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에 바이로이트, 잘츠부르크, 루체른 축제에 다녀왔다. 내가 본 공연 중에서 영상물로 발매가 된 것이 바이로이트 탄호이저, 잘츠부르크 장미의 기사, 피에라브라스, 돈 조반니,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개막 공연으로 총 다섯 종이다. 공연을 볼 때만 해도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영상물로 다시 접할 생각에 설레기도 했는데 정작 발매가 되고 나선 하나도 사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고 싶고 보고 싶은 영상물이 많은데 내가 이미 본 공연을 굳이 또 영상물로 사긴 아깝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계속 미루다가 프레스토 C major 할인 기간에 장미의 기사와 피에라브라스를 구입했다. 


당시 클갤에 썼던 후기 링크


전반적인 평은 공연장에서 느꼈던 것과 거의 똑같다. 스토야노바와 코크Sophie Koch(독일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다)가 아주 훌륭하며, 파니날과 코미사르가 짧은 장면이지만 상당히 인상깊다. 조피 역의 모이카 에어트만은 공연장에서 들었을 때도 너무 연약하며 다소 호흡이 짧은 느낌이었는데 영상에서도 그러한 단점이 조금씩 드러난다. 옥스 남작 역의 귄터 그로이스뵉은 카메라 클로즈업으로 연기 실력을 한껏 더 뽐낼 수 있지만 역시 무대를 압도하지 못하는 노래가 아쉽다. 


그럼에도 그로이스뵉의 옥스가 의미가 있는 것은 그가 젊고 깔끔한 옥스를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젊고 깔끔하다는 것은 그의 외모만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목소리 역시 전통적인 강렬한, 짐승 같은 베이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간 옥스가 말할 것도 없이 파렴치한 나이든 변태였다면 그로이스뵉의 옥스는 우리 근처에서 당장 몇명 이름을 댈 수 있는 개저씨 쯤 되겠다. 옥스를 말도 안 되게 나쁜 놈으로 만드는 것보다, 그로이스뵉 처럼 적당히 나쁜놈으로 만드는 게 오히려 극에 몰입하기 좋은 것 같다. 


그외 자잘하게 등장하는 단역들이 조금 어설프고 무엇보다 이탈리아 가수 역할이 많이 아쉽다.


벨저-뫼스트의 지휘는 단단하다. 비쉬코프 처럼 역동적으로 넘실거리거나 틸레만처럼 관능미 넘치는 클라이막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앙상블과 단단한 음색을 보여준다. 극 전반에 걸쳐 아주 든든하고 흔들리지 않는 반주다. 극을 몰아칠 때도 너무 과장되지 않기에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슈트라우스나 푸치니에서 좀더 관능적인 선율미를 기대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벨저-뫼스트의 스타일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 그는 자신만의 분명한 스타일을 가진 오페라 지휘자로 우뚝 섰다. 


하지만 이 영상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영상 감독이 브라이언 라지Brian Large 라는 점이다. 라지는 분명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영상 감독이다. 지인 중 한명이 브라이언 라지 감독 오페라 영상은 절대 사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줬을 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야 라지의 단점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마 비쉬코프 지휘의 잘츠부르크 장미의 기사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던 단점인데, 라지는 무대 전체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잘츠부르크 축제 대극장이 얼마나 '와이드 스크린'인지 공연 영상만 보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다. 정신없는 샷 변환은 없지만 대체로 과하게 클로즈업 한다. 때문에 공연 영상을 봐서는 이 무대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감을 잡기가 도통 힘들다. 그 유명한 빌리 데커의 라 트라비아타 무대야 무대 세팅이 변하지 않으니 큰 문제 없지만 전체 미장센이 자주 바뀌는 작품에서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거기다 라지는 요상하게 무대를 측면으로 치우친 앵글로 많이 촬영한다. 내가 그 점을 인식하고 봐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심하게 많이 사용한다. 


신기하게도 내가 당시 공연후기에도 영상물로 발매되었을 때 '
관건은 배경과의 조화가 카메라로 잡았을 때 어떻게 보일까 일 듯.' 이라고 지적했다. 

공연을 직접 보았을 때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배경 그림이었다. 물론 하리 쿠퍼에게는 단순히 보이는 아름다움 이상을 기대했기에 실망한 것도 있었지만, 최소한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아름다움이 있었단 말이다. 이것이 영상에서는 거의 대부분 파괴된다. 전체 영상 비중에서 뒷 배경이 충분히 보이는 비율이 10%는 될까? 측면에서 촬영한 것들은 거의 대부분 공허한 배경에 인물만 나올 뿐이다. 공연장에서 직접 본 관객은 오페라 내내 그 아름다운 배경들을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사실 무대 깊숙이 있는 배경막은 와이드 샷이 아닌 이상 잡히기 어렵기에 영상물에서는 큰 단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게 라지의 카메라 연출을 만나 참담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한글 자막도 달렸고 연주도 훌륭하건만 영상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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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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