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와 브로드웨이의 차이점은 뭘까?


발매 당시에는 표지에 박힌 르네 플레밍을 보고 제꼈었다. 그런데 드레스덴에서 미망인을 보게 돼서 이 타이틀을 예습용으로 구매했다. 


유쾌한 미망인을 자국어로 옮겨서 하는 것은 꽤 흔한 일인 듯 하다. 영상물로 나온 것 중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나 리옹 오페라 공연이 자국어로 번안해서 공연했다. 이 공연 역시 영어 버전이다.


부클릿의 글은 레하르의 '금과 은' 왈츠에 비유해서 <박쥐>가 오페레타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면 <유쾌한 미망인>은 Silver Age를 열었다고 비유한다. 20세기 초 헝가리 라이벌 칼만과 레하르가 만든 오페레타는 요한 슈트라우스와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무엇보다 바그너적으로 풍성하며 로맨틱한 선율이 들어갔다는 것을 빼먹지 말아야 한다. 이런 면모를 잘 살린 것이 카우프만이 녹음한 금세기 최고의 명반이라 할 수 있는 "Du bist die Welt für mich"다.

내용 역시 박쥐나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에 비하면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간결하여 요즘 대중들에게 더 어필하기 쉬운 구조이다. 주인공 커플은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츤데레다. 


메트는 역시나 영리하다. 돈을 벌 수 있는 작품에서는 확실하게 돈을 챙길 생각인 것 같다. 미국에서 여신 대우 받는 르네 플레밍이 타이틀 롤을 맡았고 브로드웨이의 스타 켈리 오하라Kelly O'Hara 가 발렝시엔느를 맡았다. 켈리 오하라가 뮤지컬 계에서 어느 정도 유명한지 잘 모르겠지만 토니상 노미네이션 6회에 1회 수상이면 상당한 커리어의 뮤지컬 배우인 것 같다.  다닐로 역에는 클래식 뮤지컬도 종종 맡는 미국인 바리톤 네이슨 건Nathan Gunn이 나온다. 여기에 연출 역시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안무가를 불렀다. 브로드웨이 팬들에게 '메트에서 유사 뮤지컬 하니까 관심 좀 가져주세요!!!'라고 외치는 듯 하다. 이외에 영국의 전설적인 바리톤 토마스 앨런Thomas Allen도 연금 역할로 딱인 제타 남작으로 등장한다. 


연출은 브로드웨이 안무가 수잔 스트로만Susan Stroman이 맡았다. 덕분인지 춤이 촌스럽진 않다. 3막의 쇼걸들이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다리 찢기를 포함해 상당히 어려운 안무를 넣었는데 다들 뮤지컬 배우들이라 노래하면서도 곧잘 소화해내더라. 그런데 의상은 좀 촌스럽게 느껴지는 게 몇 있었다.

르네 플레밍은 메트 무대에 서면 머리 위에 후광이라도 생기나보다. 무대에 한나로 분장한 플레밍이 입장하니 관객들이 연주 중에도 박수를 친다. 뭐 무대가 예뻐서 박수를 치면 무대 만드느라 고생한 디자이너에 대한 찬사라고 치지만, 플레밍이 입장 하나 했다고 박수 치는 건 "캔슬 안 하고 저희 눈 앞에 용체를 드러내주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도 되는걸까. 몇십년만의 내한 공연 이런 것도 아니고, 뉴욕 사람들은 플레밍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거 아니었나?!

플레밍은 안정적으로 소리를 쭉 뽑아낼 수 있는 가수지만 그래봤자 결국 목소리가 플레밍이다. 노래를 잘 하는데 굳이 듣고싶은 마음은 안 생기는 신기한 경험. 마샬린이나 아라벨라 같은 역할을 많이 해서인지 콧대 높은 여인의 모습이 몸에 베어있어 연기는 자연스러운 편이다.

네이슨 건은 러셀 크로우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바리톤이다. 이름이 익숙하다 했는데 하일트 님이 몸 좋은 바리톤 소개하는 글에 나왔더라. 무난하게 연기도 잘하고 목소리도 나름 괜찮다. 그런데 프레이징을 느끼하게 처리하는 게 플레밍이랑 좀 닮았다. 목소리에 비해 노래를 건강하게 내는 편은 아니다.


생각난 김에 다른 가수들과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볼륨주의)

그만 알아보자.


이 공연에선 옷을 칭칭 감아서 티가 안 나지만, 괜히 몸좋은 바리톤으로 소개된 게 아니더라.

유튭에서 찾아보다가 찾은 영상. 아니 왜 오페라에서 300을 찍고 있는거죠.... 


켈리 오하라는 생각보다 노래를 잘 한다. 뮤배인지 모르고 봤다면 별 생각 없이 봤을 정도로 뮤배인지 티가 안난다. 그냥 발성이 두텁지 않은 가수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옆에 있는 가수들이라고 딱히 대단하지 않아서라는 점도 작용했다.  근데 너무 비주얼이나 연기도 뮤지컬 배우 티가 안 나는 게 문제. 대사 처리를 좀 더 열심히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저 정도 하는 오페라 가수들 충분히 많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따. 상대역으로 나오는 알렉 슈레더Alek Shrader는 연기는 밋밋하지만 노래는 제 역할을 해준다. 


앤드류 데이비스의 지휘는 조금 심심한 편이다. 몸서리 쳐질 정도로 달콤하다든가 능청맞게 느끼하다든가라는 느낌이 부족하고 그냥 전반적으로 가볍게 흘러간다. 


영어 자막이 있긴 한데 대사 부분에는 자막이 전혀 안 나오고 노래 부분에만 나온다. 그나마 한번 본 작품이라 내용이 익숙해서 다행이었지 안 그러면 꼼짝 없이 리스닝 테스트할 뻔. 이런 게 바로 영어패권주의 아닙니까 ㅂㄷㅂㄷ


브로드웨이를 노려본 프로덕션이지만 뮤지컬 팬들에게 얼마나 어필했을 지는 모르겠다. 별 생각 없이 편하게 보기에는 괜찮은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 공연보단 더 완성도가 높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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