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내가 써온 오페라 영상물 후기 목록을 보다가 모차르트 오페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차르트 오페라를 피하는 건 아니고 최근 구입한 영상물 중 모차르트 작품이 없었다.


다른 작곡가에 비해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상대적으로 덜 듣는 것은 사실이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품도 곧 잘 찾아들은 다른 작곡가에 비해 모차르트는 유명한 다섯 개에 이도메네오만 한 번 봤을 뿐이다. 다섯 개 중에서도 코지 판 투테는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잘 모르는 작품이어서일까. 코지 판 투테는 꼭 제대로 들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다 폰테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며 듀엣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음악이 극을 이끌어가는 모범적인 예시이기 때문이다. 리브레토가 단점으로 지적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난 반대로 이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여자는 다 그래'라는 매우 불편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내용을 성차별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부당하다. 마술 피리에 등장하는 인종 차별과 성차별적인 발언을 매우 싫어하지만 코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일종의 여성 해방을 읽을 수 있다. 데스피나가 1막에서 충고하는 말을 보라. 여성에게 눈치보지 말고 자신의 행복을 쫓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간 오페라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은 남자의 전유물이었지만 코지에 와서는 역전된다. '남성의 정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는 애초에 그당시에 논쟁이나 내기조차 불가능할 것이 뻔하지 않는가. 난 이 이야기를 여성에게 부여된 정조의 의무를 신랄하게 비웃고 깨트리는 이야기로 읽고 싶다. 자신의 연인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너무나 당연하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두 남자 주인공의 바보같은 모습을 비웃는 것이다.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대칭적인 구도도 참 흥미롭다. 거기서 아리아와 중창이 공평히 나눠져 있어 배역간의 밸런스도 훌륭하다. 2막이 되기 전에 페란도와 굴리엘모의 차이가 적어 혼동이 될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 연애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그려내는 다 폰테의 솜씨 역시 발군이다. '연인의 학교'라는 부제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1막 시작부터 작품의 피날레 까지 이야기가 점진적으로 발전해간다는 점에서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를 뛰어넘는다고 말하고 싶다. 이 두 작품에서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단절돼있는 느낌이 있고 작품 안에서 이러저러한 사건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편이라면 코지 판 투테는 오로지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의 공연 영상으로 파트리스 셰로가 연출을 맡았고 영혼의 듀오인 페두치가 무대를 디자인했다. 페두치의 무대는 언제나 단박에 페두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고유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이번 무대 역시 발퀴레 1막처럼 실내인지 실외인지 구분이 안가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 무대다.

다니엘 하딩과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는 깔끔한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극장 상태 때문인지 녹음 때문인지 소리가 뛰어나진 않다. 쿠렌치스 처럼 요새 나온 음반 사운드가 워낙 훌륭하니 아쉬운 점은 조금 있었다. 하딩의 지휘는 범생이 같다는 인상을 주지만 모차르트는 꽤 훌륭하다. 오밀조밀한 앙상블을 맞추거나 성악을 반주하는 데는 상당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성악진에서는 엘리나 가랑차가 가장 돋보인다. 엘리나 가랑차라니! 2005년이면 가랑차가 아직 서른도 채 되기 전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빈 슈타츠오퍼등 메이저 오페라 극장에 데뷔한지 얼마 안된 해이기도 하다. 가랑차의 목소리는 어둡지만 편안하다. 프레이징도 자연스럽고 긴 프레이즈에서 천천히 확실하게 다이나믹을 끌어올리는 모습도 아주 훌륭하다. 가랑차를 처음 본 것은 아마 카르멘 때였던 것 같은데, 오히려 카르멘보다 모차르트가 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아주 섬세한 연기력을 보여주는데 눈빛과 표정이 과장되지 않았으면서도 도라벨라의 내면 변화를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셰로의 연출에는 이런 가수가 필요하다. 보면서 얼굴형이 묘하게 아이유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랐는데 디쥐 계약 전에 온디네에서 아리아집, 에라토에서 모차르트 아리아집을 냈다. 이 음원은 아마도 온디네 음반에 수록된 노래인 것 같다.


루제로 라이몬디는 역시 나이를 속이지 못하지만 돈 알폰소는 좌중을 휘어잡는 발성이 필수조건은 아니니 별 상관 없다. 역시 베테랑다운 노래 표현이 훌륭하다. 

바바라 보니는 조금 아쉬운데, 데스피나에 기대하는 수브레트 스타일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라이몬디와 음색이 비슷했는데 두 여인에게 충고하는 나이든 할머니와 같은 느낌이다. 

나머지 세 명의 가수는 평범하게 잘한다.


셰로의 연출은 이 작품에서 군중의 시각을 강조한다. 유명한 맥비커 연출의 피가로(2006)에서 끊임없이 하인들이 무대위에 등장하는 것 처럼 셰로의 연출에서도 하인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이러한 컨셉은 피가로에서보다 코지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피오르딜리지가 갈등하는 이유는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라고 시종일관 나오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 속에서 눈치를 보고 살아가는 것이 갈등의 주된 원인이기에 실제로 무대 위에서 군중이 등장할 필요가 있다. 

셰로의 특기는 극의 기본적인 감정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요새 오페라 연출이야 이런 것들을 기본으로 깔고 가지만, 그럼에도 셰로의 감정 연출은 여전히 사람을 몰입하게 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컨셉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도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클릿에 직접 준비 과정에서 쓴 글들이 실려있던데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 읽어보지 못했다.



 셰로 팬이나 가랑차 팬이라면 꼭 봐야할 공연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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