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어베어의 오페라는 왜 잊혀졌는가.



오페라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어떤 작품은 초연되던 순간부터 단 한번도 잊혀지지 않은 작품도 있고, 오랫동안 묻혀있다가 다시 재발견되는 작품도 있다. 400년 오페라 사의 명예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극장 표준 레퍼토리'에 편입되지 못 한 작품 중, 당대 가장 큰 인기를 누렸지만 그 뒤로 서서히 먼지만 쌓여간 작품들도 있다.

어떤 작품들은 그 경계에 존재하기도 한다. 마이어베어야 말로 '잊혀진 작곡가'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잊혀진 걸로 유명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이보다 더 안 유명하면 보통 존재 했는지도 잊기 쉽고 (파이시엘로라던가) 이보다 더 유명하면 '잊혀졌다'라고 말하기 애매해질테다. 마이어베어의 오페라는 꽤나 최근까지도 중요한 작품 취급을 받았고, 프랑스 그랑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걸 들어볼 일은 별로 없다.

마이어베어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그너의 공도 조금은 있을 테다. 바그너는 마이어베어를 강렬하게 비판했고 이는 당시 오페라계를 주름잡던 대세에 대한 비판이자 바그너의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그너의 가장 대표적인 흑역사 중 하나라 바그너를 파다 보면 마이어베어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마이어베어의 작품을 잊혀졌다라고 단정하는 것이 조금 위험할 수는 있다. 마이어베어 공연사를 뒤져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오히려 20세기 중후반에 지금보다 더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음반이나 영상 기록, 그리고 공연 통계를 보고 드는 인상이다. 예컨데 최근에 구입해서 읽고 있는 "More Stories of Famous Operas"는 1943년에 출판된 책인데, 30개 정도의 오페라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는 마이어베어의 <위그노>와 알레비의 <유대인> 도 수록돼있다. 이 책에 나온 마이어베어 설명을 잠깐 정리해본다. 책이 약간은 악의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마이어베어에 비판적인 논조를 가지고 있다는 건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이어베어는 부자집 자식이었으며 원래 Jakob Liebermann Beer라는 이름을 가진 프러시안 유대인이었다. 그의 외할아버지이자 부유한 은행가였던 Liebermann Meyer Wulf는 외손자가 음악 공부에 몰두하라고 30만 프랑을 후원해주는데 (연간? 일시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조건이 바로 외손자가 자신의 이름인 Meyer를 이름에 추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는 한동안 Meyer-Beer라는 성으로 살았다. 후에 음악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가고 거기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자신의 이름 야콥을 이탈리아식인 자코모로 개명한다. 그러면서 성에 붙은 하이픈 역시 삭제하여 이름 세탁을 한 뒤 프랑스로 건너간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하였고 결국 프랑스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다.

마이어베어의 대중적 성공이 그의 언론 로비 덕택이라는 주장도 자주 제기된다. 돈이 많았던 그는 자기 작품을 초연하기 하루 이틀 전에 언론 관계자들을 모아 성대한 파티를 했고, 그 덕분에 평론가들의 아내는 평생 만져보지 못했을 보석들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하이네는 그를 이렇게 조롱했다. "마이어베어는 생전에 불멸의 존재로 남을 것이고 어쩌면 사후에도 얼마간은 그럴지 모른다. 그는 언제나 미리 지불해두니까" 

물론 마이어베어의 인기가 순전히 호의적인 언론만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마이어베어는 대중들이 극장에서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고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강점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화려하고 정교한 무대 장치 역시 자신의 돈을 써서 충당했다고 한다. 그가 언제나 지향했던 건 훌륭한 '효과'다. 오래 전에 완성된 작품을 다시 손보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최신 기술을 사용해 더 효과적인 무대를 만들 수 있나 고민했기 때문이다. 마이어베어는 외젠 스크리브의 리브레토에도 관여했는데 이 역시 모두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였다. 바그너는 스크리브의 <위그노> 대본이 그의 창작 중 최악이라고 평하며 "사건이 없는 행동들, 미친 혼란만 있는 상황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라고 비난했는데, 이는 마이어베어가 극적인 대비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이어베어와 스크리브가 1세기만 늦게 태어났어도 둘은 오페라가 아닌 할리우드에서 재능을 발휘했을 테다.

마이어베어가 유행에 얼마나 민감했는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1849년작인 <예언자>에는 뜬금없이 스케이트 발레가 등장한다. 1843년에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는 원래 없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1849년에 공연을 앞두고서는 파리에서 롤러 스케이트가 엄청나게 유행하기 시작한다. 마이어베어는 이 기회를 놓치기 아깝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작품에 스케이트 발레를 집어넣는다.



마이어베어의 작품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나왔던 <악마 로베르> 영상을 한번 본적이 있다. 그리고 이 <위그노 교도> 공연 영상을 감상했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품을 찾아 볼 때면 작품의 호소력에 놀랄 때가 있다. 이 작품이 자주 공연되거나 유명하지 않은 이유가 작품성 때문이 아니라 상연의 어려움 때문이겠구나 싶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위그노>는 달랐다. 최근에 들은 오페라 중 가장 노잼이었다.


일단 서곡에서부터 당황스럽다. 5분이 안되는 짧은 길이인데, 멘델스존의 종교개혁과 마찬가지로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의 선율을 인용한다. 같은 선율을 몇번이고 반복하고 살짝 변형하다가 템포가 빨라지며 화려한 총주가 시작된다. 이제 느린 서주가 끝나고 서곡의 메인파트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는데, 1분도 지나지 않아 서곡이 끝난다. 난 시작이라고 느꼈던 부분이 실은 종결부였던 거다. 이래놓고 전주곡도 아니고 서곡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궁금하다.

마이어베어의 오케스트라 반주는 신기할 정도로 단촐하다. 마치 동양화에서 나타나는 여백의 미를 오케스트라에서 구현한 것 같다. 레치타티보를 해도 가수와 함께 가기 보다는 중간중간을 채워넣는 정도다. 라울의 첫 아리아에서는 비올라 (다모레)가 혼자 반주를 맡는다.  오케스트라가 노래와 함께 음악을 만드는 경우는 별로 없고 투티가 나오는 장면에서도 독창이나 합창의 선율을 똑같이 연주할 뿐이다. 바그너가 마이어베어를 비판한 것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음악적으로도 바그너가 지향하는 바와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잠깐 본 뒤에 어쩌다 아내님과 E.T.를 보게 됐는데, 거기 나오는 존 윌리엄스 음악이 훨씬 다채롭고 흥미로울 정도였다. 


내용은 16세기 신교와 구교 간의 갈등이 최고조로 이르렀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배경이다. 실제 역사적 사건의 발단이기도 했던 정략결혼을 표현하기 위해 신교 남주와 구교 여주의 이상한 갈등이 들어간다. 남주 라울은 이름 모를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져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다른 백작을 찾아온 걸 보게 되고 절망한다. 2막에서 마르게리타 왕비는 라울을 불러 신교와 구교의 화합을 위해 자신이 정해준 여자와 결혼하라고 부탁한다. 그 여자가 바로 라울이 혼자 짝사랑하고 있던 여주 발랑틴이다. 라울은 발랑틴을 보더니 저런 부정한 여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고 화를 내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난 이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짝사랑 아니었어????? 뭐 그 여자가 다른 남자랑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절망하는 것 까진 그럴 수 있는데, 그 약혼 파기하고 자기랑 결혼하겠다는데 무슨 상처를 받는거지ㅋㅋㅋㅋㅋㅋ  도대체 이 여자가 뭘 잘못한거죠? 라울 이놈은 자기랑 결혼할 여자는 다른 남자랑 눈 한번 안 마주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발랑틴이 이렇게 모욕을 당하자 발랑틴의 아버지는 저 신교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다고 분노한다. 그렇게 신교 학살 작전이 시작되는데 또 4막에선 발랑틴과 라울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발랑틴은 라울에게 신교가 위험하다면서 구교로 개종하라고 종용한다. 라울은 여자와 종교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전형적인 오페라 남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종교를 버리지 못한다. 대신 발랑틴이 신교로 개종하며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원래 4시간 정도 길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공연은 연출가 존 듀가 편집한 버전으로 두 시간 반 가량 진행된다. 그럼에도 이야기 진행에 어색한 점을 느끼지 못했으니 아마 수많은 발레와 쓰잘데 없는 장면들이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존 듀의 연출은 시대를 적당히 최근으로 옮겨놓았는데 이제는 고풍스럽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디자인이 약점이다. 연기 진행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당시 흥행작 답게 소재를 살려내는 것은 훌륭하다. 특히 신교와 구교의 대립을 표현하는 3막이나 5막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보는 느낌을 전해준다. 순교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노래와 내 주는 강한성의 찬송이 섞이며 오케스트라도 드디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피날레 간지 만큼은 여느 걸작 못지 않다.


2막이나 4막의 경우 가수들의 개인기에 심하게 의존하는 편이다. 도이체 오퍼의 출연진의 노래는 무난한 편이다. 딱 한명 라울의 하인 역인 마르셀을 부른 베이스 가수의 컨디션이 최악이다. 거의 노래라고 하기 힘든 노래를 들려준다. 졸테츠의 반주는 평가하기가 어렵다. 지휘자가 캐리하기 가장 어려운 유형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불어가 아니라 독어로 노래한다. 그래서 타이틀 제목도 Les Huguenots가 아니라 Die Huguenots로 돼있다. 독어로 돼있는데다가 마이어베어 특유의 앙상한 레치타티보 반주 덕에 수난곡의 레치타티보를 듣는 느낌도 난다. 

도이체 오퍼는 마이어베어의 작품에 상당히 열정적인 듯 하다. 최근에도 <아프리카 여인> 같은 작품을 올렸는데 <위그노> 역시 이 공연 뒤에 새로운 프로덕션을 올렸다. 


짧게 요약하자면 한번 쯤 어떤 작품인지 맛볼만한 작품이긴 한데, 그렇게 대단하다고 보긴 힘들어서 되도록 짧은 판본을 보는 게 이득일 것 같다. 그 점에서 이 프로덕션은 추천할 만하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