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안 쓴 지 아주 오래됐다. 오랜 만에 들어오니 휴면 계정 처리가 돼있었다. 

글을 좀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페북에 쓸까 하다가 사람들이 별 관심도 없을텐데 관심 구걸로 보이고 싶진 않았다.

너무 오페라를 값 싸게 소비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쌓아둔 블루레이를 하나씩 해치워가기에 바빴다. 알라딘 짧은 평을 쓰는 것도 해봤지만 역시 별 영양가가 없다. 블루레이를 보면 부클릿도 모두 정독하고 짧게나마 글도 작성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습관을 계속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고민없이 빨리 계속 써내려 가는 것이다. 그래서 글이 좀 엉망일 거다. 잘 쓸려고 하다가 영영 못쓸 것 같아서 그냥 쓰기로 했다.


최근에 여유가 좀 생겨서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 틸레만과 메트 체네렌톨라를 보았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브리튼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듣다보니 달달한 멜로디가 땡겨서 처음으로 노르마를 시도해봤었는데 멜로디가 달콤하니 생각보다 재밌게 보았다. 비온디 반주도 좋았지만.

슈트라우스 그림자 없는 여인은 처음 보는 거라도 나름 재밌게 보았지만 쉽진 않았다. 엘렉트라 만큼 난해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좀 쉽게 가려고 체네렌톨라를 보았는데 노래는 재밌지만 역시 극의 진행이 없으면 지루하다. 아 결국 난 푸치니 스타일이구나 싶어서 오늘 오페라는 푸치니로 정했다.

새로운 오페라를 접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이제 리스트가 120개 정도 되었는데 마음은 공허하다. 처음 보는 오페라도 이제 그럭저럭 지루함을 참아가며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피곤하다. 이 중에서 내가 정말로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오페라는 몇 편이나 될까 하는 생각에 좀 우울했다.


서부의 아가씨는 영상물로 한 번 본 적이 있다. 말뫼 오페라에서 한 공연인데, 니나 슈템메와 안토넨코라는 걸출한 캐스팅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카우프만과 니나 슈템메에 빈 슈타츠오퍼라니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질렀다.

 

서부의 아가씨의 플롯은 상당히 훌륭하다. 1막에서 캠프 사람들의 생활, 민니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보여준다. 둘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도 딱히 개연성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고 2막의 극적 긴장감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3막의 해피 엔딩은 푸치니 답지 않지만 정말 아름다운 부분이다.

벨저-뫼스트와 푸치니라니 뭔가 좀 안어울린다 싶긴 하지만 들어보니 꽤나 훌륭하다. 3막 앞부분에서 빈필 호른 섹션의 특별한 맛을 즐길 수도 있다. 


연출은 모범적이었다. 새로운 건 없지만 연기와 동선이 자연스러웠다. 민니의 의상, 특히 2막의 의상은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촌스러웠던 점은 아쉬웠다. 바리톤 토마시 코니에츠니는 연극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데 목소리 역시 상당히 사악하게 들려 배역에 적합했다. 바그너 슈필테너 역으로 자주 본 닉 역의 노르베르트 에른스트도 진지한 모습을 잘 보여줬다. 카우프만이랑 니나 슈템메는 별 다른 코멘트가 필요 없다. 

민니 역은 푸치니 오페라 여주인공 중에서도 특히나 흥미로운 인물이다. 만인의 연인, 배운 것이 많지 않지만 책읽는 것을 좋아하며 자기 몸을 지키거나 동료들의 금고를 지키는 데 주저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 그렇게 인기가 많으면서도 팜므 파탈이라기 보다는 순정파라는 것도 일종의 반전 매력이라고 해야할까. 2막에서 보여주는 배신감과 용서 역시 흥미롭다.


3막은 푸치니가 역시 신파의 달인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죽기 전에 남기는 말이 민니에게 자기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라니. 민니가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며 그 사람과 있었던 일들을 읊어가며 설득하는 장면 역시 눈물샘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오페라 영상 보면서 눈물 흘린 게 오랜 만이다. 마치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신파적 느낌의 감동이다. 민니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잘 대해줬으며, 결국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의 진심어린 도움을 받는 것이다. 1막에서 향수병에 걸린 동료에게 돈을 모아주는 것 같은 인간적인 따스함. 

진정한 사랑을 이해하는 건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캠프 사람들이기도 하다. 자신들에게서 민니를 '훔쳐간' 딕 존슨을 용서하는 것.  1막에서 캠프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은 ragazzi (boys)이지만 3막 마지막 순간에 민니와 딕 존슨이 쓰는 호칭은 fratelli (형제들) 라는 점은 이 변화를 함축해서 보여준다. 


이런 달콤한 장면을 더욱 빛나게 하는건 과감한 불협화음이다. 2막의 키스 장면이나 포커에서 승리한 뒤 나오는 음악들은 얼마나 기괴한가.



사소한 거지만 카메라 워크도 마음에 들었다. 적당한 각도, 적당한 줌인. 메트의 난잡한 카메라 워크를 보다가 이걸 보니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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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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