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접한 20세기 후반에 작곡된 오페라 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다.


훈련소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무슨 오페라를 볼까 고민하는 건 정말 괴로운 문제였다. 새로운 오페라를 볼 차례이긴 하지만 스케줄을 계산해보니 이게 아마 훈련소 들어가기 전 마지막 오페라가 될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2015 글라인드본 후궁탈출과 바인베르크 승객을 고민하다가 바인베르크를 선택했다. 쿠렌치스를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거기다 미마존의 리뷰 역시 6개 모두 만점이길래 믿어보기로 했다.


현대 음악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내가 현대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히 현대 음악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무언가란 우리 시대만 가지고 있는 시대 정신이거나 괴로움일 것이다. 현대 음악사에서 빛나는 존재인 '바르샤바의 생존자',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 '슬픔의 노래'같은 음악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이 시대가 겪은 참상을 그 전의 음악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인베르크의 승객은 아우슈비츠를 직접 겪은 폴란드인 조피아 포스미츠Zofia Posmysz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독일인 부부가 브라질 행 유람선을 탔는데, 배에서 아우슈비츠 죄수였던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와 마주치게 된다. SS 요원으로 아우슈비츠에서 근무했던 독일인 부인은 공포에 떨며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이미 소설 자체부터 아우슈비츠를 다룬 작품 중에서 아주 훌륭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액자식 구성을 통해 단순히 피해자의 삶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자기 변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은 물론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남편에게 풀어내는가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음악은 쇼스타코비치와 비슷하지만 라이만에서 들은 독일 현대음악 같은 강렬한 음향도 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이 언어 사실성에 충실한 리브레토다. 독일인은 독일어로 말하고, 영국인은 영어로, 폴란드인은 폴란드어로 말한다. 체코어, 러시아어, 불어도 등장한다. 브리튼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외국어로서 이탈리아어 사용을 지적한 바 있는데 이 작품은 그것보다 훨씬 심하다. 서로 의사소통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중요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언어로만 노래한다.

흥미로운 건 영화에서도 유독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 이런 시도가 들어있는 영화가 많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검색해보아도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나오고,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예시도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국가의 충돌 속에서 인물이 사용하는 언어란 절대 편의를 위해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모두 머리를 깎고 비슷한 죄수복을 입은 아우슈비츠에서 언어는 곧 그의 정체성이다. 

미치스와프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 , 폴란드어 ł은 l이 아니다! e.g. 루토스와프스키) 의 오페라에서는 수많은 딕션이 서로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죄수들은 대부분 슬라브 어 (폴란드어 체코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데 불어를 사용하는 죄수가 새로들어올 때 그 느낌은 정말로 새롭다. 유대인 죄수의 독특한 독일인 억양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한다. 참고로 자막 역시 모든 가사를 원어로 보여주는 Undecided 옵션이 있다. 


이 오페라는 클라이막스에서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아우슈비츠 사령관?은 죄수 타데우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왈츠를 연주하라고 명령하며 바이올린 콘서트를 연다. 모두가 타데우스의 연주를 기다리며 침묵한 순간, 타데우스는 바흐 샤콘느를 연주한다. 오케스트라는 곧 이 무반주 파르티타에 끼어든다. 타데우스는 결국 간수들에게 제지당하며 죽는다. 샤콘느를 연주하는 장면은 정말 말도 안 되도록 극적이기 때문에 순간 연출가가 추가한 장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우슈비츠의 모든 언어가 멈춘 순간, 바흐가 시작된다니.


파운트니의 연출도 아주 훌륭하고 쿠렌치스의 깔끔하며 힘있는 반주도 뛰어나다. 뛰어난 바그너 가수 미셸 브리에트Michelle Breedt(남아공 출신이다)와 로베르토 사카Roberto Saccà 두 명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타이틀 롤 엘레나 켈레시디Elena Kelessidi 역시 훌륭하다. 이외에 모든 조역들이 자신의 노래를 절절하게 잘 표현해낸다.


첫 무대 초연을 맞아 제작한 다큐멘터리도 훌륭하다. 원작자 인터뷰는 물론 여러 제작진의 핵심적인 이야기가 있다. 부클릿엔 바인베르크에 대한 열렬한 지지글이 있는데, 누가 쓴거지 궁금해하며 읽다가 다음장을 보니 바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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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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