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란도 핀토 파초라고 쓰고 싶은데 검색 노출 잘 되라고 파쵸라고 제목은 써놨다.


루살카 이후 얼마 지나지도 않아 상연된 국오 공연.

1년에 신작 올리는 오페라단에서 공연 간격이 3 밖에 안되는 문제가 있다고 . 예습하기 바쁘다고! 아마 1,2월은 국가 예산 집행이 안되는 때고 여름은 오프시즌이라는 이유 때문일 같긴 하다.


이번 연출은 학민킴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를 걸어볼 했음. 파비오 체레사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연출 사진들이 괜찮아 보였고, 올해 인터네셔널 오페라 어워즈에서 젊은 연출가 상을 받았다는 것도 상당히 기대하게 만드는 점이었다물론 라스칼라 전자 리브레토 담당하는 사람이라스칼라를 중심으로 바로크 전문 지휘자로 활동하는사람으로 둔갑한 황당했다. 거기에 황제 영상은 충격과 공포였고.


일단 오를란도 핀토 파초를 올린다는 결정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처음 계획대로 학민킴이 서울시오페라단에서 연출한 오르페오를 올리겠다는 말도 안되는 거였고. 다만 오르페오에서 어떻게 오를란도 핀토 파초로 바뀌었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로크 오페라를 올리겠다는 정말 칭찬받을 시도이지만 국내에 소개해야할 명작이 그렇게나 많은데 어째서 하필 듣보 작품이란 말인가. 포페아의 대관, 율리시즈의 귀환 같은 몬테베르디의 역작이나 헨델의 수많은 주요 오페라들을 놨두고 비발디의 오페라 중에서도 딱히 유명하지 않은 작품을 고른 조금 의외였다. 작품 자체의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1년에 몇편 올리지도 않는 오페라단이 정말 소개해야할 오페라를 놨두고 이걸 선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작품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오를란도 핀토 파초는 바로크 오페라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다. 나도 아직 바로크 오페라를 많이 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특이하다는 인상을 받은 부분이 몇가지 있다.

일단 타이틀 롤인 오를란도가 사실상 비중이 가장 적은 역할이라는 점이다. 원래 오페라에 등장하는 오를란도 아리아가 하나 뿐이다. 물론 레치타티보의 양이 상당히 많긴 한데 마저도 대폭 줄었다. 거기다 판본에 따라 다른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초연때는 출연진중 유일하게 남자 목소리를 부르는 파트다. 모두 여자 아니면 카스트라토인데 오를란도 혼자만 테너도 아닌 베이스다. 때문에 예습으로 나이브 음반을 틀어놓고 오를란도의 아리아 하나만 유독 밖에 없었다. 타이틀 롤이 베이스인 바로크 오페라는 떠오르는게 없다.

게다가 아무리 바로크 오페라의 내용이 막장이고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유독 내용이 막장이다. 거기다 이번 공연에서는 대폭 삭제하긴 했지만 원작에서 레치타티보의 비중이 굉장히 큰편이다. 이런 점들이 현대 관객에게는 상당히 피곤하게 다가올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있다.


가수들은 상당히 훌륭했다. 바로크 오페라는 모든 가수들이 아리아를 부르니 한명한명의 실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구멍이라고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점에서 일단 만족스러웠다.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그리포네 역의 카운터테너 정시만이었다. 아주 맑고 또렷한 톤을 가져 놀랐다. 카운터테너 중에 약간의 공기 소리라고 해야할까, 목소리에 그런게 껴있는 사람이 많은데 정시만은 목소리 자체가 탁월했다

아무래도 같은 카운터테너로 공연을 아르질라노 역의 이동규와 비교할 밖에 없었는데 서로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정시만은 비교적 비브라토가 없는 고음악적 발성이었다면 이동규는 기본적으로 어느정도의 비브라토가 들어있는 느낌이다. 목소리 자체는 정시만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동규는 아리아에서 다카포 파트에서 화려한 기교를 정말 훌륭히 뽐냈다. 아르질라노의 아리아가 화려한 것도 있지만, 이동규는 어떻게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내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정시만은 목소리가 워낙 좋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 아주 기대되는 가수였다.

작품 이름은 오를란도가 주인공이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에르실라다. 비슷한 갯수의 아리아를 가진 아르질라노의 아리아가 삭제된 것에 비해 에르실라의 아리아는 밖에 삭제되지 않아 6곡으로 가장 많은 아리아를 소화했다. 에르실라 역의 소프라노는 바로크-고전 레퍼토리를 상당히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폭발적인 가창이라든가 화려한 기교는 아니었지만 절제된 비브라토로 깔끔한 소리를 냈으며 레치타티보 역시 가장 맛깔나게 처리해냈다. 개인적으로 제비 노래(Se garrisce la rondinella) 정제된 소리로 훌륭하게 해석해냈기에 굉장히 인상깊었다.

티그린다 역의 김선정의 활약도 빼놓을 없다. 아리아 개가 짤리고 개의 아리아를 불렀는데 유독 티그린다의 노래에서만 연출가가 여러 동작들을 요구했다. 연출가의 요구에 걸맞게 아르질라노에게 부르는 1 아리아는 석상에서 깨어난 아르질라노를 재치있게 가지고 놀았으며 2막에서 아르질라노와 오리질레에게 번갈아가며 부르는 Mio caro - traditore 아마 관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장면이었을 거다. 자체도 대비가 심해 재미있는 곡인데 김선정의 연기와 저음에서의 뚜렷한 음색 변화로 정말 살아났다.


오를란도 역의 베이스 역시 호쾌한 발성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사실 아리아보다 레치타티보가 많은 배역이라 연기도 중요한데 능청맞고 걱정없이 쾌활한 오를란도를 표현해냈다. 지휘자가 불쌍했는지 비발디 오를란도 푸리오소에 나오는 Benché nasconda 넣어줬는데, 아리아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해냈다.

오리질레는 성량이 작은 가장 흠이었다. 그리포네를 구출하며 부르는 Vedi spietato 보기 드문 피아노를 선보이며 괜찮게 소화해냈지만 박력 넘치는 Anderò, volerò, griderò에서는 급박한 느낌이나 좌중을 압도하는 느낌이 없어 상당히 아쉬웠다

브란디마르테는 소프라노나 카운터테너가 아닌 테너가 맡았는데, 조금 불안했다. 내가 소프라노 버전에 익숙한 것도 있겠지만 아리아부터 빠른 패시지에서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다.


반주를 맡은 카메라타 안티쿠아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소리를 들려줬다. 국내 시대연주단체가 오페라 반주를 해낼 있을지 걱정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시대연주의 음색을 느낄 수 있었다. 엘지아트센터가 예당 오페라하우스보다 작다는 이점도 있고, 내가 1 앞쪽에서 들은 것도 있겠지만 예당에서 들은 오브리 오케들에 비해 훨씬 괜찮은 퀄리티였다. 오페라 반주에서 포르티시모 느낌이 나는 포르티시모를 들은게 얼마만인가 싶다. 다만 리코더나 호른의 음정은 쉽게 해결할 없는 고질적인 문제로 보인다. 호른은 박자마저 늦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 악장, 첼로 수석, 테오르보가 외국인이었는데 정말 캐리해줬다. 중간 발레 장면에서 바이올린 협주곡도 나오고 에르실라 아리아 반주에도 솔로가 나오고 서곡에도 솔로가 나오고 여하튼 악장 솔로가 많은 오페라인데 음정이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이정도면 매우 만족스러웠다.


걱정했던 지휘자는 걱정했던것 만큼 아주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나 좋았다. 가수의 템포에 못따라가 듣기 끔찍한 장면이 상당히 자주 나왔다. 어려운 패시지가 많다보니까 가수들의 템포가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를 전혀 쫓아가지 못했다. 사실 쫓아가려는 의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많은 레치타티보 세코도 콘티누오 주자들이 알아서 해서 지휘도 필요 없던데 아리아 반주라도 제대로 해주지. 그래도 전반적으로 관현악만 나오는 파트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할지 의도는 가지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다만 훌륭한 바로크 지휘자들이 보여주는 변화무쌍함이나 짜릿한 스릴 같은 기대할 없었다 참고로 서곡은 rv 574 썼다. 처음에 음반으로 들은 곡이랑 다른 곡이 나와서 당황했다.



이제 연출 이야기가 남았다.이번 연출에는 이야기가 복잡할 정도로 많다

일단 리브레토를 부터 이야기해야겠다. 국오 측에서 리브레토를 홈페이지에 업로드 해주었기에 ( 점은 정말 칭찬하고 싶다) 어떤 부분을 삭제했는지 쉽게 확인할 있었다참고로 원래 3 오페라인데 그냥 2 중간에 잘라서 1 2부로 나눠놨다. 공연이 7 30분에 시작했는데도 10 40 쯤에 끝난걸 생각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내가 일일히 거론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장면과 대사가 삭제됐다. 일단 내가 찾은 아리아 삭제는 아래와 같다.


1 9 아르질라노 Il destin che mi sovrasta
2 11 오리질레 Se sempre a mio piacer
3 3 그리포네 il dì senza splendor
3 4 티그린다 Vesrai leone audace
3 5 아르질라노 Nascesti sospirando
3 7 에르실라 Sperai la pace
3 8 브란디마르테 L’inganno istesso


여기에 순서가 바뀐 것만 해도 6곡이다. 아예 장면 자체의 순서가 바뀐 것도 있다. 오리질레가 그리포네를 구출하는 것이 먼저인데 티그린다가 아르질라노에게 복수를 부탁하는 것이 앞으로 당겨졌다.

레치타티보를 대폭 삭제하면서 아예 오페라의 러브라인까지 손봤다. 원래 리브레토에서 에르실라가 사랑에 빠지는 오를란도가 아니라 브란디마르테다. 하지만 연출가는 레치타티보를 교묘히 바꿔서 에르실라가 오를란도를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또한 오를란도가 오리질레에게 과거에 버림받은적이 있다는 아주 레치타티보를 통째로 삭제하여 둘의 관계도 청산해버린다사소한거지만 에르실라가 남장한 오리질레(오르다우로)에게도 반해서 아르질라노를 풀어주는 대목에 대놓고 오리질레를 유혹하는데 역시 삭제됐다 우스운 국오 측에서 준비한 러브라인 그래프에서는 원래 리브레토대로 에르실라가 브란디마르테와 오리질레를 사랑하고, 오를란도는 오리질레를 사랑한다고 되어있다. 객석 1 로비에 소개 배너에 스티커로 수정해논 내역이 바로 이거다.



일단 이런 수정이 과연 효과적인가? 지휘자가 글에는 플롯이 좀더 명확하고 이해가 되게 바꾸었다고 한다.


사실 오를란도가 오리질레를 사랑했었던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에르실라가 남장한 오리질레에게 반한다는 역시 그다지 차이가 아니다중요한건 에르실라가 사랑하는 존재가 브란디마르테가 아니라 오를란도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에르실라가 원수와 사랑에 빠진다는 좀더 일반적인 막장 플롯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쉽다는 점은 좋다그리고 1막에서 브란디마르테가 오를란도와 퇴장하려는 역시 바뀐 플롯에서도 그럴싸하게 작용한다.

제일 차이는 3막에서 안젤리카를 만나는 장면이다. 원래는 오를란도가 너무 슬퍼하는 바람에 들킬 하지만, 브란디마르테가 오를란도에게 미친놈아 자꾸 내이름이랑 연인 이름을 뺏어가냐면서 자기가 오를란도라고 고백한다. 에르실라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오를란도라고 칭하면 에르실라가 딜레마에 걸릴 거라는 계산하고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에르실라가 오를란도를 좋아한다고 설정해버리니, 여기서 브란디마르테가 오를란도에게 미친놈아 정신차려!, 오를란도는 그래 내가 실성했네 라고 하는 것이 에르실라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는 무쓸모 연극이된다. 둘이 미친놈아!’ ‘ 그래 미친놈이었지하는데 에르실라는 그냥 아무신경도 안쓰고 사랑이 오를란도였다니…’ 되는 거다. 차라리 대사까지 삭제했으면 좋았으련만, 작품 제목이 가짜 미치광이 오를란도이기에 오를란도가 미친 척을 하는 장면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장면이 정말 우습게 처리된 점이 상당히 아쉽다.

아리아의 순서를 바꾼 생각보다 크게 티가 나진 않는다. 대신 레치타티보의 삭제로 뜬금없는 부분이 생겼다. 그리포네가 발각되는 장면인데, 원래 아르질라노가 에르실라에게 레오딜라(그리포네) 실체를 말해줘서 알게된다. 대사를 잘랐기 때문에 에르실라가 뜬금없이 그리포네의 가발을 벗겨 발각하는 걸로 처리했다. 원래도 그렇게 개연성 있는 부분은 아니라 문제는 아니다.

외에 1막에서 오를란도가 에르실라를 만나는 장면에서 합창도 수정했다. 오를란도가 입장하면 합창이 Nel ricetto del diletto 부르고, 에르실라가 오를란도를 잠재우기 위해 노래를 시키면 소프라노 파트가 Face e dardo 부르고 뒤이어 앞서 나온 Nel ricetto 다시 부른다. 그런데 나오는 소프라노 합창부분을 아예 삭제해서, 잠들라고 부르는 노래가 오를란도가 처음 들어서며 듣는 노래와 똑같아졌다. 극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기에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갸웃할만한 부분이었다




좋은 점을 뽑아보자. 공연을 보기 연출가의 무대노트를 읽었는데, 바로크를 시계와 톱니바퀴의 세상으로 바라보고 플롯의 개연성보다는 만화경 같은 다채로움에 초점을 맞췄다는 보고 어느 정도 기대를 했다. 바로크의 시대상과 바로크 오페라의 특징을 이해하고 있는 하다.

곳곳에 개그 포인트를 넣은 역시 좋다. 오리질레가 그리포네를 구출하기 위해 칼을 들고가는 장면에서 첼로가 죠스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센스있었다. 오를란도가 황금 가지를 뽑는 장면, 앞서 언급한 티그린다의 mio caro - traditore 아리아 역시 유머러스했다.

그리고 김주원의 발레. 안젤리카를 소환하고 나서 김주원이 안젤리카로 등장한다.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rv583 2악장을 배경음악으로 발레를 선보이는데, 꽃잎 안에서 추는 거라 거의 한자리에 서서 동작을 선보인다. 김주원이 인터뷰에서 자기가 여태까지 공연 중에서 가장 작은 공간에서 춤을 추는 거라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더라. 원래 그랑 오페라에서 형식상 발레 넣는거 싫어하지만 이번에는 흐름상으로도 어울리고 음악도 정말 아름다워 아주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동작을 너무 제한했고 안무가 특별한 점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럴 거면 김주원을 쓸 필요가 없었다는 데 동의 한다.



사실 좋은 점은 여기까지다. 컨셉의 글은 그럴 한데, 컨셉을 효과적으로 실현해내지 못했다.


바로크 오페라 연출은 다른 오페라 연출 보다 훨씬 까다롭다. 일단 플롯이 대부분 우습고, 극이 정지하는 아리아가 너무 많고 긴데다가 반복이 아주 많은 다카포 형식이다. 다카포로 다시 부른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몇단어 안되는 문장들의 조합이 끝없이 반복되는 형식이다.   그래서 훌륭한 바로크 오페라 연출을 하려면 두가지를 만족해야한다. 첫째는 플롯을 얼마나 바보처럼 만들어내는가, 두번째는 각각의 다카포 아리아의 의미를 어떻게 살려내고 반복에서 색채를 더하느냐다.


안타깝게도 이번 공연은 첫번째 요소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두번째 요소는 끔찍한 수준이었다

첫번째 요소에 관해서는, 언급했던 처럼 연출가가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에르실라가 반한 대상이 브란디마르테가 아니라 오를란도라는 점은 오를란도와 에르실라의 대립을 좀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아르질라노를 에르실라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골렘과 같은 존재라는 컨셉도 나쁘지 않다. 그리포네가 여자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바보스러움이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그걸 너무 강조하려다보니 처음에 아르질라노가 에르실라를 연모한다는 대사도 잘라먹고, 마지막에 오를란도가 에르실라를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아르질라노의 이전 아리아를 가져다와서 써먹기에 극의 흐름이 어색하다.

하지만 에르실라의 세계를 시계와 톱니바퀴로 묘사한 크게봤을 효과가 없다. 에르실라가 아름답게 세공된 알에서 나오는 역시 전체 플롯을 바보처럼 만드는데 기여하진 못한다.



두번째로 과연 연출이 음악적이었냐라는 부분에선 정말 낮은 점수를 밖에 없다. 먼저 가사와 연출이 상반되는 부분이 있다. 티그린다의 첫번째 아리아인 Son due venti infesti 사랑의 희망과 두려움의 독이 마음을 움직이는 두개의 바람(due venti)라고 말한다. 아리아 전에 나오는 티그린다의 레치타티보는 아르질라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할까 고민하는 내용이다. 실제로도 고백하는 아니라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장면에서 연출가는 티그린다가 깨어난 아르질라노를 자기 마음껏 가지고 노는 하게 표현한다. 티그린다의 행동에는 어디에도 두려움의 독이 나타나질 않는다.


거기다가 오를란도에게 추가로 넣어준 Benché nasconda 위치는 너무 이상하다. 연인을 배신한 인간이 뱀보다 무섭다는 내용인데, 상황과 전혀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원래 대목에 나온 오를란도가 오리질레에게 배신당하는 이야기를 담은 레치차티보가 있었으면 말이 되었을 테다. 하지만 이걸 통째로 삭제해냈기 때문에 아리아만 따로 놀고 있다.


사실 이런 사소한 편이다. 가장 심각한 카포 아리아가 진행되는 내내 무대에서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진짜로 거의 아무일도. 간혹 있는 일도 노래와 전혀 상관 없다. 예를 들어 오페라 처음에 등장하는 브란디마르테의 노래 오리질레와 그리포네가 입구를 찾아 헤매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그나마 조금 인상적인 그리포네가 에르실라에게 발각당해 고통받을 부르는 노래인데에르실라의 부하들이 그리포네의 사지를 사슬로 묶어 잡아당긴다. 문제는 장면이 아리아 내내 유지되기만 한다는 점이다. 다카포의 A-B-A에서 B에서는 무릎꿇고 부르고 A에서는 탁자를 엎어서 부른다는 아주 사소한 변화만 있지, 도통 달라지지 않는다.



거기다 2부에 가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대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진짜 그냥 시계모양의 프로시니엄 장식 빼곤 아무것도 없는 무대에서 부른다. 에르실라의 제비노래나 아르질라노의 조롱당한 사랑이 그렇다. 오리질레가 그리포네를 구출하며 부르는 아리아는 그나마 조명효과라도 넣어주지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같은 자세로 노래한다 잔잔한 아리아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오를란도의 유일한 아리아 Non paventa giammai 처음에 자기를 체포한 병사를 쓰러뜨린 뒤로는 그냥 무대를 왔다갔다하면서 혼자 노래할 뿐이다.이런 식으로 나열하면 정말 대부분의 아리아를 있을 거다

다카포 아리아 B파트에서 가사가 달라지면 그에 맞게 가수들의 동작도 달라져야 자연스럽다. 그리고 A 다시 반복이 되면 같은 반복하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반복할 화려한 꾸밈음을 집어넣는 처럼 연출 역시 변화를 주는게 당연한 거다. 이건 좋은 바로크 오페라 연출의 기본이다.

노래 가사의 은유적인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경우도 없다오리질레의 노래 Anderò, volerò, griderò 오리질레가 에르실라의 병사들과 싸우며 부르는 노래로 표현했는데가사 내용은 전혀 상관없다노래가 박력 넘치고 전투적이긴 하지만위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원래 가사의 긴장감은 공허하게 사라진다.

이런 식의 연출은 연출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바로크 오페라는 거의 아리아를 위해 존재하는 아리아를 부를 어떠한 연출 효과도 없다는 아주 심각한 문제다. 내가 리브레토를 보며 음반을 들었을 때에 비해 공연으로 보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거의 전무했다. 가수들한테 아무 아이디어도 안주고 그냥 상황에 맞게 알아서 연기하세요라고 하는 처럼 보인다. 그나마 동작을 세세하게 지시한건 티그린다의 노래 뿐이었다. 만화경을 보는 처럼 다채로운 장면을 표현하겠다던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무대 조명과 의상의 색감 역시 취향은 아니었다. 원색이 많고 정신없이 화려했다. 화려함은 바로크의 중요한 시대적 특징이지만 그렇다고 정통 바로크적 화려함은 아니고.. 특히 브란디마르테, 오리질레, 그리포네 삼인방의 옷은 표현하는 건지 알기 어렵게 난해했다.

무대는 전면부 프로시니엄에 모든 걸고 뒷면은 완전히 공허하게 놔뒀다. 에르실라 세계의 특징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고자 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느낌이었다. 이미 기사가 나서 많이들 들었겠지만 무대벽을 전환하는 와중에 태엽이 벽에 끼어서 안들어가는가 싶더니 기어이 떨어져버렸다. 그걸로 까고 싶은 마음은 없고, 공돌이로서 만든 사람 쿠사리 먹을 안쓰러웠다



결국 해외 연출가 데려와봤자 별거 없다!라는 국오가 증명해준 싶지만, 애초에 연출가를 데려온 것부터가 에러였다고 주장하고 싶다. 파비오 체레사의 이력을 보면 지금까지 맡은 오페라가 나비부인, 오르페오, 조반나 다르코, 토스카, 청교도, 이탈리아의 알제리 여인, 트라비아타, 트리티코 정도다. 애초에 바로크 오페라를 한번도 안해본 거다. 참고로 프로필에 나온 오르페오는 몬테베르디가 아니라 현대 오페라다. 애초에 몬테베르디 오르페오도 바로크 오페라와 아주 다른 종류지만. 연출가가 다른 오페라에서는 어떤 재능을 발휘했는지 모르겠지만 바로크는 정말 아니다


무대 조명 스타일도 그렇고 루살카와 비슷한 점이 보여 김학민 감독이 또 연출에 입김을 넣었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음악적으로 정도면 바로크 오페라 도전 치고 나름 괜찮았지만 연출은 별로였다. 흥행 망할 알았는데 의외로 관객도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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