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C major 할인 때 구입했던 것 같은데 한참을 미뤘다. 헨델 공포증이 줄어들었으니 도전해보고 싶었다.


원제가 Theodora고 영어 오라토리오이니 '시오도라'라고 발음하지만 구글링해보니 시오도라로 표기하는 경우는 하나도 없고 모두 테오도라라고 표기한다. 난 시오도라를 밀어야겠다. Messiah의 경우 처럼 고정된 외래어 표기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괜찮을 것 같다.


원래 오라토리오이지만 연출가 크리스토프 로이가 무대 연출을 추가하였다. 2009년 잘츠부르크 축제의 개막작품으로 주역 성악가 다섯 명 모두 익숙할 사람일 만큼 스타 캐스팅을 자랑한다. 작품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해외 평점이 좋길래 구매해보았다. 피터 셀라스 연출의 베를린필 바흐 수난곡 시리즈를 아주 흥미롭게 봤기 때문에 오라토리오의 무대 연출에 관심이 있었던 점도 크다.


이제 헨델 오페라에 자신감이 조금 붙었다고 생각하고 도전했는데 3시간 동안 감상하는게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여태 집중해서 들어본 종교 음악 작품이 10개 남짓일 것이고 헨델 오라토리오 역시 메시아 공연을 한 번 본 것이 다였을 만큼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베를린필의 두 수난곡 공연을 보았을 때는 이미 음반으로 어느 정도 들어 음악이 익숙했지만 시오도라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도 헨델의 오페라에서 극의 흐름이 강렬하지 않은데 오라토리오다 보니 그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레네와 셉티무스 역의 경우 전통적인 오페라의 관점에서 보자면 역할이랄 것이 별로 없는 인물이다. 전체 내용은 기독교인 시오도라가 로마의 신을 모시는 걸 거부하고 자신의 연인인 디디무스와 함께 처형 당한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는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특별한 사건이 없다. 천지창조와 비교하면 그래도 하나의 극이 될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마태와 요한 수난곡의 내용에 비하면 한참 단순하다.


헨델 오페라와도 다른 점이 많다. 일단 작품의 내용에 맞게 어둡고 느린 음악의 비중이 훨씬 많다. 지루할 쯤 되면 빠르고 화려한 아리아가 등장하는 오페라와 달리 오라토리오에서는 무거운 음악이 시종일관 계속되기도 한다. 반면 합창의 비중이 오페라에 비해서 더 크기 때문에 아리아만 끝없이 나오는 상황은 대체로 적다. 듀엣은 극적으로 중요한 장면에서 3번 등장한다. 


영어 가사라는 점은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하다. 가사 서너 줄을 계속 반복하는 아리아 구조 상 가사 단어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데 영어 가사다 보니 그 점은 수월하다. 하지만 고어가 워낙 많이 등장하고 문장의 도치가 잦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도 많다.

 

가수들은 역시 뛰어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은 사람은 바그너 오페라에서 자주 보았던 바리톤 요하네스 마르틴 크렌츨레Johnannes Martin Kränzle이다. 크렌츨레는 연기와 노래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보여주는 가수다. 프랑크푸르트 반지에서 군터로 나와 그 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군터를 보여줬는데 이 시오도라 무대에서는 악역인 로마 총독 발렌스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인간을 좀 괴롭힐 줄 아는 사람이란 어떻게 행동하는지 정확히 표현해낸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연기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초반 두 아리아에서 흥미진진하게 가사와 선율을 과장해서 처리한다. 그 때 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본 어떤 헨델 작품보다도 재밌었다. 안타까운 건 크렌츨레가 맡은 발렌스 역이 1막 시작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다음 극 중 비중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최근에 본 영상물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준 테너 조셉 카이저가 셉티무스 역을 맡았다. 역시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선보이는데 아리아의 표현은 어째 로델린다에서 본 것만 못한 것 같다. 로델린다 공연에 비해 2년 전이니 아직 완벽하게 피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3막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 연기까지 하는 걸 보고 상당히 놀랐다.

크리스티네 셰퍼, 베준 메타, 베르나르다 핑크는 이름값을 해준다.

주역 가수 이외에도 합창을 맡은 잘츠부르크 바흐 콰이어가 아주 훌륭하다. 음악이 힘찬 것이든 서정 것이든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특히 He saw the lovely youth 와 같이 합창이 오랜만에 등장한 중요한 대목에서 따뜻한 소리를 들려준다.

지휘 이보르 볼튼은 풍부한 다이나믹과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크리스티의 오페라 반주에서 듣던 강렬한 인상을 받기는 어려웠다. 


크리스토프 로이의 연출은 처음과 끝부분을 제외하면 특별히 인상깊진 않다. 원래 오라토리오 자체가 아리아 중심으로 천천히 진행되는데 이 부분을 특별히 따로 연출해내진 않았다. 다만 3부에 삽입한 g단조 오르간 협주곡(시오도라와 함께 초연된 곡이다)에서 이야기를 반대로 풀어내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로이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대립으로 풀어냈다. 시오도라는 3부에서 남성복을 입고 발렌스에게 대항하며 디디무스는 시오도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시오도라의 붉은 드레스를 입는다. 디디무스의 개종을 여성이 핍박받는 시대에 스스로를 여성의 처지가 되기로 결정한 페미니즘적 행동으로 표현한 셈이다.


아, 카메라 감독을 맡은 한네스 로사허Hannes Rossacher는 끊임없이 카메라 샷을 바꿔가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과도한 클로즈업, 음악의 흐름과 상관없는 앵글 변환 등이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무대극으로 옮겼다 하더라도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크렌츨레의 연기와 노래는 오라토리오를 오페라적으로 해석해낸 것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음악의 특성 때문인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라토리오 시오도라에 익숙한 사람이면 즐겁게 볼 수 있는 공연이지만 오페라에만 익숙한 관객에게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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