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틀 & 셀라스.


래틀과 셀라스의 조합이 가진 창조성은  바흐의 수난곡으로 증명됐다. 펠레아스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짧게 줄이면 영 신통치 않다. 래틀은 펠레아스에 꽂힌 것 같지만 대체로 무거운 편이다. 곳곳에서 베를린필의 두터운 현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기량은 물론 뛰어나고, 곳곳에서 그 실력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오케스트라 스코어의 디테일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썩 매력적이진 않았다.


캐스팅 역시 당혹스럽다. 코제나의 멜리장드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버리고 고통받고 두려워하는 사실적인 인물이었다. 윌슨처럼 너무 신비스러운 모습만 강조하는 것도 별로지만, 이건 좀 오히려 너무했다.


가장 안 어울리는 건 게어하허Gerhaher의 펠레아스였다. 리릭 바리톤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성의 펠레아스만 듣다가 게어하허의 목소리를 들으니 몰입이 안 됐다. 목소리에서 꿀이 잔뜩 떨어지고 사랑에 빠진듯한 목소리 대신에, 수난곡에서 예수 부르던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는 것 아닌가.  내가 듣던 게어하허는 예수와 보체크였는데, 그런 목소리로 펠레아스를 부르니 환상이 깨지는 느낌이다. 펠레아스가 멜리장드를 만나 고백하는 장면도 동화나 환상소설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다큐가 되어버린다. 그게 뭐 무거운 분위기의 다큐가 아니라, 보체크 같은 정신병 다큐라고 해야하나…. 사소한 거지만 골로-늙음, 펠레아스-젊음은 꽤 중요한 포인트인데 핀리가 맡은 골로가 더 젊어보인다.


암포르타스로 실망했던 핀리 Gerald Finley는 골로에서 상당히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닥터 아토믹이나 작스에서 좋아했던 모습들,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연주하되 가사 한줄 한줄을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느낌이 잘 살아났다. 

엑상프로방스 알치나에서 신스틸러 역할을 한 보이 소프라노 엘리아스 메들러Elias Mädler가 이뇰드를 맡았다. 역시나 잘한다. 어르신 역에는 프란츠 요제프젤리히와 베르나르다 핑크가 나오는데 둘다 무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아르켈이 멜리장드에게 흑심을 품고있는 듯한 노골적인 해석은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멜리장드와 펠레아스가 신비롭지 않은 건 셀라스의 의도였을 테다.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감정들을 그려내려는 건가 싶었는데, 반대로 무대의 제약 때문에 과도하게 상징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그냥 흔한 세미 스테이지 연출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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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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