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연주의 유행은 빠르게 변한다.

아르농쿠르의 업적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를 중심 레퍼토리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는 1960~70년대에 몬테베르디 삼부작을 모두 녹음하였고, 이 중 <포페아>와 <율리시스>는 최초의 전곡반이었다. 또한 그가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장피에르 폰넬의 감독으로 찍은 몬테베르디 삼부작은 이 작품들의 최초 영상 기록이기도 하다. 


장피에르 폰넬의 영화 버전 오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유의 분장과 색감, 인위적인 카메라 구도, 기괴한 장면들을 보며 이게 다 뭔가 싶었을 때가 있었다. 내가 영화 버전 오페라들을 원래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폰넬의 연출은 그 중에서도 내 취향과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걸 보았던 건 아르농쿠르의 몬테베르디가 많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볼 가디너 공연 예습을 위해서 봤던 거라 벌써 본 지가 다섯 달이 다 되어간다. 이제 기억나는 건 파편적인 인상 뿐이지만 조금이라도 기록해둬야겠다.


아르농쿠르의 반주는 지금와서 듣기에는 놀랄 만큼 심심한 편이다. 40년 전에는 혁신적인 사운드였겠지만 지금 다시 듣기에는 아주 심심한 편이다. 일단 악기 편성 자체가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다. 무엇보다 레치타티보 반주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아르농쿠르의 반주는 정적이며 마치 고전시대 레치타티보에서 간단한 화음만 군데군데 박자에 맞춰 넣어주는 느낌이다. 반면 최근의 반주에서는 한 레치타티보 안에서도 다양한 콘티누오 악기를 사용해 분위기를 매번 바꿔낸다. 또한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 테오르보를 아주 강렬하게 쳐버리기도 한다. 아르농쿠르에는 그런 조미료가 없다. 당시로서는 비판 받을 만큼 리코더나 트럼펫을 더 추가했다고 하지만 그런 부분은 전체 오페라에서 아주 조그마한 부분일 뿐이고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레치타티보 반주는 상당히 심심한 편이다.


장피에르 폰넬의 연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단 이 작품은 완전히 영화판은 아니고, 무대에서 진행되긴 한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하는 단원들이나 아르농쿠르의 모습도 꽤 자주 등장한다. 특유의 색감이나 디자인은 역시 취향이 아니지만 그럭저럭 볼만하다. 물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직 젊던 시절의 아르농쿠르 백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때 최첨단에 서있었던 아르농쿠르이지만 지금의 유행과는 분명히 멀어져있다. 요즘의 시대연주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아르농쿠르의 연주가 더 이상 참신하거나 혁신적으로 들리지 않을 테다. 어쩌면 그 점이야 말로 아르농쿠르가 걸었던 길이 음악계에 얼마나 유익했던 것인가를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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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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