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차 빈에 왔다. 아침에 빈 공항에 도착해서 오후에 공연을 보았다. 

빈은 신혼여행에 이어 두번째. 그 때 공연은 빈 슈타츠오퍼에서 0.5개 정도 보았다. 공연 시간을 헷갈려 헨젤과 그레텔 1막을 놓쳤으니 공연 하나 봤다고 하기도 뭣하다.

오늘은 몇번 확인하고 늦지 않게 갔다. 볼까말까 고민을 하던 작품이었는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겠나 싶어서 보기로 했다. 당통의 죽음은 뷔히너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로 폰 아이넴의 첫 성공작이다. 당통의 죽음은 예당에서 연극으로 할 때 본적이 있었다. 떠올려보니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뷔히너의 희곡 번역판도 한번 읽어보고 갔다.

 

아주 희귀 오페라까진 아니지만 녹음이나 영상이 거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 저작권이 남은 작품이라 악보나 리브레토를 구하기도 어렵다. 유튜브에 영어자막이 딸린 영상이 있어 그것으로 예습했다. 뷔히너의 희곡을 꽤나 잘라내서 진행이 많이 빠르다. 원작에 자주 등장하는 난해한 대화들을 많이 삭제하고 전반적인 플롯인 당통의 재판과 처형 과정에 집중했다. 

1947년 초연된 작품이니 만큼 낭만주의 오페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난해하진 않다. 선율 같은 것도 상당히 자주 나오고 플롯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상당히 강렬하다. 

 

공연은 기대보다 별로였다. 무엇보다 출연 가수 중 유일하게 알고 있는 당통 역의 토마스 코니에츠니가 전혀 주연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단 코니에츠니 특유의 목소리가 실연에서 들을 때는 약간 먹히는 것 처럼 들리기도 하고 성량도 특별히 더 크지 않았다. 여기에 과연 이 배역을 얼마나 연습한걸까 의심스러울 만큼 인물 해석이 재미가 없었다. 혁명에 대한 허무를 느끼는 당통의 모습도 안 보이고 재판정에서 불호령 같은 변론을 하는 모습도 없다. 노래나 연기나 모두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재판 장면에서 대중들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상 쥐스트를 바라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대 중앙만 쳐다보며 노래하는데 프롬프터만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동선이나 몸짓이나 주인공으로서 카리스마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1부에 나와 당통과 대립각을 세워야하는 로베스피에르는 더 끔찍했다. 강철같은 굳건함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고 민중들을 이끌겠다는 로베스피에르는 오페라 안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음악으로 표현된다. 공포 군주라기 보다는 강한 신념의 사나이로 묘사되는데 이 공연에서는 연기나 노래나 다 소심하고 겁 많은 인간으로 보였다. 연출이야 로베스피에르를 새롭게 해석한다칠 수 있는데 일단 가수가 고음이 제대로 안나서 망함. 

그나마 무대에서 제일 살아있는 인물은 카미유와 뤼실이었다.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괜찮았다.

연출의 경우 미장센은 좋았는데 일단 당통이 말아먹어서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특별히 효과적인 장면이나 연출이 없었던 게 아쉽다.

 

가장 돋보이는 건 오케스트라였다. 빈 슈타츠오퍼가 잘하는거야 세상 다 아는 이야기라지 체급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특히 목관 솔로나 앙상블이 나올 때는 다른 오케스트라와 아득한 차이를 보여줬다. 음색이나 텅잉의 급이 완전 달랐다. 미하엘 보더의 지휘는 불을 뿜듯 쭉쭉 나아갔다. 오케스트라가 열심히 연료를 공급해줬지만 연출이나 가수들이 그 에너지를 온전히 활용하지 못해 아쉬웠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