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베르디의 작품은 21세기에 어떻게 걸작이 되었는가.


아르농쿠르의 영상을 보며 몬테베르디가 왜 이렇게 재미가 없게 들리는 걸까 조금 회의감에 빠졌다. 가수들이 몬테베르디를 잘 부르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좋은 반주가 되는 지도 감이 잘 안왔다. 

이 영상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 시간의 플레이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공연이다.


먼저 데이빗 올든의 연출. 올든은 바로크와 그 이전의 오페라들을 어떻게 연출해야하는 지 잘 알고 있다.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에서 직접 본 <알치나>나 영상으로 본 카발리의 <사랑에 빠진 헤라클레스>에서도 감탄했었는데 이 공연 역시 센스 넘친다. 과감한 색채의 활용과 끊임없는 무대의 전환, 그리고 가사에 걸맞는 연기가 자연스러운 연극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캐릭터에 대한 신선한 해석도 돋보인다. 예컨데 포페아에게 버림받은 오토네가 드루실라를 만나는 장면은 보통 드루실라가 타이밍을 재고 오토네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 연출에서는 오토네가 포페아를 잊기 위해 자신에게 관심없는 드루실라를 꼬드기려 애쓴다. 드루실라를 거칠게 애무하며 육체적 사랑으로 자신을 위로하려는 듯하다. 드루실라 역시 오토네가 원하는 것이 자신의 몸 뿐이라는 걸 알았다는 듯 실망하며 떠나간다. 이 외에도 두 유모의 해석도 흥미롭고 연극적인 재미가 잘 살아있다. 


해리 비켓의 반주도 탁월하다. 비켓의 이름은 메트 로델린다 반주로 딱 한번 들어봤을 뿐이다. 그 때는 그냥 메트 오케를 가지고 시대연주 느낌을 나름 잘 살렸다 정도로 기억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무려 메트 오케를 데리고 바로크 음색을 만들어 낸 거다. 이런 사람에게 리세우 극장의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붙여주니 제대로 살아난다.  비켓의 반주는 가볍고 경쾌하며 다채로운 콘티누오 악기를 사용한다. 올든의 경쾌한 연출과 죽이 잘 맞는 반주 스타일이다. 부드럽고 달콤하게 이어지는 테오르보의 반주 역시 일품이다.


여기에 이름값 하는 가수진까지 더해진다. 몬테베르디에서 스타 가수들을 쓰는 게 어떤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 공연을 보면서 그게 멍청한 생각이었구나 깨달았다. 미아 페르손의 포페아는 청아한 목소리에 긴 호흡으로 살아 움직이는 프레이징을 보여준다. 사라 코놀리의 네로는 미친 광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원래도 코놀리를 좋아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코놀리의 장점이 훨씬 잘 살아있다. 코놀리는 노래의 기술적인 면이 압도적이라는 생각보다 가사 소화나 연기가 뛰어난 가수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연기를 보여준다. 

세네카 역에는 프란츠요제프 젤리히가 나온다. 이 아저씨는 한창 <펠멜>의 아르켈 역으로 많이 보았었다. 세네카 역으로 나와서 기가막힌 저음을 들려준다. 이 맛에 베이스 듣는구나 싶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잘 하는 가수였나 놀랐다. 세네카의 존재감이 남달라 보인다. 네로와 언쟁을 하는 장면에서 두 가수의 대결이 긴장감 넘친다.


지휘, 가수, 연출 모두 작품에 신선한 생명을 불어넣은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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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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