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에프 - 교향곡 1번
힌데미트 - 현과 금관을 위한 작품 op. 50

차이콥스키 - 교향곡 4번
(앵콜) 베르디 - 나부코 서곡


무티가 왔다. 2013년 시카고 심포니 내한이 취소됐을 때 아쉬워 했는데 2년이 지나서야 다시 기회가 왔다. 무티의 관현악 명반을 꼽으라면 꼽을 것은 없지만 베르디 오페라에서만큼은 가장 신뢰하는 이름이다. 예매를 계속 미루다가 수요일에야 겨우 결심하고 예매하게 되었다. 그만큼 1부 곡에 대한 예습은 부족했다.

베토벤 5번, 말러 1번으로 구성된 전날 프로그램이 더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딱히 끌리지 않았다. 무티의 베토벤 5번은 1악장 2주제의 간지러운 버터 비브라토에 경기를 일으키고 꺼버렸던 기억이 있다. 거기다 말러 1번 역시 무티의 스타일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날 후기를 보니 안 간 것이 아쉽지 않았다. 


최근 관현악 공연을 별로 안 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새로운 레퍼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보는 것도 좋지만 내가 모르는 곡을 새롭게 배워가는 걸 더 좋아한다. 프로코피에프와 힌데미트의 곡 모두 나에겐 생소한 곡이었기에 이 참에 꼭 들어보고 싶었다. 


제목 그대로 고전적인 형식의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1번은 무티의 스타일과 어울렸다. 무티의 모차르트를 몇번 들어본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정교한 앙상블에 유려한 선율 처리가 돋보였다. 예습으론 테미르카노프의 음반을 들었는데 이보단 더 정갈하고 가벼운 느낌의 음색을 선보였다. 

힌데미트의 경우 시카고 심포니의 자랑인 금관 파트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빛나고 시원한 금관의 소리를 맘껏 들어본게 얼마만일까. 유독 불협화음이 숨지 않고 드러난다는 느낌도 받았다. 선율과 프레이징이 난해한 곡이지만 무티는 이를 어느정도 뚜렷하게 표현하여 자발리쉬의 음반을 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에서야 무티가 얼마나 독특한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을수 있었다. 무티는 기본적으로 관현악곡을 오페라 음악처럼 다룬다. 악보에 표시되어있지 않은 다이나믹과 템포 변화를 음악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만들어낸다. 단순히 템포 변화가 많다는 점에서는 푸르트뱅글러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푸르트뱅글러의 템포 변화가 사람을 흥분으로 집어넣기 위한 장치라면 무티에겐 선율과 음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용도라고 할 수 있겠다. 


때문에 1악장 팡파레 이후 대부분의 선율이 매우 서정적으로 처리됐다. 문제는 보통 다른 지휘자들이 폭발적으로 터트리는 총주에서도 현악기가 어떻게든 선율의 아름다움을 레가토와 부드러운 비브라토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규를 기대하는 부분에서 아름다운 몸짓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반대로 같이 등장하는 금관은 아주 짧고 강렬한 아티큘레이션으로 연주하기에 분위기가 완전히 상반된다.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음악이 병존하는 모양새다. 

뒤이어 2주제로 넘어가면 무티의 특징은 더 심하게 들어난다. 피아니시모를 넘어서 피아니시시모의 수준까지 내려가기에 순간적으로 음악이 정지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이후 목관과 현악기가 선율을 주고받는 부분에서는 템포 변화가 극단적인데, 마치 오페라에서 두 인물이 전혀 다른 성격의 노래로 2중창을 부를 때 템포가 고무줄처럼 변하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2악장 역시 현악기가 포르티시모로 크레셴도되는 부분에서 아첼레란도가 아니라 오히려 느려짐으로써 선율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한 것 같았다. 마치 우리가 1초라도 더 이 선율의 아름다움을느껴야 하는 것 처럼, 선율을 구성하는 음 하나하나를 더 맛봐야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이를 일종의 음향적, 선율적 탐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3악장의 경우 피치카토 부분도 프레이징이 자연스러운 곡선이 되게 튀는 음이 없게 절제한 것이 인상깊었다. 이 3악장 피치카토는 보통 리드미컬하고 신나기 마련인데 무티는 여기에서도 선율선을 다듬어냈다.

4악장의 경우도 1악장 처럼 템포 변화가 심했지만 1악장 처럼 부자연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느린 부분의 대비로 인해 금관과 함께 질주하는 부분이 더욱 잘 살아났던 것 같다. 마지막 음표에 심벌즈 가필을 안썼는데, 오히려 그 전음에서 심벌즈가 워낙 튀어서 마지막 음이 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순간 당황스러웠다.


세상에 이런 차이콥스키도 가능하구나라는 느낌은 신선했지만 전체적으로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은 아니었다. 설득력 있는 해석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앵콜로 나부코 서곡을 하겠다고 하는 순간 나는 벌써 기대에 가득찰 수밖에 없었다. 무티의 베르디, 그것도 나부코 서곡이라니.


무티의 나부코는 완벽 그 자체였다. 내가 그 동안 생각해왔던 이상적인 나부코 서곡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첫번째 시작의 트롬본 튜바 코랄 풍 멜로디는 조용히 시작해서 전체 프레이징을 자연스럽게 처리했다. 여기서 악보에 찍힌 스타카토를 잘못 해석하면 아주 부자연스러워지는데 무티는 이걸 깔끔한 레가토로 처리했다.

그리고 9마디 째 나오는 투티에서 엄청난 힘의 폭발력을 보여줬다. 베르디의 관현악 작품들, 그 중에서도 나부코의 경우 음악이나 오케스트레이션이 단순한 면이 있어서 투티에서 원초적인 박력이 필요한데 무티는 이걸 정말로 잘 살려낼 줄 아는 지휘자다. 

그리고 분위기 전환 역시 자연스럽게 템포 변화와 다이나믹 변화를 가져가고 알레그로로 이어졌다. 이때 나오는 2막 합창 Il maledetto non ha fratelli 선율 처리 역시 탁월했는데, 네마디가  a a bb로 이루어진걸 두번째 a를 에코 처리함으로써 단조롭지 않고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안그래도 조용한 다이나믹에서 깔끔하게 처리하기 어려운 패시지를 더 조용하게 까지 완벽하게 컨트롤한 트럼펫과 스네어 주자에게 박수를 쳐줘야 한다. 

히브리 노예 합창 va pensiero는 약간 빠른 템포로 가져갔는데, 역시 무티가 느린 지휘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경우 원래 음색이 잘 어울리지 않는 편인데 클라리넷이 조용히 잘 숨어들어가서 오보에를 빛나게 해줬다. 현악기가 멜로디를 이어받아 시작하는 부분에서 박자를 살짝 늘려 선율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것도 정석적이면서 좋았다.

그 뒤에 다시 알레그로가 등장하고 투티로 2막 바빌론인 합창 선율이 나오는 부분도 빼어났다. 이 부분에선 호른 파트만 독립적인 리듬을 하고 있는데 보통 잘 안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티는 호른 파트를 강조해서 전체 소리가 아주 꽉차고 리듬감이 넘쳤다.  

뒤이어서 나오는 리드미컬한 1막 유대인 합창 멜로디도 깔끔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포르티시모 리듬이 등장할때 금타가 살짝 늦게 들어온 것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비가일레 2막 아리아 선율이 나오기 전에 한템포 숨을 고르는 것도 바람직한 선택이었고 바이올린의 고음을 날리는듯 크레셴도로 밀어서 처리하는 것도 선율의 분위기를 더 잘 살려주는 해석이었다.


다시 알레그로 선율이 더 빠르게 등장할때도 힘을 잃지 않았다. 같은 리듬이 16마디 반복되는 부분도 9마디 째를 강조해서 새 프레이즈가 시작한다는 걸 확실히 들려준 것도 정말 훌륭했다. 저 부분을 저렇게 연주해야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오케스트라 전체가 자연스럽게 처리하다니. 마지막 코드도 첫번째껀 아쉬움이 들만큼 짧게 잡아줌으로써 뒷따르는 마지막 코드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 까지 훌륭한 설계였다.





무티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나부코 레코딩을 들어봐도 위에서 언급한 것 중 몇가지는 빠져있다. 유튜브에 있는 다른 비디오를 찾아보아도 오늘 연주 처럼 완벽한 해석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찾아볼 수 없다. 위의 영상 연주도 후반부 빠른 부분에서 아티큘레이션 처리가 썩 좋지 못하다. 음반과 비교해보니 무티의 베르디 해석이 예전에 비해서도 더 발전했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무티가 지휘하는 나부코 서곡을 직접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껏 내가 들은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앵콜 중에 단연 최고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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