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필하모닉, 지휘 임헌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박쥐 서곡
바버 -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 : 사라 장)
(앵콜 : 카를로스 가르델 - 포르 우나 카베자)
베를리오즈 - 환상 교향곡
(앵콜 : 요제프 스트라우스 - 걱정없이 폴카
멘델스존 - 봄노래)
1988년 개관한 예술의 전당은 올해로 개관 25주년을 맞았다. 그래서 기획된 시리즈 중 하나가 코리안 월드 스타 시리즈로 사라 장, 신영옥, 장한나, 조수미 씨가 출연한다. 이 중 장한나는 첼로가 아니라 지휘자로서 출연하는데, 예당에서는 첫 공연이다.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네 명의 스타들이지만 이들의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티켓 값이 비싸다보니 선뜻 가지 못했는데 싹틔우미 할인이 50%여서 이번 기회에 사라 장과 장한나를 보기로 결심했다.
프로그램은 대중적인 서곡과 교향곡에 독특한 협주곡이 끼어있는 형태였다. 사라 장이 바버의 협주곡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환상교향곡은 저번 1월 25일에 부천에서 이미 같은 지휘자와 악단이 연주한 곡이므로 어느 정도 기대가 되었다.
내가 부천필과 임헌정 지휘자의 공연을 보는 건 상당히 오랜만인데, 기억을 되짚어보면 아마 08년에 교향악축제 차라투스트라, 말러 4번, 브루크너 6번을 보지 않았나 싶다. 그 이후로는 본 기억이 없으니 참 오랜만에 보는 임헌정 부천필이었다. 그 당시에 KBS 교향악단은 단원이 모자라 대편성 프로그램을 취소하는 실정이었고 서울시향은 베토벤 브람스를 끝내고 한창 성장 중이던 때였으니 부천필은 비교적 상당히 뛰어나고 안정된 악단이었다. 그 이후로는 구자범 지휘자님이나 최희준 지휘자 등이 국내 활동을 시작하며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서울시향은 국내 굴지의 최고 악단이 되고 수원시향 등도 안정적인 발전을 하였으니 부천필의 높았던 위상도 조금 평범해지지 않았나 싶다. 임헌정 지휘자의 건강 악화로 브루크너 사이클 공연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부천시의회와 사이가 악화되면서 올해에는 예산 삭감 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렇게 우울할 것만 같은 25주년을 맞은 부천필이 예술의 전당 개관 25주년을 축하하며 자신들도 함께 자축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다행이었을 것이다. 이런 축하 분위기에 어울리는 박쥐 서곡으로 공연을 시작했는데 임헌정 지휘자의 노련함과 부천필의 안정적인 앙상블이 돋 보였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현악기의 빠른 패시지들도 능숙하게 연주했으며 목관악기의 솔로도 훌륭했다. 특히 로잘린데가 부르는 삼중창의 멜로디를 부를 때의 오보에의 프레이징이 빼어났는데, 음색은 살짝 이상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왈츠 파트는 완전한 빈 왈츠 형태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역동적이었다. 마침 1부가 시작하기 바로 전에 최희준 지휘자가 2층 객석에 들어가는 걸 보아서인지 작년 12월에 본 최희준 지휘자와 코리안 심포니의 박쥐 연주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악기의 인원도 두 배 이상 차이날 듯한 편성이었으니 이걸로 두 연주를 비교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이어서 바버의 협주곡이 연주됐다. 사라 장은 문자 그대로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는데 연주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퇴장할 때 까지 하이라이트 조명이 따라다녔다. 1악장과 2악장에서의 부드러운 선율미와 3악장의 기교가 적절히 어우러진 연주였다. 아쉽게도 바이올린의 소리는 생각했던 것 만큼 크지는 않았고 익숙한 곡이 아니다보니 흐트러짐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주한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2부에 연주된 환상교향곡은 부천필의 안정된 앙상블을 기대해볼 만한 작품이었다. 아마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작품 중 단연코 가장 난해하며 연주가 까다로운 곡이 아닐까 싶다. 섬세함과 광폭함을 함께 지니고 있는 1악장은 특히나 느낌을 살리기 어려운데 부천필의 연주도 아쉬움이 남을 밖에 없었다. 앙상블은 잘 흔들리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다이나믹 변화가 시원하지 못했다. 2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왈츠의 선율미는 유려하게 잘 살려냈지만 강렬한 투티가 아쉬웠다. 3악장은 목관 솔로가 잘 리드하면서 상당히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4,5악장에서는 앞서 보여준 정돈된 앙상블에 금관의 폭발적인 연주가 더해지면서 성공적인 연주로 끝마칠 수 있었다. 특히 4악장 끝 솔로와 5악장 도입부의 Eb클라리넷 솔로를 맡은 클라 수석의 연주가 매우 빼어났다.
부천필의 안정적인 연주력은 역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금관진의 소리도 잘 다듬어져있었고 목관 솔로들의 실력도 발군인데다 현들도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앙상블을 보여줬다. 두 곡의 앵콜에서도 이런 안정적인 연주력이 돋보였고 특히 봄노래에서는 임헌정 지휘자와 부천필 현악군의 조합이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빚어냈다.
서곡과 협주곡 사이, 인터미션 후 교향곡이 연주되기 전 어느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예술의 전당 개관 25주년을 맞은 행사 진행이 있었다. 사회는 아나운서에게 맡긴 것 치고는 말이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이 몇 군데 있어 아쉬웠는데, 너무 길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의미 전달을 잘 하지 않았나 싶다. 25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의 인사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는 영상도 있었는데, 88년생 피아니스트 김선욱 씨나 일본 도쿄의 신국립극장 관장의 인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개관 25주년 기념공연 덕택에 부천필의 25주년도 함께 축하받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다. 시의회에서 생일상을 뒤집어 엎어버린 후 임헌정 지휘의 몇개 공연을 제외하곤 모두 취소가 된 상황에서 이렇게 큰 공연에 초청 받아 연주하는 건 상당한 행운이었을 것이다. 공연장에 온 몇 명은 부천필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 가지게 될 테니 말이다. 공연 기획 부터 사라 장에 너무 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천필이 공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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