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흘러가듯 이야기에 음악을 입힌 오페라.


동명의 영화와 같은 내용이다. 영화의 원작이 되었던 소설을 쓴 애니 프루가 직접 리브레토를 맡았다. 두 카우보이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결혼한 이후에도 다시 만나기 시작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이며 영화의 진행과 거의 비슷하다. 전개 시간의 한계로 카우보이 생활의 분량이 조금 줄어들고, 에니스의 이혼 이후 두 사람의 방황이 간결하게 생략됐다. 두 주인공이 바이 섹슈얼처럼 보이게 하는 장면들이 삭제됐다는 점은 중요한 차이다. 영화에 없던 장면으로는 에니스의 부인 알마가 웨딩 드레스를 고르는 장면이 있다. 


작곡을 맡은 찰스 우리넨Charles Wuorinen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간단히 찾아보니 음렬주의 등 보통 현대음악 하면 흔히 떠오르는 그런 작품들을 쓴 작곡가다.

퓰리처 상을 수상하게 된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온전히 전자음향으로만 작곡한 곡은 이 곡 하나 뿐이지만, 아이러니컬 하게 우리넨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우리넨의 또 다른 작품. 퍼온 기준은 따로 없다. 그냥 유튜브에서 적당히 조회수 높아보이는 거 가져왔다.

특별히 귀에 거슬리는 부분도 없고, 그렇다고 작곡가 만의 특별한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인상도 없다.


이런 음악 스타일이 오페라와는 잘 어울린다. '이 장면에서 이런 음악을 쓰다니' 라는 충격은 없지만 음악이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잘 붙어있다. 아데스의 오페라 처럼 특별히 예뻐보이려는 시도도 없고 오케스트라가 노래에 봉사하지도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극을 메꾸고 듣는 이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있는 느낌이다. 잭과 에니스의 성격 역시 음악적인 면에서부터 차이를 만든다는 것도 재밌다. 

이 장면을 어떻게 오페라로 만들었을까 하는 장면들에서 전반적으로 충분히 기대에 부응해줬다. 영화도 정적인 느낌이 있는데 오페라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긴장감이었다. 영화 마지막의 명대사 "Jack I swear"는 내용이 명확하게 바뀌었으며 오페라 마지막을 장식하는 독백 아리아 같은 느낌을 준다. 

<파운틴헤드>로 내한한 연출가 이보 반 호프가 연출을 맡았다. 무대 뒷면을 브로크백 마운틴의 풍광 영상으로 가득 채웠다. 오페라 영상으로 볼 때는 괜찮지만, 직접 본 관객들 중에 영상은 절반만 보이고 무대 바닥만 보이는 사람이 태반이었을 걸 생각하니 좀 마음이 아프다. 처음에는 무대가 단조롭다가, 둘의 결혼생활이 시작되며 좀 더 풍성하게 변한다. 전반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마지막에 포개진 두 셔츠가 하늘에 떠다니는 것 역시 간단하지만 마음에 닿는 연출이었다. 여담이지만 인터뷰 하는 모습을 보고 게이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게이 맞다고 한다. 



두 주역 가수의 활약이 대단하다. 노래하기도 어렵고 연기하기도 어려운 배역인데 아주 집중력있게 잘 표현해준다. 특히 에니스 역의 톰 랜들Tom Randle은 에니스가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방황을 정말 잘 나타냈다. 잭을 다시 만나 설레면서도 걱정하고 또 삶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없어 망설이는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캐나다 테너 다니엘 오컬리치Daniel Okulitch도 잭의 활기차고 외향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두 사람은 과장되지 않고 연기하듯 노래하며 현대 오페라에 적격인 목소리를 보여줬다.




모티에의 인터뷰 중 "이 오페라를 마드리드에서 올릴 거면 카우보이 대신 투우사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했으면 난 마드리드에서 바로 살해당했겠지.." 라고 유머 날리는 게 귀엽다.


제라르 모티에는 브뤼셀 모네 극장, 잘츠부르크 축제, 루어트리엔날레, 파리 오페라, 뉴욕 시티 오페라, 테아트로 레알 등 다양한 오페라 극장과 축제의 감독을 맡아왔다. 대체로 우리가 머리 속에 기억하는 오페라 극장장이란 죄다 부정적인 이미지이지만, 이번에 찾아본 바로 모티에는 상당히 존경받을 만한 예술인이다. 잘츠부르크 감독 시절 셀라스와 메시앙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올렸으며 파리 오페라에서도 혁신적인 연출가들을 기용하고 20세기와 현대 오페라의 비중을 높였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가 뉴욕 시티 오페라 시절부터 준비해왔던 작품으로, 결국 뉴욕에서 초연하지 못하고 테아트로 레알 감독으로 부임한 뒤 마드리드에서 초연한다. 안타깝게도 2014년에 암으로 타계했다. 영상물 표지에 "제라르 모티에를 기리며"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재밌게 봤고 새로운 현대 오페라나 현대 음악을 찾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어째 쓰고보니 당연한 말 같네. 실망 안 시킨다 이런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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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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