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K 토스카라길래 구입했다. 원래 영화판 오페라도 관심이 없고 굳이 토스카 영상을 더 사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아내님이 그래도 토스카는 언젠가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샀다. 사실 예전에 혼자서 오페라를 보겠다고 영상을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카우프만 나오는 ROH 토스카였다. 하지만 혼자서 시간내 오페라를 본다는 게 쉬울 리가 없고 당연히 보지 못했다. 당연히 안 봤겠거니 싶어서 물어봤는데, 자기는 봤다는 거다. 그래서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보니까 대답하길, "토스카라는 한 남자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 아니냐"고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토스카는 가깝지만 먼 오페라가 됐다. 그러다가 로마에 가고, 산탄젤로 성도 가보고, 로마 오페라 전시회에서 토스카 초연 의상도 보았다. 그래서 토스카를 꼭 한번 보고싶어했고, 이 영상으로 같이 보았다.


난 아무런 기대도 안하고 본 영상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훌륭했다. 알라냐는 한창 때의 싱싱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요즘의 그 목소리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게오르규가 좋은 토스카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라이몬디 역시 늙은 뱀 같은 스카르피아를 표현해낸다. 가장 훌륭한 건 파파노의 지휘였다. 파파노가 화끈한 건 알았지만 이 연주에서는 연극적 긴장감 까지 훌륭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차서 연주한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자크 베누아는 영화감독이며 최근에는 오페라도 많이 맡았다. 그의 유명한 두 프로덕션 <베르테르>와 <라 트라비아타> 모두 이 블로그에서 리뷰한 적이 있다. 베누아는 영화감독 출신답게 극장 연출을 맡았을 때 영상 촬영을 자신이 직접 감독한다. 두 공연에서 특이한 점은 바로 의도적으로 객석이나 극장의 뒷편을 찍어 보낸다는 점이다. 일종의 소격 효과라고 해야하나,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 뿐 아니라 무대 밖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함께 보여준다.

이 영화판 토스카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장면과 스튜디오 녹음 장면(흑백)을 교차 편집해가며 보여준다. 첫 시작부터 스튜디오 녹음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후 영화로 진입하는 듯 하다 각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기 전에 스튜디오에서의 가수 모습을 보여준다. 가수들 역시 녹음하며 나름 연기하고 있는데다 실제 연인이었던 알라냐와 게오르규이기에 묘한 연결감을 준다.

하지만 이게 좀 과해서, 마지막 음표가 끝나고 나서 곧바로 게오르규가 긴장을 풀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여준다. 간격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오페라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보란 듯이 여운을 끊고 현실로 돌아와버린다. "좀 깨더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실제 장소를 모델로 삼은 배경은 훌륭하다. 특히나 1막 산탄드레아 성당은 실제 무대에서 보여주기 힘든 성당으로서의 공간감과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모든 배경은 실제 공간에서 찍은 게 아니라 세트 장에서 찍은 것 같다. 1,2 막에서는 좀 헷갈렸지만 3막 산탄젤로 성의 옥상이 직접 본 모습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바로 보였다. 정해진 구역을 제외하면 무슨 게임 영역 분리처럼 완전히 검은 공간이라 누구든 쉽게 눈치챌 수 있을 테다. 이렇게 암흑 배경을 잘 살려내 영화버전임에도 한정된 무대 공간에서 진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수들의 연기는 좋지만 싱크가 꽤나 어긋나는 편이다. 한번 거슬리기 시작하면 상당히 신경 쓰인다. 이걸 의식해서인지 노래하는 사람의 입모양을 안 보여주거나, 아예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가수가 입을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 처럼 연출한다. 간혹 노래가 길어지는 경우 노래는 배경음악 처럼 계속 나오고 같은 가사를 그냥 대사처럼 연기하는 부분도 있다. 오페라와 영화 사이의 타협점을 찾고자 한 것 같다.


4K 화질로 발매된 블루레이지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무 쓸모가 없다. 애초에 최신 영상도 아니고, 더 잘보이는 건 알라냐의 수염 뿐이다. 카우프만 수염이었으면 역시 4K가 최고라고 생각했겠지만 알라냐 수염 따위엔 관심 없다. 거기다 영상 인코딩 한계 때문에 2막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에서는 노이즈가 작렬한다. 난롯불 옆에서 노래하는 토스카의 모습을 뒤에서 잡는데, 영상 인코딩에서 제일 지옥같은 부분이 구름, 안개, 연기,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빛이라 검은색 배경이 이상하게 깨져버린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연기도 훌륭하고 연출의 긴장감도 좋다. 테데움에서 회전하는 카메라도 생각보다 멋지고, 새벽하늘에 옥상에서 노래하는 별은 빛나건만도 좋다. 토스카를 처음 입문하는 용으로 강력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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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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