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기를 왜 안 썼더라…  찾아보니 메모장에서 쓰다가 말았다. 광주에서 베를린 코미셰 오퍼 마술피리를 보기 전에 예습으로 보았던 영상이다. 

아힘 프라이어의 인생작.


월갑이 뽑은 마술피리 결정반 중 유일한 영상물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기대하고 봤다.


까야 제맛인 샤데가 타미노로 자신의 인생연주를 들려준다. 날카롭고 가볍게 쏘아붙이는데 자신감이 넘친다. 샤데가 한 동안 굵직한 공연들에 캐스팅되었던 건 이런 장면들이 있기에 가능했겠구나 싶다. 괴르네가 파파게노다. 노래도 잘하는데 연기도 어울린다. 자라스트로는 파페가 맡았다. 파페는 이 때부터도 이미 훌륭한 베이스였다. 헤르만 프라이가 대변인을 맡았다. 이런걸 오버 캐스팅이라고 하나요. 드세의 밤의 여왕 역시 훌륭하다. 드세의 목소리가 밤의 여왕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노래 자체는 충분히 뛰어나다.


한동안 톡방에서 도흐나니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는데, 이름이 쉽게 떠오르는 지휘자는 아니었지만 안정적이고 극적인 묘미를 잘 살려냈다. 코지 음원도 그렇고 당시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도흐나니가 이뤄낸 성과는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다.


아힘 프라이어의 연출은 감탄이 나온다. 프라이어의 장점이 백분 발휘된다. 프라이어가 사랑하는 난해한 상징은 마술 피리에 딱 어울린다. 서커스처럼 생긴 무대 전체가 낮과 밤의 대결이다. 밤의 여왕은 정말 달이되고 자라스트로는 태양이 된다. 개인적으로 아힘 프라이어 같은 회화형 연출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보여준 성취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치 않지만 흡입력이 있다. 연출의 난해함이 작품의 난해함과 죽이 잘 맞아 떨어진다. 


놀라운 건 프라이어가 거의 르파주 급의 무대 트릭을 선보인다는 거다. 저 당시 기술로 어떻게 했을까 싶은 장면들이 상당하다. 당연한 거지만 트릭을 위한 트릭이 아니라 연출에 꼭 필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노래하다가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밤의 여왕 , 움직이는 영상 초상화, 불위와 물위를 걷는 시련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예당 마술피리에서 시련을 다 싸구려 CG 프로젝션으로 때웠던걸 생각하면 정말 본 받아야할 연출이다. 만하임 반지에서 ‘아날로그 감성’ 느낌의 낡은 무대기술을 활용한 프라이어지만 97년에는 오히려 무대기술 활용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준이었던 셈이다.


프라이어와 그의 부인 에스더 리가 추진한 반지 프로젝트 기자회견이 최근에 있었다. 프라이어의 만하임 반지에 조금 실망했고, 이런 스타일이 한국에서 흥행에 유리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단 공연만 올라간다면야 뭐 평생 까방권 아니겠습니까. 11월 라인골트 공연 전에 만하임 반지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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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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