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오페라의 모범?

라이만의 음악을 듣는 건 처음이다. 사실 이 작품에 관심이 있어서 산 건 아니고, 꽤 오래 전에 MDT에서 아트하우스 떨이 품목에 있길래 구입했다. 그 때 같이 샀던 작품이 취리히 슈만 게노베바, 데사우 헨젤과 그레텔, LA 쳄린스키 난쟁이 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머지 세 작품은 다 봤지만 유독 이 작품만 몇년 묵혀두다 이제야 꺼내보았다. 그것도 원래 보려고 계획했던 건 아니고, 보려고 가져온 '두 명의 포스카리'가 재생이 안되서 그나마 집에 놔둔 블루레이 중 유일하게 한번도 안본 메데아를 집었다. 


라이만의 메데아는 메데이아의 이야기 중 이아손과 코린트로 다시 돌아왔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 메데아라는 제목을 보고 황금 양모 탈취하는 장면 부터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 부분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찾아보니 케루비니의 메데Medée도 이처럼 메데이아와 이아손이 그리스로 돌아온 장면부터 시작한다.


라이만의 음악은 침머만 처럼 너무 난해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글래스나 애덤스 처럼 비교적 단순한 미니멀리즘도 아니다. 강렬한 팀파니 연타, 금관악기의 클러스터 등 폭력적인 음향도 자주 등장하지만 술 폰티첼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현악기의 서늘한 음색도 일품이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극의 내용에 충실하고 장면 안에서 어느 정도 일관성있는 음악 어법을 유지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익숙해진다. 극의 감정선이 전체적으로 강렬한 편이기 때문에 성악 역시 곳곳에서 폭발하며 집중을 끌어모은다.


연출 역시 단순하면서 효과적이다. 메데아의 복장과 그리스인들의 복장 차이는 둘의 성격을 확연하게 나타내준다. 이아손이 메데아를 떠나는 장면도 무대를 분리시킴으로써 표현했는데 표지에 사용된 장면이 바로 이것이다. 메데아가 버림받은 뒤 절망할 때 무대 뒤편의 경사가 올라가면서 무대 바닥에 있던 돌들이 굴러 떨어지는 것 역시 단순하면서 상당히 효과적인 장치다. 

가수들 역시 모두 뛰어나다. 라이만이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직접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다니고 의견을 물어보며 그 가수의 목소리에 어울리도록 작곡하였기에 난해한 음악을 소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메데아의 경우 절규를 표현하기 위해 고음이 많이 쓰이는 편이지만 다른 장면들은 대체로 도약이 너무 많은 편이 아니다. 마를리스 페테르센은 목소리 자체는 부드럽다고 할 수 있지만 뛰어난 기교를 통해 고음을 소화하며 메데아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현해낸다. 아드리안 에뢰트의 안정적이며 정확한 노래 역시 인상깊었다. 미하엘라 젤링어는 메데아와 반대되는 모습을 성악적으로 잘 표현해냈다.


확실히 현대 오페라를 보고나서 쓸 말이 많지 않다. 더욱이나 며칠이 지난 뒤에 쓰는 글이라면.. 라이만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겼고 대표직안 리어 역시 꼭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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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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