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렌보임의 올스타 레퀴엠. 그의 스칼라 취임 공연이었다.
사실 아주 예전에 산 영상인데 여태 안 보고 있었다. 투바 미룸 정도 까지 보다가 어디다 넣어뒀던 듯.
독창진 한명 한명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 황홀해하며 볼 수 있었다. 특히 키리에 시작 부분에서 네 명이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분명히 자비를 구하는 노래인데, 그냥 구걸하기보다는 투쟁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해서 인간 대표 네명이 신에게 자비를 얻어내려 투쟁하는 것 같다. 오텔로가 선빵을 날린 뒤에 메피스토펠레가 협박하고 여기에 쎈 언니 두명이 붙는다. 요새 들어 파페가 그렇게 특별한 가수인가에 대해 조금씩 회의가 생겼는데 저 한구절 듣고 반성했다.
카우프만이 빛나는 인제미스코와 호스티아스도 좋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메인 독창은 메조가 아닐까 싶다. 가랑차의 안정적이며 단단한 카리스마를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곡이다. 좀 재미있는 건 하르테로스와의 대비다. 가랑차는 메조 중에서 목소리가 덜 어두운 편이고 하르테로스는 소프라노 중에 목소리가 꽤 어두운 편이다. 그래서 둘이 함께 노래하거나 연달아 부를 때에는 뭔가 이상한 반전이 느껴진다.
이탈리아 갔다 온 뒤로 이탈리아 오케스트라에 대한 불신이 생겼는데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는 수준이 다르다. 바렌보임이 잘하는 건지, 라 스칼라가 다른 이탈리아 오케스트라랑 다른 건지, 아니면 이 사람들이 베르디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합창단의 호흡 역시 좋고 바렌보임은 특유의 육중한 사운드를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를 데리고도 보여준다.
바렌보임은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독창 가수들 한명 한명의 능력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모두 바렌보임의 의도를 잘 따라오고 바렌보임 역시 어느것 하나 쉽게 흘러가게 놔두질 않는다. 그 결과로 압도적인 완성도의 연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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