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협찬: 샤이보이

보리스 고두노프 띵작 인정합니다.


논문이 목전으로 다가오면서 이미 본 오페라 리뷰도 못 쓰고 있다. 매트랩 돌려놓고 틈틈히 나는 시간에 머리 식힐 겸 글을 써야겠다 마음 먹었다.

나가노의 영상을 보고 상당히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는데 이 영상이 달래줄 수 있을까 기대했다. 사실 작품을 보기 전에 프레스토에서 러닝 타임이 164분으로 되어있길래 1872년 개정판이 아닐까 기대했는데 블루레이를 받아 뒷면을 보니 초판본에다가 개정판의 엔딩 4막 2장 크로미 숲 장면을 삽입한 것이다.


덕질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판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떤 작품의 경우 판본의 차이가 연주자의 해석의 차이의 범위를 한참 뛰어넘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브루크너를 들 수 있을테다. 판본을 비교하는 건 다른 덕질과 꽤나 다른 재미를 준다. 정성적인 감성의 영역이 아닌 정량적인 지식의 영역에 가까운 문제이기 때문일 테다. 슈만 교향곡 4번의 1841년 판본과 1851년 판본을 비교하는 것은 예르비와 래틀의 연주를 비교하는 것보다 훨씬 간명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오페라의 경우 판본이 크게 갈리는 경우가 당장 떠올리자면 돈 카를로, 투란도트, 카르멘 정도가 생각난다. 베르디 오페라 중 파리 오페라 공연 용으로 발레가 붙은 경우를 치면 더 많긴 하지만. 맥베스 역시 한번 개정되었지만 개정 뒤 붙은 La luce langue를 안 부르고 넘어가는 공연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비 부인의 개정 역시 유명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허밍 코러스가 없는 초판본을 공연하는 경우는 역시 본적이 없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의 초판본이 나름 희귀템으로 레코딩도 되는 데 비해 대체로 오페라 쪽은 그런 시도가 좀 덜하지 않나 싶다. 대신 아리아를 짜른다거나 순서가 바뀐다든가 돈 조반니 처럼 장면을 짤라낸다든가.. 


그런 면에서 보리스 고두노프는 오페라 계의  판본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무소륵스키 본인이 한번 개정을 했는데, 말이 한번 개정이지 생각보다 그 안에서 세부 판본이 꽤나 갈리는 편이다. 여기에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쇼스타코비치가 각자 개정한 판본이 남아있다. 요즘에는 이 사람들 판본 잘 안쓰는 편이라곤 하지만 이 둘이 워낙 네임드이다보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판본도 아니다.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경우 한 동안 대세였으며 카라얀도 녹음에 이 판본을 섞어 썼으니 보리스 판본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렵다. 


결국 대세가 되는 것은 이 판본 저 판본을 사용하는 짬뽕판이다. 위키의 설명에서 가장 대표적인 판본 중 하나는 1872년 판본에 기초하되 개정에서 삭제된 1869년 판본의 4막 1장인 바실리 성당 장면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삭제되는 음악 없이 가장 많은 양의 음악이 들어간다. 사소한 문제로 바실리 장면에서 나오는 백치의 노래가 개정판에는 마지막 장면인 크로미 숲 장면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두 장면을 모두 넣으면 백치 노래가 중복된다는 것인데 보통 적당히 스킵하는 것으로 떼운다고 한다.


노세다는 조금 특이한 조합을 한다. 초판본을 토대로 하되 개정판에서 추가된 크로미 숲 장면을 넣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게, 크로미 숲 장면은 원래 개정판의 마지막 장면이지만 이를 보리스의 죽음 장면 보다 앞에 놓고 피날레는 보리스의 죽음으로 끝내는 것이다. 크로미 숲 장면이 당연히 보리스 죽고나서의 장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무소륵스키 자신도 개정작업을 하면서 크로미 숲과 보리스 죽음 장면 중 무엇을 피날레로 할지 계속 고민했다고 한다. 때문에 가사만 보았을 때 크로미 숲 장면이 보리스의 죽음 앞인지 뒤인지는 나타나지 않아 이런 자유로운 배치가 가능하다.


보리스 고두노프가 여러 판본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건 중심 인물 없이 여러 인물들이 병치되어있는 작품의 내용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전 글에서 말했 듯이 보리스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라는 기준과 멀찍이 떨어져있다. 뺄 수 있는 것도 많고 더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하나하나의 장면이 전체의 일부가 아닌 하나의 개인으로 작용하는 작품의 특징 덕택에 판본 역시 이 장면 저 장면을 적당히 입맛 맞춰 골라 끼워넣을 수 있는 것이다.


노세다는 개정판의 폴란드 막을 일부러 넣지 않았는데, 이 장면이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이 강하여 무소륵스키의 첫 아이디어와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이유다. 이 장면을 넣으면 보리스 특유의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음반으로 들을 때는 폴란드 막의 달콤한 노래들이 참 매력적이지만 작품 전체로 볼 때 이 음악이 작품의 다른 부분과 제대로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말이 맞긴 하다. 


작품 이야기를 더 해보자. 이 오페라의 성악 파트가 바그너와 많이 닮아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가 놓친 중요한 특성이 있다. 무소륵스키가 바그너, 혹은 다른 작곡가와 완전히 구별되는 부분은 바로 오케스트라 반주다. 기본적으로 대다수의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물 흐르듯 계속 흘러가고 성악은 그 위에 얹어간다. 무한선율 처럼 막 내내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이어진다는 것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보면 성악 프레이즈 사이를 오케스트라가 분명하게 반주 선율로 메꾸어준다. 모차르트를 보든 베르디를 보든 마찬가지다. 레치타티보에서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타이밍은 주로 문장의 시작이나 끝이다. 고전적인 아리아에서 오케스트라가 가수와 똑같은 선율을 연주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어쩌면 당연하다. 어차피 4마디 프레이즈라는 규칙적인 흐름을 간다면 가수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똑같은 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규칙적인 연극적 장면을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반주하는 가이다. 


무소륵스키의 오케스트라 반주는 이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이 작품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이질감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상당히 짧으며 가수의 호흡과 항상 함께한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라가 주도적으로 흐름을 만드는 경우가 별로 없다. 피멘의 독백이나 보리스의 독백 장면을 보면 된다. 여기서 성악 선율의 스타일은 바그너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오케스트라 반주는 바그너와 완전히 딴판이다. 곳곳에서 마치 가수가 노래하 듯 긴 숨을 쉬는 장면이 있으며 주체적으로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수의 노래에 조심스럽게 달라붙어 변형된다.


또한 관현악법 자체도 얼마나 소박한지 놀라울 정도다. 가장 유명한 대관식 장면에서 금관의 사용이 너무 두드러져서 화려해보이지만 실제로 무소륵스키의 관현악법은 심할 만큼 절제돼있다. 임슬프에 무소륵스키 오리지널 악보가 없어 직접 확인해볼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의 길이에 비해 타셋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라고 글을 쓴 것이 3주 전이다. 학회 듀가 익스텐드 되면서 논문을 훨씬 알차게 쓸 수 있었지만 그 만큼 고통받는 시간이 늘어났다. 블로그에 글 못 쓴 지도 벌써 한참이 됐다. 

시간이 지나니 별로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음 영어로 논문 쓰다가 우리말로 글을 쓰니, 그것도 블로그에 글을 싸지르니 뭔가 감회가 색다르긴 하다내 생각에 기차인가 버스에서 이 글을 더 길게 썼는데 인터넷이 연결이 안 돼있어 자동 저장이 안돼있나 보다. 


아마 노세다에 대한 문단을 썼던 것 같다. 노세다는 내가 대학교에 올라와 처음으로 본 오케스트라 공연의 지휘자였기에 처음 본 뒤로 잊을 수가 없었다. 유난히도 차6 연주가 많던 해였는데 그 첫 스타트를 끊어주기도 했다. 이제는 조성진과 녹음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더욱 익숙한 이름이 됐다.


노세다는 나가노가 보여주었던 아쉬운 점들을 분명하게 처리해준다. 노세다는 이탈리아인이고 전형적인 극장 스타일이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피날레에서 팀파니 롤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과장하는 장면은 자칫 진부할 수도 있지만 극적인 흐름을 잘 만들어놨다면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한다. 장대하거나 선이 굵다는 인상은 없지만 적재적소에서 에너지를 뿜어낸다. 게르기에프에게 배운 경력이 있고 러시아 레퍼토리를 상당히 자주 하는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지휘자의 범주에 속하는 스타일이라고 평하고 싶다.


가수 중엔 타이틀 롤을 맡은 오를린 아나스타소프Orlin Anastassov가 맡았다. 나에겐 빌바오 돈 카를로에서 펠리페를 맡아 익숙한 가수다. 1966년 생이니 이 공연을 할 때는 30대도 채 꺾이지 않은 젊은 나이였다. 보리스 고두노프가 주로 노련한 가수들이 맡는 역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특이한 점이다.

내가 저번 나가노 영상을 보고 이 작품에서 타이틀 롤의 비중이 작다고 말했다. 아나스타소프를 보면서 반성했다. 이 작품에서 보리스의 중요성은 여느 오페라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작품 안에서 많은 독백이 등장하지만 보리스의 독백 만큼이나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해야하는 노래는 없다. 플롯이 흩어져있는 작품이지만 이를 이어줄 수 있는 것은 명백하게 보리스 뿐이다. 보리스가 독백에서 극적인 힘을 만들어내면 전체 이야기에 구심점이 생긴다. 아나스타소프는 강렬하며 힘이 있는 목소리를 가졌고 여느 바그너 가수 못지 않게 가사를 잘 처리해내며 동시에 뛰어난 배우다. 대관식 장면에서 백성들이 자신에게 달려들자 갑자기 눈이 뒤집히며 공포를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International Records Review의 리뷰어는 이 장면에서부터 보리스의 멘탈이 흔들린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오를린 아나스타소프가 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에 타이틀 롤로 캐스팅 됐다. 여러분 꼭 A팀 보세요. 나머지가 다 한국인 캐스팅이라 벌써부터 망작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나스타소프가 보리스 하드 캐리를 보여줄 수 있을 지 기대된다.


나머지 배역은 특별히 생각나지 않는다. 바를람 역을 맡은 블라디미르 마토린Vladimir Matorin은 뮌헨 영상에서도 같은 역을 불렀던 가수다. 어쩐지 좀 많이 잘한다 싶더니 바를람 장인이었어..


안드레이 콘찰롭스키Andrei Konchalovsky의 연출은 전통적인 스타일이지만 그 안에서 창의성이 빛나는 장면들이 있다. 특히 대관식 장면에서 슈이스키가 합창단에게 찬양 노래를 강요하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은 음악이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모습과 딱 어우러졌다. 보리스의 중간 독백 장면에서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물감을 얼굴에 쏟는다든지, 예수 처럼 고문받는 인간의 모습이 무대 밑에서 잠깐 등장한다든지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연극 장치들이 등장한다. 

콘찰롭스키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만 보고도 자막 없이 대충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관객이 저게 뭘까 곰곰히 생각해봐야하는 연출은 지적 자위행위일 뿐이라며 극딜하더라 읍읍. 그래도 자기 스타일 대로 연극적으로 분명한 연출을 만들어낸 것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의미가 불분명할 수 있는 서막과 피날레의 합창 장면을 생동감 있게 잘 만들어냈다. 글 쓰면서 검색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꽤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다..


판본이 조금 섞여있긴 하지만 보리스 고두노프 입문용으로 강력 추천한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