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썼어야 하는 후기인데, 갤에다가만 올리고 블로그엔 올리지 않았다. 


기대했던 대로 프란체스코 멜리 혼자 다른 클래스를 보여준 공연이었다. 


반주를 맡은 코리아 쿱 오케였는데 들쑥날쑥한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몇년 전 생활협동 조합의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다는 사실에 나름 기대를 하긴 했었다. 연주자들이 연주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우리 사회에 정착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여기저기 기업 음악회나 하는 삼류 오케스트라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오페라 반주쪽으로는 확실히 실적을 올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실제 연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일단 그 얇은 포르티시모는 한국 오페아 반주 오케의 대표적인 단점으로 1막 2장 전주의 코드는 들어주기 가여울 정도였다. 코드 하나를 내도 사람을 두렵게 만들어야 하는 게 베르디 음악이건만 오히려 정 반대다. 오케가 분위기를 못만드니 진짜 천둥 소리를 넣어서 처리하더라. 오보에 수석은 첫 전주곡 솔로부터 흔들렸는데 실수인지 지휘자의 지시인지 프레이징을 맺는 것도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2막 전주곡에서 플룻 솔로는 상당히 빛났다. 아마 작품 내내 유일하게 등장한 오페라다운 프레이징과 비브라토였다. 전체적으로 세로줄과 음정만 맞추는 걸 목표로 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앙상블이 훌륭했냐면 역시 아니다. 바이올린 음정이 갈라지고 1막 1장 끝부분이었나는 트롬본이 무너지는 등 불안한 장면이 많았다. 그래도 3막 투티에서는 전반적으로 표현이 살아난 편이었다. 

3막 무도회 반다는 오케스트라 피트의 한쪽 구석에서 연주했는데, 무슨 군악대 마냥 짧은 음가와 기계적인 박자로 연주했다. 음색 역시 정돈되지 않고 상당히 거칠어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었다. 하긴 여기서 그로테스크함을 전달하면 성공적인건가. 여기에 무도회 장면 현악기 앙상블 역시 부드러움은 내던지고 아주 딱딱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음정 박자 안틀리는데만 모든 신경을 다쓴 듯 로봇인냥 연주했다. 그렇다고 물론 음정이 안틀린건 아니라는 게 더 안타까운 일이다.

합창을 맡은 위너오페라합창단은 그냥 오브리 단체인가 싶었지만 기대보다 잘해줌. 첫 등장 때는 흔들리는 게 보였지만 나중에는 오케와 달리 시원시원한 음량으로 내질러 주었기에 어느정도 듣는 맛이 있었다.


성악진 중에는 단연 리카르도 역의 멜리가 빛났다. 애초에 공연을 예매한 이유가 오직 멜리 하나뿐이었다. 2014 잘츠 트로바토레에서 워낙 인상깊었는데 이번 공연도 감탄 그 자체였다. 4층에서 들어도 전혀 아쉽지 않은 성량과 단단한 목소리, 명확한 딕션, 거기에 관객을 사로잡는 프레이징까지 어느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게 없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1막 2장에서 울리카에게 예언을 부탁하는 노래였는데, 이게 2절에서 le dolci canzoni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나올 때 1절과 다르게 정말로 부드럽고 달콤하게 불러서 진짜 dolci canzoni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오페라 극장 안의 시간이 멈춘 듯한 마법같은 순간이었다. 목소리가 진지한 편이라 리카르도의 가벼운 모습을 표현하는 데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지만 3막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은 역시 최고였다. 2011년 영상물 때보다도 완급조절을 훨씬 자연스럽게 가져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멜리아에는 원래 외국인 가수가 캐스팅 되었는데 건강 문제인지 b팀 임세경이 대신 나왔다. 어차피 이번애 보고 다시 못볼 것 같은 외국인 가수보다 임세경이 더 궁금했기에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었다. 사실 오전에 캐스팅 변경 문자를 받았을 때 혹시 멜리가 취소된건 아닌가 덜컥 걱정했다. 임세경은 일단 굉장히 훌류한 성량을 가진 가수다. 멜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오페라 가수라는 게 실연에선 일단 성량크면 8할은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하기에 이 점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대신 비브라토가 큰 편이고 딕션을 약간 뭉개는 느낌이었다. 내가 가사를 아는 대목에서도 저게 무슨 모음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전반적으로 자음이 너무 안들리기도 했다. 같이 부른 멜리의 발음이 말도 안되게 정확했기에 더욱 비교되는 것도 있었을 테다. 그래도 압도적인 성량을 이용해 아리아 두곡을 절절하게 잘 불러줬다. 간혹 나오는 저음은 힘이 실려있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아멜리아보다 악역을 맡으면 더 기대될 것 같다. 레이디 맥배스라든가. 

레나토 역을 맡은 다비드 체코니는 처음 들어봤지만 공연 경력이 화려하길래 기대했다. 그런데 소리가 너무 뜬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울림 알맹이가 없는 목소리라 굉장히 실망했다.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실망해서 기대를 버리게 만들었다. 3막 아리아를 부르고 뒤에 이어지는 장면에선 오히려 사무엘, 톰 역의 가수 발성이 더 안정적이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공연이었으면 거친 목소리로 독특한 인상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같은 공연에 멜리가 레퍼런스로 존재하기에 단점만 부각되었다.


울리카 역의 가수는 괜찮은 목소리지만 호흡이 짧았던 걸로 기억한다.  오스카의 경우 공연 영상에서 항상 잘하길래 오스카가 듣기보다 쉬운 배역인가 했지만 이번 공연을 보고 그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음정이 나가거나 템포를 못 쫓아가거나..  성량이 작은 것도 한목했다. 차라리 1막 2장 앙상블에서 혼자 고음 부르는 게 훨씬 더 안정적이고 표현도 좋았다. 콜로라투라라기 보단 그냥 가볍고 맑은 목소리의 레제로 소프라노인데, 조금 자기 능력에 어울리지 않는 역을 맡은 것 같다.



연출은 특별히 인상 깊은 점이 없었다. 원래 난 이탈리아 연출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비싼 의상을 썼다고 광고했지만 4층 관객에게 디테일은 보이지 않는다. 1막 2장과 2막의 무대 구성은 나름 괜찮았다. 3막 무도회 장면은 전체적인 동선이 매우 딱딱하고 어색했다. 역시 한국에서 합창단에게 자연스러운 동선을 요구할 순 없단 말인가. 합창단은 좌우에 서있고 그냥 무용수 몇명만 가운데서 춤을 추기에 무도회의 느낌이 전혀 살지 않았다. 거기다 오스카가 레나토를 놀리는 모습을 무대 한 가운데서 모든 이의 집중을 받는 걸로 표현한 건 내용상 부자연스러웠다. 무도회가 있어 정신없는 와중에 급한 마음의 레나토를 오스카가 놀려서 애를 태워야 하는데 그저 무도회에 오스카의 노래 순서가 기다리고 있는 인상이었다.

 마지막에 레나토가 암살하고 나서 아무도 레나토를 제지하지 않는 상황도 너무 우스웠다. 아무리 오페라에서 연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상징적인 것을 강조한 연출도 아닌데 사실성이 떨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극 전반에 걸쳐 큰 액자를 활용해 메시지를 남기려고 한 것 같지만 그럴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액자가 등장하는데, 이 사건들을 우리가 제한된 시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걸까? 울리카와 아멜리아의 복장을 같게 만든 것도 뭔가 떡밥만 던지고 회수를 안한 기분이었다.

1만원 짜리 프로그램에는 프로필이랑 시놉만 있고 2만원 짜리 프로그램엔 연출 노트가 있다길래 샀지만 연출 노트는 없고 작품 해설만 있어 실망스러웠다. 어차피 민간 오페라단이 아무리 해봤자 공연으로 돈 버는것 자체가 힘든 일일텐데 도와주는 셈 치고 구입했다.


지휘자는 가수에 잘 맞춰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느껴졌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에너지가 부족한 건 지휘 탓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해낸 것 같다. 

사소한 거지만 가사에 나오는 잉길테라를  스웨덴 배경일때 가사인 나의 땅(mia terra)인가로 번역했다. 보스턴 배경의 이름을 써도 잉길테라를 일부러 가사에서 빼는 경우가 있긴한데 이건 그냥 번역 판본을 다른거 가져다가 그대로 쓴게 아닐까 싶었다.



멜리가 나온다길래 큰맘 먹고 1층 좌석을 구입할까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게 다행이다. 멜리는 훌륭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다. 무엇보다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오케스트라 반주와 연출이 빈약해서는 훌륭한 연주가 나오기 힘들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차있길 원하는 게 아니다. 오케스트라와 연출이 드라마를 표현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월드 클래스 가수를 데리고 왔다는 점 만큼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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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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