줄 사람으로 뽑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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