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렌보임의 바그너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파파노는 도대체 바렌보임한테 뭘 배운거냐.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타이틀이었다. 바렌보임의 파르지팔, 거기다 연출은 체르냐코프. 캐스팅 역시 최고의 바그너 가수들이 모였다는 말이 아쉽지 않을 정도다. 비교적 최근에 산 타이틀이니 원래 한참 나중에 봐야 맞겠지만 너무 궁금하기도 한데다가 대가님께서 친히 리뷰를 부탁하시니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연출 이야기하기가 좀 힘드니 음악적인 부분으로 시작하겠다. 바렌보임의 지휘는 탄호이저 때보다 파르지팔에서 훨씬 빛난다. 탄호이저에서는 바렌보임 특유의 압축되었다가 터져나가는 사운드가 일품이었다면 파르지팔에선 완벽한 완급조절로 극을 완성해나간다. 대사 사이의 침묵 하나하나의 길이도 관객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설계했다. 1막의 구르네만츠 설명충 장면이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들릴 줄이야. 영국의 기사작위 받은 분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바렌보임은 정말 한정된 순간에만 진정한 포르티시모를 터트려준다. 3막 구르네만츠의 세례 장면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폭발은 구르네만츠가 성창을 돌려받은 것만큼이나 관객에게 감격적인 순간이다. 파파노는 이걸 몰라요. 쿤드리와 연관된 곳곳에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클라리넷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가수진들도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없다.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고 나쁜 지휘자가 있다는 말처럼 파페나 코흐 역시 바렌보임을 만났을 때 실력이 만개한다. 파파노 지휘에 지루하게 들렸던 파페는 바렌보임의 지휘 아래에서는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전달하는 거장으로 돌변한다. 안드레아스 샤거Andreas Schager는 올해 바이로이트에서 포그트 대타로 파르지팔을 맡았던 테너인데 파르지팔 역에 안성맞춤이다. 목소리가 아주 단단한 편까진 아니지만 요즘 바그너 테너들에 비하면 준수한 편이다. 여기에 1막에서는 바보같은 모습을, 2막 O Wunde에서는 제대로 오열하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각성 전후의 대비가 중요한 파르지팔에서 이 정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건 카우프만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거기다 1막의 바보스러움은 역대 최고 수준이기에 각성 이후의 폭발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러고보니 얼굴이 살짝 지크프리트 예루살렘과 닮았다. 아 빅뱅이론 하워드랑도 좀 닮은 것 같다..
오케 반주가 구리지만, 그래도 지크프리트의 리트머스 부분이 이 정도면 상당히 훌륭하다. 썸네일 표정이 정말 바보 같은 게 파르지팔이랑 지크프리트에 딱인 듯... 목소리가 크게 단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파르지팔 1막에서 좀 더 바보처럼 보이려고 그랬던 것 같다. 비브라토 폭이 내가 싫어하는 쓰레시홀드에 근접해가는 것 같지만 문제될 정도는 아니다. 여튼 오랜만에 기대되는 바그너 테너를 발견했다.
쿤드리 역의 안야 캄페Anja Kampe는 이름을 엄청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정작 내가 본 건 취리히 화란인 밖에 없는 것 같다. 바렌보임 버프가 분명 있겠지만 캄페는 극을 시종일관 지배한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지르는 거지만 가사 한마디를 말해도 흡입력있다. 쿤드리 파트 하나하나가 이렇게 흥미롭게 다가온 게 처음인 것 같다. 적당히 무거운 목소리에 너무 내지르지 않는 절제가 매력적이다. 여기에 독일어 발음을 활용하는 능력도 최고다. 딕션이 명확한 정도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자음을 강조하여 새로운 음향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래 웬만한 재능이 아니면 페트렌코랑 연인이 되지도 못했겠지..
(수정: 생각해보니까 2014 바이로이트에서 발퀴레 지클린데로 직접 봤었다. 거기까지 가서 봐도 기억을 못하다니 나란 놈 멍청한 인간 ㅉㅉ)
클링조르 역의 토마스 토마손Tómas Tómasson도 걸출한 연기력과 진득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연출이 캐릭터를 상당히 색다르게 바꿔놓았는데도 성악적으로 딸리지 않으니 독특한 매력이 생겼다.
자 그럼 연출 이야기를 해보자. 여러모로 체르냐코프의 냄새가 많이 나는 연출이다. 마법적인 일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실제 사실 처럼 다뤄진다. 자신이 살짝 틀어놓은 시놉시스를 미리 텍스트로 프로젝션 하는 것 역시 체르냐코프가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성배 기사단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영생을 바란다. 성배 의식은 다름 아닌 암포르타스의 상처에서 나온 피를 성배에 담아 나눠 마시는 것이다. 랑그리지의 연출에서도 언급했 듯, 파르지팔이 동정해야할 대상은 성배기사단 사이에선 동정받지 못하는 존재여야 좀더 이야기에 어울린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왜 파르지팔만 동정심을 가지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랑그리지나 체르냐코프나 성배기사단을 남의 고통을 통해 영생을 얻는 존재로 묘사한다. 차이가 있다면 랑그리지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고 체르냐코프는 암포르타스가 고통받는 주체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체르냐코프의 방식이 설득력있는 건 암포르타스가 괴로운게 너무나 눈에 선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랑그리지 연출에서 암포르타스가 아픈 걸 강조하려고 별의별 쇼를 다한 것에 비하면 체르냐코프의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체르냐코프의 선택에도 문제가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암포르타스가 다치기 전에는 성배 의식을 어떻게 진행했냐는 것이다. 그때도 셀프 상처를 내나? 여튼 이렇게 암포르타스는 대놓고 예수가 된다.
1막 공간이동 역시 사뿐히 무시해주는 것 역시 체르냐코프 답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괜한 무리수를 안두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구르네만츠의 설명충 장면에서 강의하듯 스크린을 걸어놓고 사진 영사기를 이용한다. 무대에 스크린과 프로젝션을 이용하는 건 이렇게 하는 겁니다 국립오페라단 분들.
2막은 1막의 공간과 같은데 색상만 바꿔놓았다. 클링조르는 불안증세에 걸린 보육원 원장 같은 느낌이다. 쿤드리에게도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반대로 클링조르가 쿤드리 눈치를 본다. 클링조르가 바보가 되면서 쿤드리가 더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쿤드리의 행동이 딱히 클링조르에게 조종당해서 이뤄지는 것 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체르냐코프는 가장 난해할 수 있는 2막의 파르지팔-쿤드리 장면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다.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 뒤에선 파르지팔과 헤르첼라이데를 나타내는 배우들이 마임을 한다. 파르지팔이 젊은 여자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낄 때 헤르첼라이데가 개입해서 여자를 쫓아내버린다. 그리고 화가 난 파르지팔이 어머니를 버리고 뛰쳐나오는데, 이는 곧 파르지팔이 느끼는 성욕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쿤드리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쿤드리의 행동은 클링조르의 마법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행동이다. 암포르타스를 유혹하고 그 때문에 암포르타스가 파멸한 것에서 쿤드리는 죄책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죄책감이라는 게 맞을까.. 1막에서 성배 의식이 끝나고 암포르타스의 피묻은 옷을 챙겨가는 건 순전히 남자를 파멸시키고 싶은 팜므파탈 적인 욕망에서 한 행동일까? 아니면 암포르타스(예수)에 대한 집착?
그런 두명이 서로를 갈구하는데, 클링조르의 마법이 사라졌기에 둘의 관계는 자유 연애와 비슷해진다. 그렇게 쿤드리는 파르지팔을 유혹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곤 체르냐코프의 재치있는 아이디어가 등장하는데, 파르지팔이 각성하기 전에 잠깐 있는 오케스트라 간주 파트에서 둘이 아예 손잡고 퇴장하고 무대를 암전시키는 것이다. 잤네 잤어.
그리곤 파르지팔이 뛰쳐나오며 각성한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파르지팔이 키스 한번으로, 혹은 섹스 한번으로 암포르타스의 고통을 이해하는 지 미스테리라고 생각하는데, 마술적 힘이 없어진 이 연출에선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까 현자타임 발동한 것 같기도..? 여자에 대한 온갖 환상을 품고 있다가 첫날밤을 보내고 나서 현타가 와서 어머니에 대한 근원적인 죄책감 + 암포르타스를 구해야한다는 임무의식이 제대로 발현된 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쿤드리는 파르지팔에게 버림받는다.
3막은 1막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점은 별로 없는데 유독 쿤드리와 파르지팔의 관계가 중요하게 잡힌다. 이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쿤드리와 파르지팔 둘의 인간적인 연애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구르네만츠가 뒤에서 온갖 홀리홀리한 이야기를 해도 둘은 연애질 하고 있는 눈빛이다.
가장 큰 반전은 모든 가사가 끝나고 난 마지막 장면이다. 나름 연출가가 노린 반전이라 자세히 묘사하진 않겠다. 구르네만츠의 행동은 마치 성배기사단의 오욕, 흑역사를 없애려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예수가 막달레나랑 잤다는 다빈치 코드 이야기를 어떻게든 숨기려는 기독교인 같은 모습이랄까. 쿤드리와 암포르타스의 관계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성창의 귀환은 성의 해방을 의미할까? 쿤드리와 암포르타스는 마지막 순간 모든 구속에서 해방된다. 성창이 성배로 돌아온 것에서 남녀의 결합을 읽어내는 경우는 많지만, 이처럼 단말마로 끝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 것이다.
나중에 한 번쯤 더 봐야겠지만, 체르냐코프는 악보에서 자신이 침투할 수 있는 순간을 귀신같이 포착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체르냐코프 답게 상당히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연출이지만 흡입력있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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