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쓰는 연극 후기다. 최근에 대학로를 몇번 지나가게 되었고, 이토록 수많은 연극이 상연되는데 그냥 지나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본 것은 두 번인데 두 번 모두 대중적인 내용의 가벼운 극이었다. 최근에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고 셰익스피어나 체호프와 같은 위대한 극작가의 작품들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현재 상영하고 있는 대학로의 연극 중에서 눈이 가는 것은 체호프의 갈매기와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였는데 알고보니 두 작품 모두 같은 극단이 상연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쓸데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작품을 접하기 전 가장 먼저 생각난 건 표기에 대한 문제였다. 공연에는 원어로 '챠이카(Чайка)'로 표기했다. 표기를 정하는데 물론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ㅊ에 ㅏ대신 이중모음ㅑ를 쓰는 건 실제로 우리말 발음상 구분이 안되고 외국어표기법에서도 금지되어있는 표기 방식이다. 러시아어 Ч의 발음역시 우리말의 ㅊ과 거의 비슷하며 ай역시 ㅑㅣ가 아니라 ㅏㅣ에 가깝기에  원어의 발음에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극단 측에서야 나보다 이 사실을 훨씬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냥 '챠이카'라는 표기가 '차이카'에 비해 좀 더 낯선 외국어 느낌이 들고 오래 굳어진 표현이라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사실 작가 인명 표기도 '체호프'라고 정해진 표기가 있는데 굳이 '체홉'이라고 한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 나한테 '문법 나치'까진 아니어도 표기법에 대한 사소한 강박증이 있는 것 같긴하다.


공연을 보기 전에 원작을 읽어보려 했지만 시간이 없어 그렇지 못 했다. 혹시나 극의 진행을 따라 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문제는 전혀 없었다. 죄와 벌을 읽을 때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어렵긴 했지만 연극에서는 그럴 일이 별로 없다.


체호프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것이 관람의 가장 큰 목적이었기에, 무엇보다 체호프의 작품 자체가 다가왔다. 길지 않은 극임에도 상당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인물이 뚜렷이 분리되며 또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구성했다.


코스차는 자신의 어머니를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그렇기에 어머니 아르카디나가 무대에 등장하기도 전에 관객은 일종의 선입관을 갖게한다. 때문에 그녀가 코스챠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이고, 니나에 대한 불편함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것은 의외였다. 어쩌면 코스차가 삼촌에게 어머니를 묘사한 내용은 사실 그대로라기보단 코스차의 컴플렉스로 가득찬 시선 속에서 바라본 모습이 아닐까라는 좀 비뚤어진 생각도 들었다. 그가 니나와 1막에서 선보이는 극은 젊음의 패기와 순수함이 혼재돼있다. 상징주의로 가득찬 그의 작품에 볼멘 소리를 하는 니나의 모습은 둘이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라는 걸 암시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연기하고 싶다는 것, 그거야 말로 일상에서 항상 메모하는 트리고린의 특징 아닌가. 어머니, 심지어 삼촌마저 코스차의 공연을 보고 웃어버리며 그의 작품을 높게 평가해주는 것은 오로지 의사 도른 뿐이다. 과연 도른이 코스차를 응원한 것은 그에게 정말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후에 작품에 대해 검색해보니 도른은 체호프 작품에 등장하는 지적 대리인 역할에 해당한다고 한다. 사실 이번 연극에서 그런 점을 잘 느끼진 못했다. 처음 폴리나와의 장면에서 바람둥이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까. 모파상의 소설을 읽는 장면에서도 매우 편한 가운 복장을 입고 있는 것이 그를 더 가볍게 묘사하는 듯 했다.

코스차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햄릿과 닮았는데, 체호프는 관객이 이 점을 깨닫게 도와주도록 햄릿의 명대사 '말, 말, 말'을 극 중에 그대로 등장시킨다. 순간 저게 햄릿 대사였나? 싶었는데 놓치지 않도록 오필리어에 비유하는 대사까지 넣어준다. 

극 중 인물 모두, 혹은 대부분이 꿈을 이루지 못한다. 코스차는 1막에서 실패 이후 4막에서 저명한 작가가 된 듯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니나는 여배우가 되고 싶어했지만 망가진 여배우가 된다. 트리고린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와 언제나 비견될 거라고 슬퍼한다. 마샤와 세묜, 폴리나는 짝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결국 얻지 못한다. 4막에서 마샤가 뒤에 조용히 서서 코스차의 연필을 깎아주는 장면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작품을 보기 전 체호프의 갈매기의 막 구조가 교향곡의 4악장 구조와 비슷하다는 연출가의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도무지 공감가지 않았다. 이처럼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마지막 악장이라니, 당장 떠오르는 건 차이콥스키 6번 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글을 다시 찾아보니 예시로 든 빠르기 말이 2악장을 제외하곤 차6과 같다. 차라리 콕찍어서 차6과 비슷하다는 것이 좀 더 설득력 있을 것 같다.


내가 체호프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체호프의 총' 때문이었다. 1막에 총을 등장시켰으면 3막에선 쏴야한다는 명쾌한 극이론이다. 체호프 본인의 작품이라면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모든 대사와 행동들이 극에서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고, 그 만큼 극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게 됐다. 


극에서 갈매기의 울음소리 이외에도 개 짖는 소리가 등장한다. 1막에서 소린이 일랴에게 개 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할 순 없냐고 묻는다. 니나와 코스차의 대화에서도 자기 집에 찾아온다면 개가 짖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니나와 코스차가 개짖는 소리를 흉내내는 대목을 삽입했는데, 영문 번역본을 보았을 때 원작에는 포함되지 않는 장면인 듯 하다. 기억으로 개짖는 소리가 실제 효과음으로 사용된 것은 4막에서 니나가 떠난 뒤 코스차가 혼자 남고 결국 밖으로 퇴장하는 즈음 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못찾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대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지문은 찾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아마도 연출가가 삽입한 것 같다. 1막에서 아르카디나가 잠을 못자게 만들었던 그 개짖는 소리는 결국 어머니와 니나에게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친 코스차의 모습을 대변하는 소리가 아닐까. 


배우들의 연기가 전반적으로 훌륭했는데, 그 중에서도 트리고린 역의 배우 김낙균 씨가 인상깊었다. 첫 등장부터 대사 없이 독특한 눈빛과 자세 만으로 캐릭터를 훌륭히 연기했다. 4막에서 박제된 갈매기를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반응 역시 보는 이를 몰입시켰다.


연극으로 보지 않고 대본으로만 읽었다면 충분히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다음에 이 극단이 다른 체호프의 작품을 올릴 때 또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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